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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해영에서 보는 육아법

어떤 아이도 꽃길만 걸을 수는 없다.

by 오렌지나무

출처: tvN '또 오해영' 예고편에서 캡쳐


기말고사 시험지를 받아보면 최근 인기 드라마가 뭔지 알 수 있다. 중간고사 때는 강모연, 유시진이 등장하더니 기말고사 때는 박도경과 오해영이 나왔다. 또 오해영이 교수님들 사이에서도 핫한 드라마이긴 한가보다.


또 오해영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배경에는 흥미롭게도 가족이 있다.


상처받을까봐 두려워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박도경의 뒤에는 사고로 일찍 세상을 뜬 아버지와 자식들 밥그릇에 반찬 한 번 올려준 적 없이 무관심했던 어머니가 있다. 박도경의 어머니가 예쁜 오해영과 박도경의 결혼을 반대했을 때 박도경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사랑을 어떻게 알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어야 사랑을 알지."


예쁜 오해영도 상처투성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예쁜 오해영의 부모는 사회적 지위도 있는 사람들이지만 각자 바람을 피워 이혼하고 그 뒤로도 계속 서로 다른 사람들과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예쁜 오해영은 부모와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그녀는 상처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밝고 당당한 모습을 연기하고 살았고 박도경은 예쁜 오해영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걔는 누구에게나 상냥하다, 버림받을까봐. 눈은 웃어도 눈동자는 계속 떨린다. 자기를 싫어할까봐 걱정되어서. 강아지처럼 살랑살랑.

예쁜 오해영은 어머니의 전남편인 장회장을 '아빠'라고 부르고, 장회장의 친딸을 '언니'라고 부른다. 아무 관계도 없고 함께 산 것도 아닌 사람들에게 가족의 호칭을 쉽게 붙이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에게 '진짜 가족'이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장회장은 예쁜 오해영을 불러 밥도 먹고 친하게 지냈으면서도 박도경의 어머니와 재혼을 하게 되자 예쁜 오해영에게 다시 연락하지 말고 만나지도 말자고 쉽게 선을 긋는다. 그게 예쁜 오해영이 가진 가족 내지는 가족 비슷한 것들이었다.

나는 그냥 오해영이 예쁜 오해영에게 학창시절 내내 열등감을 느끼고 위축되었던 것만큼이나 예쁜 오해영도 점심 때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서 학교로 찾아왔던 그냥 오해영에게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에서 중심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냥 오해영의 가족이다.


그냥 오해영이 라디오 생방송에서 자기 이름과 사연을 밝히는 실수를 하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그냥 오해영의 어머니는 밥상을 차려와서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큰일 아니야. 이딴 걸로 사람 안 죽어. 이판사판 개판 살아보자고."


그냥 오해영의 부모도 완벽한 사람들은 아니다. 처음에 그냥 오해영이 결혼을 엎어버렸다고 오해했을 때는 그냥 오해영을 '부끄러운 딸'이라고 하기도 하고 '감당할 수 없다'고 하면서 집에서 쫓아내기도 했다. (물론 이건 박도경을 만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_-) 하지만 그냥 오해영이 이사한 집에 딸 몰래 찾아가보기도 하고 방범창이 튼튼한지 확인도 해보고 아침마다 먹을 떡을 사다놓기도 했다. 그리고 딸이 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그동안 구박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통곡하고 노래방에 가서 다같이 노래를 부르면서 딸을 위로하려고 했다. 그냥 오해영이 라디오 생방송에서 실수를 해서 동네 사람들이 떠들어대고 집에 전화가 걸려올 때도 딸의 편을 들어주고 이사까지 가려고 결심한다. 그냥 오해영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매일 따뜻한 밥을 먹이겠다고 점심을 싸오곤 했던 열성적인 부모였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그냥 오해영은 비범하다.

박도경이나 예쁜 오해영과 다른 그냥 오해영의 특징은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쪽팔려도 웃을 줄 알고, 바닥에 널부러질만큼 얻어맞아도 꿋꿋이 일어나서 당당하게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냥 오해영은 박도경을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자기 마음만큼 다가가려고 하고, 박도경에게 얼떨결에 마음을 고백하고 거절당한 후 쪽팔려하면서도 박도경을 좋아하는 마음을 계속 표현하고, 실시간 검색어에 오해영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고 전국적으로 웃음거리가 되었음에도 꽃다발을 들고 당당하게 출근한다.


"나 내일부터 출근할거야."

"어거지로 버틸 필요 없어. 그냥 사표 써."

"그냥 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어. 엄마 딸 강해. 이 정도로 안 쓰러져. 결혼 전날 파혼당하고도 씩씩하게 살아남은 여자야. 심지어 나 검색도 돼. 오해영 짤 치면 바로 나와."

-또 오해영 13회 중에서-


또 오해영에서 본 육아법이란 간단하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부모가 서로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했을 때 자식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그냥 오해영처럼 스스로를 애틋해하며 아끼고, 사람들을 믿고 마음을 열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당당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그 힘을 줄 수 있다.


내 주위에는 아이 엄마가 된 친구들도 있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친구들도 아기를 낳은 후에는 자녀 교육에 열을 올리고 아이가 자라나는 매 단계마다 뭘 해줘야 엄마의 책임을 다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불안해했다. 그들의 교육열은 아기를 대단한 사람으로 키워서 자아실현을 하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들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내 아이가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그 행복의 방법을 명문대, 전문직같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길에서 찾고 있는 것일 뿐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검증된 성공의 길로 갈수록 외부적인 불행의 요인들은 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대학에 가고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꽃길'은 없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한겨울에 변변한 옷도 없이 추위에 떨기도 했고 먹을 게 없어서 굶기도 했다. 그런 부모님 세대는 자식들만큼은 꽃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 아파트도 장만하고 아이들을 학원에도 보냈다. 그렇게 자란 우리 세대 젊은이들은 과연 꽃길을 걸었다고 생각할까? 굶주린 사람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라면을 먹는 사람도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스테이크를 먹는 사람도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는 부모님 세대보다 훨씬 풍족하게 자랐지만 나름대로 불만이 있고 괴로움을 느낀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들은 행복하고 어떤 고통도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들도 다른 어딘가를 보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어떤 길도 꽃길이 아니라면, 인생을 살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넘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고, 크게 다쳐도 씩씩하게 일어나 다시 걸어갈 수 있는 힘일 것이다. 그냥 오해영이 보여주고 있는 그런 힘.

그렇게 생각하면 가장 중요한 자녀교육은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힘들어본 사람은 안다.

아침에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나가는 것,

저녁 때 돌아와 '엄마, 뭐 먹을 거 없어?'라고 말하는 것.

지극히 사소한 그 두 가지가 무너져내리는 인생도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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