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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Apr 15. 2023

매일 응원해주는 친구가 있다는거

고마워, 우리 좀더 살아보자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우울증과, 목구멍까지 차오른 얼음같은 외로움을 녹여준 친구의 이야기다.



지금까지 내가 우울증에 관해 쓴 모든 방법들은 혼자서도 실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방법만은 혼자 할 수가 없다. 누군가 좋은 사람이 함께 걸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친구가 있으면 우울증이 나아요'라고 쉽게 말하기가 망설여지지만, 그래도 우울증에서 친구의 중요성에 대해 한번쯤 써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아서... 쓰게 되었다.   


나에게는 2027. 9. 10.까지 한번 살아보자고 약속한 친구가 있다. 그 전엔 마음이 아무리 힘들어도 버텨보기로... 우리 카톡방의 공지로 등록되어 있다. 작년에 했던 약속인데 가끔 힘들 때 눌러보면 다시 기운이 난다.


그 카톡방에서 우리는 거의 매일 간단한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 응원과 칭찬과 위로를 나눈다. 누군가한테는 오글거릴지도 모르겠지만 '예쁜 말'만 서로 나눈다. 마음의 거리가 있어서 그런건 아니고, 친구도 나도 마음 치유에 관심이 아주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우리는 서로를 지지해주는게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방법이라는걸 믿는다.    


서로에게 건네는 응원, 칭찬, 위로의 말 한마디, 그리고 언제나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건 정말 어마어마한 힘이다.



그리고 사람은 절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친구가 필요하다. 우리는 항상 자신의 생각에 갇혀서,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본다. 나는 내가 너무 소심하고 초라해보이고 멍청하게 사는 것 같은데 남이 보는 나는 엄청 당당하고 잘 살고 있을수도 있다.


그래서 가끔 모임에 가면 나보다 예쁘고 잘생기고 밝아서 인생에 고민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전 못생기고 사회성 좋지도 못해요'라고 고백하는... 난감하고 신비로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그런걸 느낄 때도 많다. 나는 친구가 굉장히 예쁘고 당당하게 자기 인생 잘 만들어가면서 살고 있다고 보이는데 친구는 아니라고 느낄 때도 있다. 반대로 친구는 내가 용기있고 대단하다는데 나는 스스로 쭈구리라고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내가 나를 정확하게 보려면 친구도 꼭 있어야한다는걸 알게 됐다. 덧붙여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된다는 말을... 나는 친구를 통해서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몇년 전에 우울증으로 한창 힘들 때, 공감인의 치유 모임에서 이 친구를 만났다. 그 모임에 온 사람들은 스펙트럼이 다양했는데 나는 중간 정도(우울증이나 사회적 고립의 정도가...)였고, 친구는 그런건 아니고 그냥 힐링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어서 온 경우였다.


그때 나는 공황이나 우울, 불안 등으로 좀 아픈 상태였고 낯선 사람들과 처음 모인 상황이라 긴장해서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연히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그 친구와 마주쳤는데 먼저 웃어주고 말을 걸어주었던 것 같다. 친구가 이끌어주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함께 복도를 걸었다.


친구의 첫인상은 '빛난다'는 느낌이었다. 긍정적이고 여유로워 보였다. 원래 나는 적극적이고 아주 밝은 사람들, 파위 E는 힘들어하는 편이다. 그런데 친구는 달랐다. 엄청 밝고 에너지도 넘치는데 그만큼 따뜻하고 친근했다. 봄에 해가 잘 드는 곳에 앉아있으면 따뜻하고 노곤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어렵게 노력하지 않아도 선뜻 나를 친구로 들여놓아주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도 쉽게 어울릴 수 있게 해주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기억이 잘 안난다. 그 모임에서 예술 워크샵을 하고 춘천에도 다녀오고... 그러다 어느순간 친해졌다. 그때 반년간 함께 했던 시간이 지금까지 친구 사이로 이어졌다.



나같은 사람이 친구가 생겼다는건... 순전히 이 친구가 나를 놓지 않은 덕분이다. 전에 다른 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카톡 답장 늦고, 카톡 대화 어색하고, 만나서도 주로 들어주는 역할이지 대화는 노잼이다.


특히 그때는 자주 만날수도 없었다. 내가 표면상으로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빠의 간섭이 아주 심했고, 그 다음엔 코로나가 터져서 아빠의 불안장애가 하늘을 찔렀기 때문에 외출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멀리 사는 것도 아닌데 1년에 겨우 한번 정도 만났던 것 같다.


그럼에도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항상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주고 자신의 빛을 비춰주는 것이 친구가 가진 재능이자 인품이다. 때로는 그걸 질투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친구는 자기만의 신앙과 가치관을 갖고 용서하려고 노력하고, 실제로 용서하며, 또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걸 주저하지 않는다.


가끔은 마음이 좀 아플 때도 있다. 친구가 많은 것을 베풀어주고도 도리어 상처를 받게 되는 상황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그 친구의 깊이라는 것도 느껴진다.


나라면 쉽게 미워하고 서슴없이 손절하고 다음번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을텐데, 그러지 않고 다시 빛을 내고 나눠주는 그 친구의 마음이 참 깊다. 20대 때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일을 겪어오고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투쟁해온 내공(?)이 느껴진다. 내가 존경하고 배우고 싶어하는 부분이다.



(2) 산천의 불을 끄네 (吹灭小山河) - 쓰난 (司南, 사남) with 궈펑탕 (国风堂, 국풍당) / 가사해석, 번역, 병음, 발음 [중국노래 / 틱톡] - YouTube


이 노래는 어릴 때 친했던 두 친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명이 산천의 아름다움과 풍류에 빠져 고향을 떠나 떠돌게 된다. 그러다 아주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친구를 만났는데 바로 그 친구의 얼굴에서 산천보다 더 큰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친구의 곁에 머물기로 했다는 이야기다.


노래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생의 장단보다는 누구와 함께할지를 고민해야 해. 수많은 이가 내 인생이란 연회에 드나들지만, 오직 벗만이 용감히 앞으로 향하여 한 자리를 차지하여 동행해주네."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바로 이 친구가 생각났다. 내 인생에서 한 자리를 차지해 함께 걸어가주는 고마운 사람이라서. 누군가와 친해지려면 용기를 내야한다. 함께 보조를 맞춰 걸어가려면 배려도 하고 노력도 해야한다. 그러려면 마음을 열고 진심을 줘야한다.


나는 중학교 때 집단 따돌림을 당한 이후에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 없고 다가가려는 노력도 어려웠다. 그후 은둔형 외톨이로 살면서 관계를 맺는다는게 어떤건지도 잊어버렸다. 그런데 친구가 나보다 더 노력해줘서 같이 걸어갈 수 있었다.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다.


나는 친구의 얼굴에서 산천의 아름다움보다 더 큰 아름다움을 봤다는 말에 공감한다. 내가 인생을 다 아는건 아니지만 최소한 우울증 중에, 그리고 우울증 이후에 재건하는 삶에서는 얼마나 많은 것을 이뤘는지보다 누구와 함께 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나를 지지해주고 사랑해주는 단 한 사람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삶의 많은 부분이 채워지고 의미가 부여된다.



공감인 프로그램 중 마지막 날, 친구가 노래를 불렀다. 'You Raise Me Up'이었는데, 성악 전공자의 노래라 역시 급이 달랐다.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였고 우리가 모임에서 다함께 경험한 것과 맞는 내용이라 감동적이었다.


순간 눈물이 났는데 그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래 계획했던 것처럼 시험도 합격하고 직장도 잘 다니고 그렇게 살았더라면 나는 이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을/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친구를 이렇게 만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 지금의 내 삶을 긍정할만한 한가지 이유를 찾았다. 이 친구를 알게되고 서로 응원해주면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이 멋진 기회와 시험 합격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전자를 고를 거라는걸 그 순간 느꼈다. 


인생을 살아가려면 내가 행복하고 내가 단단해야 하는게 1순위인데 그걸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뭐랄까... 혼자 붕어빵을 파는건 스스로 초라할 것 같은데 친구랑 둘이 팔면 당당하고 재밌을 것 같다. 같은 상황이라도 내가 받아들이는게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친구>>사회적인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내가 (비록 I이지만) NFP라 그럴수도 있지만... 우울증과 죽음의 위기를 겪어본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알지 않을까 싶다. 나를 살게하는 무언가 중요성을.


나랑 친구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같이 걸어가면서 서로가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 오래 살고 잘 살아서, 우리처럼 남들이 잘 안가는 길을 가면서 외롭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도 하고싶다. 재미있을 것 같고 견딜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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