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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Feb 06. 2020

은둔형 외톨이 성향 청년을 위한 프로그램

청년 체인지업 프로젝트


https://sygc.kr/youth_guarantees/4720


대상: 만 34세 이하 은둔형 외톨이 성향의 미취업 청년

인원: 총 40명

참여방법: checkmylux@yhf.kr 을 통한 이메일 접수 후 개별 면담 진행

*이메일 접수 시 이름, 전화번호, 현재의 고민과 상태 등 간략히 서술(대리접수 신청 시 참여자의 의지 반영 필수)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지금 알 수는 없지만 20명은 쉐어하우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나머지 20명은 각자 현재 거주지에서 생활하면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구조로 보여요. 무료 프로그램이고요. 대한민국 국적이기만 하면 지역에 제한은 없네요.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나이에 제한이 있다는 점이에요. 요즘 보통 40까지는 청년에 포함되던데...-_-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은 심리상담과 자립 지원이 될 것 같습니다.

https://www.yhf.kr/jsp/changeup/index.jsp


*주의: 저는 담당자도 아니고 청년재단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다만 작년에 청년재단이 지원했던, 은둔형 외톨이를 위한 비슷한 프로그램의 참여자로서 경험담을 이야기해드릴 뿐이라는 점 기억해주세요:)


 저는 정확히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작년에 청년재단에서 지원하는 '비자립 청년 마음치유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지원하는 재단은 같죠?그때는 쉐어하우스 생활은 없었는데 이번에는 지원이 더 확대되는 것 같네요. (부러워요ㅠㅠ)


 청년재단에서 지원하는 비자립 청년 프로그램에 참여해본 경험에 비추어 보면 세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1) 지원이 빵빵하다

(2) 형식적으로 보여주기 위한게 아니라

       진심으로 비자립 청년들을 도울 방법을 찾고 싶어한다

(3) 일회적이지 않고, 오래 같이할 친구들을 얻게 된다



 청년재단에서 작년에 저희 비자립 청년 프로그램에도 많은 금액을 지원해준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매주 2회씩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거의 매번 케이터링 음식을 제공하는 등 식사에도 비용을 아끼지 않았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맛있는 식사가 마음치유나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부분이 좋았어요. 경험상 식사나 간식에 신경을 많이 쓰는 프로그램들이 내용 자체의 질도 높은 경향이 있기도 하고요.


 작년에 참여하기 전에는 형식적이고 보여주기식 프로그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참여해보니 프로그램 내용들이 정말 마음치유에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제가 지금까지 참여해본 심리 관련 프로그램들 중 완성도가 가장 높았고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느낌이었어요.


 끝나갈 무렵에는 1대1로 심층 인터뷰를 할 기회도 있었는데 은둔형 외톨이의 입장에서 자립하기 위해 어떤 지원,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느끼는지 구체적으로 알고싶어하더라고요. 그때 독립할 수 있는 주거 지원과 취업 지원이 가장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쉐어하우스 지원도 있다는 걸로 봐서 그런 부분이 반영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분들의 자세는 '정상인이 비정상인인 은둔형 외톨이들을 돕는다'는 수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마음이 아프고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있다, 우리를 치유하고 다시 일어날 방법을 같이 찾아보자'는 수평적인 쪽에 가까웠어요. 만일 전자였다면 저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 시선이나 태도만으로도 쉽게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상태였으니까요.


 그런 경험에 비추어볼 때 청년재단의 이번 프로젝트에도 신뢰가 가고 개인적으로 추천드리고 싶어요. 사실 개인상담이나 다른 취미생활은 어디서든 쉽게 경험할 수 있죠.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은 정말 흔치 않아요.



 이런 프로그램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바로 '비슷한 상황의 또래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우울증을 앓고 은둔형 외톨이 생활도 오래 하면서 (10대~20대에 7년, 30대에 2년... 총 9년 정도 은둔형 외톨이로 살았네요) 가장 많이 잃어버린 것은 친구였어요. 친구들의 평범하게 잘 사는 모습 자체가 저에게는 상처가 되고, 친구들의 안부 카톡도 저에게는 공격받는 것처럼 느껴져서 잠수타고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우울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뜻밖에도 외로움이었어요. 일상이랄 것도 없지만 그래도 매일 뭘 하고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마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해보신 분들은 잘 아실 거예요.


 자존감의 많은 부분도 사실 사람들과의 관계에 달려있죠. 100명의 마을 사람들 중 99명이 돼지 꼬리가 달린 사람들이라면, 그 마을에서는 돼지 꼬리가 없는 사람이 오히려 자기에게 장애가 있다고 느끼고 자존감이 낮아지겠죠.

 

 그래서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을 찾아서 함께 하는게 자존감에는 정말 중요해요. 나에게 돼지 꼬리가 있다면 괜히 돼지 꼬리가 없는 사람들 틈에 머물면서 나에게 장애가 있다고 괴로워할게 아니라, 돼지 꼬리가 달린 사람들을 찾아가서 함께하면 되는거죠. 돼지 꼬리가 달린 사람들끼리 모이면 그 안에서 나는 전혀 이상하지 않고, 평범하고 정상적이니까요.



 저는 저 자신에 대해 우울증을 오래 앓았고 사회성이 떨어지고 성격도 어둡고 외모도 못생긴... 이상한 동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긴장되고, 쓰러질 것처럼 힘들어하며 시선을 내리깔았죠. 가끔은 머릿속 생각을 멈추기 위해 '꺼져, 꺼지라고'같은 말들을 입밖으로 낼 때도 있었어요. 아무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집단에서 저 혼자 그런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하니까 저는 이상한 사람인거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거죠.


 그러다 작년에 비자립 청년 프로그램에 갔을 때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그 모임에 온 사람들이 다 밝고 평범한 것 같아서 처음에는 많이 부담스러웠어요. 저만 이상해보이는게 아닌가 싶었죠.


 그런데 자기소개를 하는데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런 말을 털어놓더라고요. 사람 많은 곳에 와서 지금 너무 긴장되고 힘들다거나 자기는 스스로가 너무 못생겼다고 생각한다거나(제가 보기엔 그분 평범하고 훈훈하셨음) 하는 이야기들을요.


 실제로 다들 긴장해서 서로를 쳐다보지 못하고 바닥이나 자기 손을 내려다보거나 하고 있었어요. 보통 사람들의 집단에서라면 이상했을 행동들, 말들이지만 거기서는 다들 그러니 그게 정상이었죠. 쓰러질 것 같은데 억지로 참으면서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웃으려고 애쓰고 있던 저도 '안심하고' 공황증상으로 지금 너무 힘들다고 말하고 그냥 시선을 내리깔았어요. 정상인처럼 보이려는 노력을 멈출 수 있었죠. 저는 그냥 저 자신의 모습대로 정상인이었어요. 그곳에서는.



 프로젝트 과정 내내 저는 저의 솔직한 모습들, 감정들, 생각들을 보여주었고 다른 참여자들도 그랬어요. 다들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고 비슷한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서로를 믿을 수 있었고, 자기의 가장 아프고 비참하고 초라한 경험들도 다 꺼내놓을 수 있었죠.


 그런 친구가 생긴다는 것은 저에게는 핵폭탄급의 힘을 가진 우울증 치료제였어요. 자살할만큼 힘들다가도 '나는 혼자가 아니고 그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어'라는 느낌을 떠올리면 살아갈 힘과 용기가 생겼어요. 세상에서 나만 자리를 찾지 못하고 떠도는 것처럼 느꼈는데 그 친구들이 생기면서부터는 세상에 제 자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죠. 앞날은 여전히 불안했고 제 상황은 힘들었지만, 정 할 일이 없으면 나중에 친구들이랑 같이 붕어빵 팔아야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게 든든했어요.


 연애로 힘들 때도, 새로운 진로를 결정할 때도 예전같으면 혼자 끌어안고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친구들과 나누고 심리적인 지지를 받았어요. 충고, 조언, 비판, 판단 없이 저를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게 힘이 많이 됐어요. 삶이라는 바다에서 가라앉지 않도록 저를 지탱해주는 튜브의 역할을 해주었죠.



 신기하게도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에는 참여자들이 맨 처음 만났을 때와 달라져있었어요. 서로 많이 친해졌고 엄청 즐겁고 활기찬 분위기로 바뀌었어요. 프로젝트가 끝나는걸 다들 너무 슬퍼했고 (저도 2주 정도 그것때문에 우울증 증상으로 힘들었어요)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했죠. 그래서 그때 기획해주신 분들이 사후 모임을 만들고 운영해주고 계세요. 12월에는 청년재단의 지원을 받아 같이 연극을 봤고 1월부터는 매주 글쓰기 모임을 함께 하고 있어요.


 그런 경험에서 저는 이번 청년재단의 '청년 체인지업 프로젝트'에 꼭 참여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어요.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하다보면 외출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고 사람들을 만나는게 두렵고, 모든게 무의미해보이기도 하죠. 어떻게 해도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에 압도되어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건 정말 좋은 기회예요. 인생이 바뀔 수도 있고, 그렇게 드라마틱한 변화까지는 아직 어렵더라도 최소한 비슷한 상황이라 내 마음을 이해해줄 수 있는 친구는 만들 수 있죠. 마음이 힘들고 용기가 나지 않더라도 한번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비슷한 프로그램을 경험해본 사람의 Q&A


1.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힘들고 증상이 심각한데 이런 프로그램에 가서 어울릴 수 있을까요?


 제가 참여했던 프로그램에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기 힘든 상태인 분도 계셨어요. 대부분의 시간에 프로그램 자체에 참여하기 힘들어서 앉아 계시긴 했지만 저희는 함께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분은 매주 지방에서 고속버스 타고 장거리를 이동하셨는데 한번도 안 빠지셨던걸 보면  그분도 도움이 된다고 느끼셨던 것 같아요.


 참여자들의 상태에 맞게 진행하시는 분들이 배려를 잘 해주셨어요. 제가 경험했던 프로그램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소감을 나누거나 하는 것도 원하지 않으면 안할 수 있는 분위기였고, 강제로(?) 마이크를 돌리는 일은 없었고요. 불편한 점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나는 이걸 하는게 부담스럽다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였어요.



2. 면담이 힘들지는 않았나요?


 저는 작년에 공감인에서 면접(?)을 봤는데 이번에 청년재단에서 하는 프로젝트의 면담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네요.


 생각보다 낯선 사람 앞에서 자신의 우울증이나 은둔형 외톨이 상황같은 것을 털어놓는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면담을 하러 가기까지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하고 나서 그런 이야기를 남에게 해버렸다는게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도 좀 됐고요. 하지만 프로그램 자체가 정말 만족스러워서 면담이 좀 힘들었던건 감수할 가치가 충분히 있었어요.


 면담의 목적은 참여자의 현재 마음이나 환경 등을 파악해서 최대한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게 해주려는데 있다고 들었어요. 참여자를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안에서 참여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기 위해 질문들을 하는 거죠. 면담이 부담스러우시다면 최대한 현재 상황에 대해 자세히 써서 메일로 보내시는 것도 팁이 될 것 같아요.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면 아무래도 면담 과정에서 물어보는 것들이 적어지지 않을까요?



3. 힘든 사람들끼리 모이면 안좋은 영향을 더 받게 되지 않을까요?


 이런 걱정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 상처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다른 사람들의 어두운 이야기를 들으면 더 힘들어질 것 같다거나, 아무래도 부정적인 사람들이 모이게 될 텐데 거기서 상처를 받을 것이 걱정된다거나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건 실제 모임에 나가서 분위기를 봐야 확실히 알 수 있는 문제같아요.

 

 다만 제가 참여했던 모임에서는 이런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생각보다 참여자들이 겉으로는 밝은 편이었고 대부분 내성적이라서 상처주는 말을 하거나 부딪치는 일은 없었어요. 어둡거나 힘든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심리치유 프로그램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안전했고 불편하지 않았어요. 대체로 집단 심리상담 프로그램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특히 공감인에서 했던 프로그램에서는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대화의 규칙'을 매번 같이 읽었어요. 서로 충고, 조언, 비판, 평가하지 않기와 같은 규칙들을 공유하면서 대화했기 때문에 상처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 충고하기 시작하면 우리끼리 '앗, 지금 그건 충고 같은데요?'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였어요.


 실제로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하다보면 분명히 내용 자체는 슬프고 어두운데(학교 폭력, 왕따, 부모님들과의 관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등등) 당사자는 밝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어두운 이야기인데도 웃게되는 심리를 저희들도 궁금해했죠.;; '어... 근데 이거 슬픈 이야기인데 우리 지금 왜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죠?ㅎㅎ'이런 말을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감정이 북받치는 이야기를 하거나 들을 때는 또 같이 울기도 하고요.


 대부분은 다들 경험해본 이야기라 공감하는게 어렵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의 상처를 나도 경험한 적이 있어서 공감이 되면, 부정적인 느낌보다는 반가운 느낌이 더 강하게 드는 것 같아요. '나만 그런 일을 겪은게 아니구나, 나만 이상한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분명히 어둡고 힘든 이야기인데도 들을수록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저는 많이 경험했어요. 힘든 사람들끼리 모여도 부정적인 분위기에 매몰되지 않는건 아마 그런 '공감'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이번 '청년 체인지업 프로젝트'는 제가 참여한 '비자립 청년 마음 치유 프로젝트'와 많이 다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건 프로그램의 내용이 아니라 '사람'인 것 같아요. 참여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지탱해주고 도와줄 수 있는 진짜 치유자들이죠. 치유해주러, 치유받으러 가보시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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