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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Feb 13. 2020

아이들의 세계는 고요하지 않다

초등학교 3학년 소풍날

 

 어른들이 보는 아이들의 세계는 행복하고 단순하다. 서로 모르던 아이들도 맛있는 간식을 나눠 먹으면서 금방 친해지고 쉽게 어울려 노는 것처럼 보인다. 어른들은 이렇게 말한다. "애들은 애들이라니까." 뛰어다니면서 소리치고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모습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어른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웃음짓는다.


 소풍 전날에는 항상 엄마와 장을 보러 갔다. 엄마는 김밥과 여러가지 재료들을 샀고 나는 다음날 버스에서 먹을 초콜렛과 음료수를 골랐다. 엄마는 소풍날 새벽부터 일어나 당근, 시금치, 계란, 단무지를 넣은 김밥을 말고 양상추와 햄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만드셨다. 엄마는 샌드위치를 일부러 많이 만들었다면서 "친구들이랑 나눠먹어."라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밝게 웃고 계셨다.


 초등학교 3학년의 소풍은 좀 달랐다. 아이들끼리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자유시간이 있었다. 그 이전에는 항상 선생님이 줄 세워서 데리고 다니고 다같이 레크리에이션에 참여했는데 3학년부터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직접 정자나 울타리 같은 것들을 가리켜보이면서 이 울타리는 절대 넘어가면 안되고, 이쪽 정자에서 저쪽 조형물 있는 곳 사이에서만 놀아야 한다고 몇번씩 당부했다. 아이들은 큰 목소리로 "네!"를 반복하면서 선생님의 말을 열심히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랑 손을 잡지?'

 봄 소풍은 보통 4월이다. 새로 같은 반이 되어서 아는 애는 알고 모르는 애는 잘 모르는 애매한 시기. 작년에 친하게 지냈던 같은 반 아이들과는 반이 갈렸고 내성적이었던 나는 새 반에서 아직 절친을 만들지 못했다. 평소 같이 모여앉는 조끼리 움직이지 않을까 살짝 기대했는데 우리 조 아이들은 벌써부터 다른 조의 친한 친구들과 모여서 다니려고 친구를 부르고 웃고 떠들고 있었다. 누구와 함께 갈지는 대충 결정된 것 같았다. 서로를 찾으면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그룹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그들은 같이 가지 않을 아이들과는 실수로라도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다. 나를 찾는 얼굴은 아무데도 없었다.


 지금 같으면 혼자 휴대폰 보면서 혹은 게임하면서 (모바일 게임에서는 점심 시간에 해야될 퀘들이 많아서 좀 바쁘다...) 김밥 먹는 것을 더 선호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나 혼자 남겨지는게 너무 무서웠다. 인싸들이 제일 먼저 가장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떠났고 다른 아이들도 나름 친한 애들끼리 모여서 하나둘 이동했다. 평소에 친구가 별로 없어보여서 '쟤랑 같이 갈까?'라고 마음속으로 점찍어둔 애들도 망설이는 사이에 얼렁뚱땅 모여서 움직이고 있었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내가 기대했던 소풍은 이런 긴장감 넘치고 진땀나는 스릴러가 아니었다. 같이 다닐 아이들을 짝지어주지 않은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결국 맨 마지막까지 남은 아이들, 아무도 데려가지 않은 아이들 몇몇 끼리 모여서 혼자가 되는 일은 없었다. 내가 이상한 애가 아니었듯이 남겨진 다른 애들도 이상한 애들은 아니었다. 우리는 갑자기 솟아오르는 동지애로 똘똘 뭉쳤다. 다른 애들도 나처럼 혼자 남겨질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우리는 안심했고 흥분했다. 별거 아닌 말에도 재미있어하면서 같이 웃었고, 아싸들끼리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 속에서 어설프지만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을 나이라는 말이 있지만, 장담컨대 그건 옆에 친구들이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혼자인 사람은 어떤 나이에도 그렇게 웃지 못한다.  

   

 이 우정은 소중했다. 돌아가는 길에 버스에서도 모여앉아야 될 친구들이었고, 나중에 이런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다시 찾아야 할 얼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놓치게 되면 소풍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같은 무리끼리 앉으려는 아이들에 이리저리 치여서 자리 잡는데 애를 먹을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자기들끼리 친한 애들 사이에 잘못 끼어앉아 주위 애들이 서로 장난치고 웃고 떠드는 동안 나 혼자 배낭을 안고 창밖을 보는 척 해야 될지도 모른다.



 부연하자면 나는 왕따는 아니었다. 그 당시에 우리 반에는 왕따같은 것은 없었고 그런 개념도 몰랐다. 나를 특별히 싫어하는 친구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쉬는 시간에는 마음 맞는 애들과 이야기하고 놀기도 했다. 아주 친해서 화장실까지 붙어다니는 그런 친구가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단체로 참여하는 레크리에이션이나 스포츠가 아닌 한 3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함께 놀기는 어려우니까 보통은 대여섯 명씩 나누어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다보면 어느 무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적극적이지 않으면 겉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른들은 막연하게 아이들은 소풍을 좋아하고, 자유롭게 풀어놓기만 하면 모두가 사이좋게 뛰어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이런 복잡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아이들이 웃고 뛰어노는 한 컷이 연출되기 위해서 어떤 아이들은 배우처럼 땀을 흘리며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바다는 평온하고 아름답지만 수면 밑에서는 수없이 많은 물고기들이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그들만의 복잡한 삶이 있는 것처럼.


 엄마가 친구들과 나눠먹으라며 싸주신 샌드위치는 결국 내가 해치워야 할 몫으로 남았다. 한 돗자리에서 도시락을 같이 먹을 친구들은 어렵게 구했지만 그들 모두 나와 비슷하게 '친구들과 나눠먹으라는' 엄마들의 특명을 받고 여분의 음식을 바리바리 싸왔던 것이다. 아싸들끼리 모인 우리 돗자리에는 오고 가는 다른 반 친구들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음식은 더더욱 처치곤란한 상황이었다. 꺼내놓은 나의 샌드위치에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남겨서 돌아가면 엄마가 걱정하고 자책할 것 같아서, 도시락을 같이 먹을 친구도 없었던게 아닐까 하고 걱정하거나 샌드위치를 맛없게 만들어서 인기가 없었던게 아닐까 하고 자책할까봐 나는 꾸역꾸역 샌드위치들을 입 안으로 밀어넣었다. 샌드위치, 나, 엄마 모두가 초라해지지 않으려면 그걸 다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소풍에서 돌아온 버스들은 학교 운동장에 멈춰섰다. 모과나무 아래에는 자식들을 기다리는 학부모들로 가득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담임 선생님의 공지사항을 듣고 나서야 우리의 봄 소풍은 끝이 났다. 나는 신나는 얼굴로 기다리던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에게 빈 도시락통이 가득 든 배낭을 건네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엄마 김밥이랑 샌드위치가 너무 맛있다고 애들이 많이 와서 먹었어. 인기 최고였어! 다음엔 좀더 싸줘."

   

 쉽지 않은 봄 소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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