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마음의 방역
가깝고 작은 것들에 집중하기
코로나19 때문에 죽겠어요. 당장 생계에도 빨간등이 켜져서 집안 분위기도 어둡고 알바든 모임이든 교육이든 외부활동은 전부 취소되고 집에만 있으려니 너무 답답하네요. 황사처럼 몰려오는 우울, 불안, 무기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있는 느낌입니다.
요즘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이 세가지예요. 공포, 분노, 혐오.
코로나19에 걸리는게 무서워요.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시키게 되는 것도 무섭고 동선공개로 사생활이 드러나는 것도 무섭고 혹시나 걸리게 되면 제가 방문한 병원, 가게 등등이 문 닫고 피해보게 될 것도 무섭네요. 저 때문에 몇주 문닫고 의사, 간호사는 자가격리된 동네 병원에 다시 진찰받으러 갈 수 있을지...
공포는 분노로 이어지죠. 이번주부터는 5부제를 시행하면서 좀 나아졌지만 지난주까지는 마스크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죠. 마스크를 사려고 하루종일 홈쇼핑을 보면서 전화번호 눌러놓고 대기하고, 쿠팡 새로고침을 계속 누르면서 눈에 불을 켜고 봐야됐었죠.
거기에 생계 문제, 간혹 외출할 때마다 느끼는 스트레스같은 것들이 더해지면서 화가 많이 나요. 특히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인 특정 종교단체나 동선 거짓말하거나 자가격리 조치를 위반하고 돌아다니거나 하는 사람들에게 심한 분노를 느꼈죠.
분노의 감정은 혐오감으로 변했어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지만, 공포와 분노가 활활 타오를 때는 사람과 죄가 구분이 안되더라고요.
방역 수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초법적인 조치를 취해야 될 것 같고 주변 사람들이 입은 손해를 다 책임지게 해야될 것 같이 느껴져요. 사실 사람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어느정도는 이기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는건데 그들에게 이렇게까지 혐오감을 느끼는 저 자신도 혐오스러워지네요.
하지만 공포, 분노, 혐오는 우리 마음에 너무 해로워요. 이런 감정들이 쌓이다보면 우울장애, 불안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죠. 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듯 우리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마스크를 쓸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제가 '마음의 방역'을 위해 하고 있는 것들을 몇가지 소개해보려고 해요.
1. 몸의 방역이 곧 마음의 방역
몸의 방역을 위해 위생 습관,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할 일들을 정해놓고 매일 반복하는 거예요. 코로나19가 통제되지 않는게 우리에게 큰 불안감을 가져다주죠.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는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예를들면 이런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죠.
* 짝수 시간마다 손씻기 (10시, 12시, 2시, 4시...)
* 얼굴에 손 대지 않기
* 마스크 걸어놓고 건조시키기
* 밥 먹고 나서 휴대폰 소독하기 (하루 3번)
*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하기
* 찌개는 덜어서 먹기
* 다이어트 안하기 (과체중이 면역력에 도움된다네요^^)
* 1일 1야채 먹기
* 스쿼트 하기
* 1일 1유머 찾아보고 공유하기 (우유처럼 매일 유머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네요...)
위생과 면역력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다이어리나 메모장앱에 기록해두세요. A4용지에 적어놓고 실천할 때마다 '참 잘했어요' 스탬프를 찍거나 스티커를 붙여도 재밌겠죠.
이렇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매일 해나가다보면 불안감을 덜 느낄 수 있어요.
2. 그림일기 쓰기
도자기 수업 때 만든 잔을 물통으로...준비물: 집에 있는 미술도구 아무거나, 무지 노트, 연필
크레파스, 색연필, 색종이 등등 아무거나 괜찮아요. 유치원 때 집에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나 초등학교 때 그림일기를 썼던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미술도구를 골라보세요. 저는 성격이 급해서 수채화는 너무 어려워했는데 수채화 느낌은 또 좋아해서 항상 수채색연필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그래서 오랜만에 수채색연필을 꺼냈죠.
그림 일기장이 따로 나오긴 하는데 좀 얇아서 수채색연필로 그리기는 어려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보통 공책보다는 두껍고 도화지보다는 좀 얇은 무지노트를 선택했어요. 노트의 반 정도는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고 나머지 반에 그림을 그리는 걸로 했어요.
주제는 그날 가장 인상깊었던 것 중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것. 그림 그리는게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어차피 나만 보는 일기잖아요. 그림 못 그려도 누가 평가하는거 아니니까 그냥 진짜 마음대로 그리면 되는 것 같아요. 그림 그리기 좀 힘들다 싶으면 색칠이라도?
미술이라는건 우리의 어린시절을 소환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인 것 같아요. 색연필을 잡고 색칠을 하는 것만으로도 어릴 때의 에너지를 충전받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미술치유라는게 있나봐요.
글을 쓸 칸이 적다는 것도 의외로 괜찮았어요. 미사여구는 다 빼고, 수식어도 거의 빼고 어릴 때처럼 아주 단순한 사실들만 쓰게 되는데 그런 일기가 주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글과 함께 생각이 단순해지는 느낌도 있고, 또 굉장히 솔직한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정리하거나 검열하지 않고 그냥 머리에서 나오는 그대로 일기를 쓰게 된다랄까요.
아무튼 그림일기 쓰기는 저에게는 심리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어요. 한 1년 꾸준히 써볼까 생각중이에요.
3. 면 마스크 만들기 (필터교체형)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기 전에는 마스크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었잖아요. 그러다가 정전기 방지 필터를 끼운 면마스크도 효과가 있다는 기사가 나와서 마스크 필터를 덜컥 구입해버렸죠. 마스크 필터를 구입하고 나니까 면마스크가 있어야 되겠더라고요.ㅎㅎ 하나 살까 하다가 마침 집에 천도 있고 해서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천은 세겹 준비하시면 될 것 같아요. 겉감, 안감1, 그리고 필터를 끼워넣기 위해서 양쪽이나 가운데 부분을 터놓은 안감2. '천싸요'(홈페이지에 가면 도안 있어요)의 도안은 양쪽을 트는 방식인데 그러면 필터를 넣기가 좀 힘들어요. 그냥 가운데 부분을 트는게 필터 넣기에는 더 좋은 것 같아요.
분홍색 마스크는 따로 도안 없이 그냥 KF94 마스크를 반 접어서 놓고 따라 그리는 방식으로 패턴을 만들었어요. 패턴 만드실 때 주의하실 부분이 있는데, 마스크는 위와 아래가 모양이 좀 달라요. 그래서 패턴 종이에 위, 아래 구분을 확실하게 써두시고 마스크 겉감, 안감 바느질하실 때도 신경 쓰셔야 돼요.
흰색 마스크는 '천싸요'의 도안대로 만들고 양쪽에 자수도 놓고 재미있었지만... 착용해보니 KF94 마스크를 따라서 만든 분홍색 마스크가 더 잘 맞더라고요. 턱도 완전히 감싸주니까 미세먼지 용으로도 분홍색 마스크가 더 나은 것 같아요.
저는 남들보다 코가 낮은 편이라 일반 마스크를 끼면 아무리 와이어를 코에 맞추려고 해도 잘 안되거든요.ㅠㅠ 그... 남들에게는 코가 어느정도 솟아있는 그 부분에서 저는 코가 시작되기 때문에... (신생아 때도 코가 너무 낮아서 할머니가 코 높아지라고 손으로 자꾸 만져주셨대요ㅋㅋㅋ) 그래서 분홍색 마스크 만들 때는 와이어를 일부러 좀 길게 넣었어요. 그랬더니 일반 마스크보다 훨씬 더 밀착되고 잘 맞아요. (대신 단점은 와이어를 너무 누르시면 볼살이 마스크 밖으로 삐져나옵니다^^)
와이어가 따로 없어서 저는 빵봉지 묶는 철사를 넣었는데 그래도 잘 되더라고요. 다만 마스크를 장시간 착용하려면 마스크 끈이 부드러워야 해서 마스크 끈은 따로 구매하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마스크 부자재'로 검색하시면 마스크 끈, 의류용 와이어를 함께 구매하실 수 있어요.
설령 면 마스크를 안 쓰게 되더라도 한번 만들어보시는걸 권해드리고 싶어요. 마스크 하나 만드는데 저는 3시간 정도 걸렸어요. 미싱이 없어서 손바느질로 만들다보니 더 느렸죠. 영화 '말모이' 보면서 만들었는데 시간 진짜 순삭이었어요. 만드는 동안 불안감이나 우울감도 잊어버릴 수 있었고 다 만들고 나서는 성취감이!!! 더 만들면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도 있겠죠?
마스크 5부제 덕분에 그래도 일주일에 마스크 2장은 확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저는 당분간은 천 마스크에 필터 끼워서 쓰려고 해요. 아무래도 더 효과가 좋을 KF94 마스크는 부모님 쓰시게 해야될 것 같습니다. 30대인 저보다는 60대인 부모님이 더 안전에 신경쓰셔야겠죠.
4. 등산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