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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May 11. 2020

30대에도 자라고 있다

전남친의 연락, 일기

 

 30대는 뭔가 자리잡고 열매 맺을 시기인 줄 알았는데 아닐 수도 있나보다. 물론 이미 나무가 되어 무성한 가지를 드리운 30대도 많겠지만 나나 전남친은 아직도 자라고 있는 새싹인 것 같다. 식물마다 속도가 다른 것은 아닌지.


 어제 전남친에게 문자가 왔다. 헤어진지 5개월 만이었다. 그 답게 맥락 불문, 전후사정 불문한 문자였다. "만나서 커피 한잔 할래?" 


 "왜?"라고 물으니 그는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더 물어보니 "커피 마시기 좋은 날씨 같아서."와 함께 "언제 시간돼?", 요즘 코로나로 외출 안한다니까 "그래, 그럼 코로나 끝나고 보자."라는 대답이 이어졌다. 이분 최소 커피 맡겨놓으심...


 '헤어졌고 5개월간 연락 안한 연인 사이'라면 특별한 이유 없이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만나자고 하려면 잘 지내냐고 안부부터 묻고 연락한 이유를 설명하는게 보통이지만 그는 그걸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별하고 나서 우연히 그를 이해할 단서를 찾게 된 나는 더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 대충 이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전혀 없어서 차분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쪽에서 오히려 그의 안부를 묻고 차근차근 대화를 시도해서 그가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겨우 끌어냈다. 그는 나와 헤어지고나서 심리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자기의 어린시절 부모님과의 관계, 학교에서의 안좋은 기억들을 돌아보면서 자기가 왜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걸 두려워했는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많이 달라졌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있다고.




 사실 나는 거기에 좀더 깊은, 다른 문제가 있지 않을까 의심하긴 한다. 가령 약간의 아스퍼거 성향같은. 내가 그에게서 가장 크게 느꼈던 문제들은 그가 자기 감정, 생각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부분일뿐,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그의 '자기집중적'인 모습이었다.


 자기중심적인 것과는 좀 다른데,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외부 세계를 인식하면서도 자기를 중요시하는 경우라면, '자기집중적'인 사람은 외부 세계와 차단되어있다. 내가 느낀 그 사람은 유리 어항 속에서 굴절된 외부 세계를 어렵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가 경험하고 만지고 소통할 수 있는 세계는 그 자신밖에 없는 것 같았다. 외부세계는 그가 어쩔 수 없는 곳에서, 그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여자친구의 존재도 비슷했다. 그는 내 이야기를 잘 듣지 못했고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나에게 다가오고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에게 나는 티비 드라마나 영화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드라마나 영화는 보는 사람이 줄거리나 결말에 아무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보는 사람이 아무리 쏘지 말라고 외쳐도 주인공은 총을 쏜다. 마음에 안 드는 결말이라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도 내가 그런 드라마인 것처럼 내가 화내면 당황하면서 받아들이고, 내가 웃고 즐거워하면 기뻐하면서 받아들였다. 주인공들과 소통은 안되지만 우리가 영화에서 재밌는 장면을 보면 웃는 것처럼. 


 맨 처음 헤어지자고 했을 때 그는 잡지도 않고 이별을 바로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나의 호의는 계속될거고..."라는 이상한 말을 덧붙이면서. 드라마에서 이별 장면이 나왔고, 슬프지만 대응 방법을 몰라서 일단 수용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진지하게 말하면 그는 항상 열심히 듣는 듯 했고 모든 것을 수용했지만 나중에 보면 내 말은 그를 스치고 허공으로 날아가 있었다. 처음에는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는 내 말에 어떻게 응대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걸로도 과부하가 걸려서 일단 모든 것을 받아들인거고, 말의 내용까지는 미처 처리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느날 내가 심각하게 화를 내면서 그와 결혼 못하겠다고 한시간쯤 이야기했는데, 다음날 그는 어제 아무 일도 없었던듯 '유학 안가고 너랑 결혼해서 여기서 살래'라고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어이없어서 어제 내가 했던 말이 기억 안 나냐고 했더니 그는 기억은 하고 있었는데 그 정보가 처리되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이 드냐고 묻자 그는 한참후에 이렇게 말했다. "음... 너가 나랑 결혼하고 싶어하도록 내가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에는 이해가 안되었던 대화들이 더 있다.



 남자: "난 결혼해도 음반 사고 취미생활에 돈 많이 써야 되는데 그런거 이해해줘서 고마워. 너가 그걸 이해해주는 사람이라 너무 기뻐."

 

여자: "우린 아이 안 가질 거잖아. 어느정도는 돈 편하게 써도 돼."

 

남자: (갑자기 깜짝 놀라며)

 "헉... 아니야, 우리 돈 엄청 아껴야 돼. 나 돈 많이는 못 벌거야."

 

여자: (어쩌라고.. 니는 많이 쓸거라면서 나만 아끼라는거야?)

 "음... 있지, 나는 돈 진짜 안써. 한달에 5만원도 쓸까 말까야. 난 버스비 아끼려고 걸어다니고, 우리 데이트할 때 밥 먹는거 외에는 밖에서 거의 돈 안써."


남자: (갑자기 걱정스러운 얼굴로)

 "앗... 나 때문에 너 돈 너무 많이 쓰는거 아냐?"


여자: "그런건 아냐. 그게 아니라 난 원래 돈 아끼는 사람이라고."


남자: (안도하며)

 "다행이다. 난 너 돈 많이 쓰게한 줄 알고..."


 이런 식의 대화들이 많았는데 그때는 왜 핀트가 조금씩 어긋나는지 이해가 안됐다. 그런데 헤어지고 나서 '내 남편은 아스퍼거'같은 책이나 성인 아스퍼거에 관한 유튜브 영상들(썸머's 사이다힐링)을 보다보니 이런 대화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다. 바로 말을 문언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때는 자기 취미생활에는 돈을 많이 쓸 거라고 하면서 내가 돈 편하게 쓰라니까 엄청 아껴야된다고 걱정하던 그를 오해했다. 나한테는 '나는 쓸거 다 쓰겠지만 너는 돈 엄청 아껴야 된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말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러면 모든 대화가 이해된다.


 사실 그는 대화의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딩크 할거니까 편하게 돈 써도 된다고 한 것은, 그가 바로 앞에 했던 말 때문이었다. 결혼 후에도 월급 상당부분을 음반, 커피 등에 쓸 예정인데 그걸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하니까 나는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돈 써도 되는 상황이라고 말해준거였다. 내가 편하게 펑펑 쓰겠다는게 아니라.


 그는 그런 맥락을 전혀 몰랐고, 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는 내가 돈을 펑펑 쓸 생각인걸로 이해하고 깜짝 놀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돈을 엄청 아껴야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의 말을 오해했고 기분도 나빴다. 음반을 사러 가면 10만원은 쉽게 쓰고 매일 밥약속 잡아서 외식+카페 다니고, 운전면허 없는 서울살이가 10년이 넘었는데 대중교통 환승시간도 모르는 남자가 나에게 절약해야 된다고 가르치려 하다니. 좀 화가 났다.


  자기 취미생활에는 돈을 상당히 쓸 거라고 말해놓고는 엄청 절약해야 한다고 걱정스럽게 말하면... 2인 가구에서 절약할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나는 내가 원래 돈 안 쓰는 스타일이고 너랑 데이트 할 때 쓰는게 전부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의 의미는 '나는 잘 아끼니까 돈 아끼고 싶으면 너만 아끼면 돼'였지만 그는 이 말도 말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자기와의 데이트 때문에 내가 돈을 너무 쓰는게 아닌지 걱정했다. 앞의 대화 맥락은 사라진 것이다.


 이밖에도 여러가지가 있었다. 비꼬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표정 변화 거의 없음, 공감하는 방법을 모름, 일방적인 대화, 특이한 고집, 높은 불안감, 책의 문장을 외워다가 말하는 듯한 말투, 철덕 등. 성인 아스퍼거에 관한 영상이나 책을 보면 한 70% 정도는 공감되는 내용들이었다. 그가 여기에 속하든 아니든 나는 이런 책, 영상들을 통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해서 답답하고 화가 났던 그의 특징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니까 그 사람이 어떤 범주에 속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가 우울증이 있다고 정신병 있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설령 그 사람이 그런 범주에 속한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사실 그건 문제가 아니라 개성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이 서로 모여살아야 하니까 공감이 어렵다거나 의사소통에서 어긋난다거나 하는 것이 문제처럼 느껴지는 거지... 사실은 그 사람 혼자 산다면 그는 완전하고 아무 문제도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모여산다고 해도 '문제'아니지 않을까? 서로 다르니까 이해하고 맞춰갈 수 있는 일 아닐까 싶다. 남친이 자신의 특성을 알고 나에게 자기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해줬다면, 나는 그렇게까지 화를 내고 못 견뎌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해가 되니까.


 나는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정리정돈을 못하고 그는 설거지를 못하는 사람이라면, 서로 안되는 일들을 이해하고 도우면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지 않았을까.



 우리는 때로 자신과 다른 것,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집단의 주류('정상'이나 '상식'이라고 부르는 것)와 다른 것을 배척하고 문제화 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오이를 싫어하는 습성부터 동성애나 트렌스젠더같은 것까지. 어떤 경우에신체적, 정신적 장애도 여기에 포함된다. "나는 정상이고 쟤가 문제니까 나는 쟤를 이해할 필요가 없어. 쟤는 치료를 받아야 돼."


 나도 한때 그래서 전남친을 미워했던 것 같다. 이해가 안되는 전남친을 문제라고 규정하고 배척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그런 사고방식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도 나에게 좋지 않은 것 같다. 배척하는 쪽에 속하려면 나는 주류와 다른, 내가 진짜 원하는 것들, 내 진짜 모습들을 숨기고 억압해야 한다. 하다못해 어려운 자리에서는 못 먹는 음식도 꾸역꾸역 먹어야 한다.


 배척당하는 쪽에 속할 때, 나는 남과 다른 내 모습이 개성이라고 주장하지 못한다. '정상'이 아닌 거니까. 그리고 자기혐오를 선택하게 된다. 우울증을 가져오는 바로 그 자기혐오 말이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면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나와 다른 남을 배척하고 싶지 않고, 같은 논리로 남이 자신과 다른 나를 배척하게 놔두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나는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한다고, 나는 이런 경험이 있어서 남들과 달리 이런 말은 이렇게 받아들인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남들이 하는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남친이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자신을 좀더 이해하게 되고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는건 그가 이제는 남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내가 상처받으면서 찾아낸 그의 모습들을 이제는 그가 스스로 찾고 있었다.


그가 그 나름의 속도로, 자신의 방법으로, 열심히 성장하고 있는 것은 보기 좋았다. 내가 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아마 다음 여친을 사귈 때는 자기는 이런 사람이라고 설명해주고 맞춰갈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는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다시 사귈 일은 없고, 전남친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괴로움이 많았어서 다시 친구가 될 일도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그의 여정을 응원해주고 싶었다.



 三十而


서른 살에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어, 도덕상으로 움직이지 않음을 이르는 말 (출처: 다음 사전)


......이건 평균수명 40세였을  때 이야기인거 아닌가요?

요즘 30대는 아직 새싹들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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