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좀 과한걸까? 그런데 나는 때로는 이게 한 사람의 생사를 가르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망했을 때 가장 가까운 가족이 어떻게 받아들여주는지는 정말 너무너무 중요하다.
실패는 어떤 경우에도 아프다. 일단 망했으면 바위에 맞아서 으스러진 것 정도로 마상은 입는다. 그렇지만 예후는 다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가족, 친구)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이 부상자는 치료를 받아 완쾌할 수도 있고, 상처가 곪고 또 곪다가 사망할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아무리 망했어도 내 부모, 내 친구가 괜찮다고 해준다면 괜찮은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진짜 다 괜찮은건 아니고 많은 아픔이 있긴 하겠지만 최소한 치료는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포자기하고 자살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대신, 마음을 치료하고 다독이면서 어떻게든 버티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어느날 진짜 괜찮아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내가 말하는 괜찮다는건 "한두번의 실패는 괜찮아. 기운내서 다시 도전해보자."라는 위로가 절대 아니다. "니가 그렇게 힘들면 그만둬."라는, '남들은 잘하던데 니가 능력이 안되면 어쩔 수 없지'로 들리기 쉬운 위로도 아니다.
"이거 안해도 돼. 이거 되든 안되든 넌 내 자식이고 니가 제일 소중해. 이건 니 길이 아닌거야. 너 말고도 세상 구할 사람 많거든? 넌 편하게 살아. 아빠가 너 하나 못 먹여살리겠냐. 너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못하게 했을거야."라는 위로가 나는 좋았다.
(아빠의 말은 나가 죽으라는 말 80%, 이 말 20% 정도를 오락가락 했는데 나한테는 이 위로가 정말 소중했고 나머지 80%를 버틸 힘이 됐다.)
내가 우울증으로 학업성적이 C로 도배될 때, 나는 항상 부모님의 눈치를 봤다. 내 솔직한 마음은 그만두고 싶었는데, 너무 지쳐서 더 나아갈 수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 말을 참 한번도 입밖에 꺼낼수가 없었다.
아빠가 그 길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고 그것만 바라보면서 10년 넘게 왔다는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 자신도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동안 시야도 너무 좁아져있었고(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했다), 가던 길을 타성적으로 갈 힘은 남았어도 그 길에서 벗어날 용기는 낼 힘은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 패배를 선언하는게 내가 벌레만도 못한, 무능력한 인간이라는걸 인정하는 것 같아서 차마 할 수가 없기도 했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시험에 실패하고 첫 일자리를 얻게 됐다. 9개월짜리 최저임금 정도 받는 기간제근로자였지만 사실 나는 만족스러웠다. 시험에서 벗어나서 일단 숨을 쉴 수 있었고 처음으로 월급다운 월급도 받고 옷도 사고 인간다운 모습으로 다니고 칭찬받으면서 일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패에 대한 아픔은 너무 컸다. 우울증이 다시 돌아온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내가 인생에서 이 실패를 절대 극복할 수 없을거란 절망감도 있었다. 그래서 지난 2년간 이 브런치를 닫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우울증에 다시 안걸릴지, 자살을 안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시험 그만두고 산에 가서 살자고 할만큼 지지를 해줬지만 아빠가 문제였다. 아빠 본인이 우울증이 왔고 부부 싸움이라도 하면 나를 소환하면서 쟤 실패하고 자기는 인생에서 아무 희망이 없다며 둘다 나가라고, 자기는 죽는 것밖에 안남았다고 고함지르기 일쑤였다.
물론 아빠도 마음을 다잡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진심이 아니면서도 위에 썼던 말을 가끔 나한테 해주었다. 그건 니 길이 아니었고 자기도 원하지 않는다고.
그러면서도 우울증 상태에서 나한텐 잔인한 말들을 했다. 본인도 솔직하게 말을 했다. 너를 생각하면 이런 말을 하면 안되는걸 잘 아는데 그게 안된다고. 나도 마음에 상처를 받았고 시간이 필요하다고.
사실 가장 큰 상처를 받은건 난데 아빠의 상처까지 받아주려니 너무 힘들었다. 저 꼴로 산다느니, 쟤가 뭘 할 수 있겠냐느니, 차라리 그때 자살하지 그랬냐느니 하는 소리들을 지난 2년간 들었다. 나에겐 소중한, 그리고 내가 현재의 나를 긍정하기 위해 '소중해야할' 내 직업을 아줌마나 하는 일이라고 비하할 때도 힘들었다.
가장 가슴 미어졌을 때는 아빠가 진지하게 나를 보면서 "넌 괜찮냐? 죽고싶지 않아? 그렇게 사느니 좀 나가서 죽어라."라고 할 때였다.
진짜 위험하다고 느꼈을 때가 그때였다. 그래도 다시 우울증에 빠지거나 죽지 않은건 그동안 내가 쌓아온 내공 덕분인 것 같다. 나는 우울증을 쌩으로 이겨내서 벗어나본 사람이니까 확실히 그만큼 강해지긴 했다. 그리고 우울을 제때 감지하고 벗어나는 방법도 안다. 집에 늦게 들어가서 최대한 마주치지 않고, 무료 심리상담도 두군데나 찾아서 받고 원데이 클래스며 공익활동가 교육도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이놈의 직업은 (이거 하나는 진짜 불만이었다) 9개월짜리 계약직이라 꼭 1~3월은 쉬게 되어있었다. 그 기간동안에는 집에서 아빠와 지내야 하니 미칠 노릇이었다.그것때문에 적극적으로 이직을 알아본 것도 있었다.
지금은 아빠가 어느정도 받아들이기도 했고 현재 내 직업에 만족하기 때문에 나도 한숨 돌리게 되었다.
자식이 망했어도 무조건 인정하고 존중해달라는 것, 부모도 사람인데 힘든 일이고 너무 과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식이 죽어도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를 한번 생각해보시라고 꼭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독해서, 20년간의 우울증으로 맷집이 생겨서 버틴거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뭐가됐든 실패한 사람은 무장해제된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안 찔러도 아프고, 툭 쳐도 억 하고 죽을 수 있다. 그게 중간고사든 고시든.
그 상황에서 독한 말 한다고 정신차려지고 일어나진다는건 심각한 오해이다. 감기 걸려서 아픈 사람한테 독감까지 옮겨놓으면 더 빨리 낫는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달까.
때로는 그게 자살의 트리거가 될 수도 있다. 항상 낭떠러지에 있는 사람을 밀어 떨어트리는... 마지막 한방이 될지도 모른다. 그 독한 말이.
따지고 보면 자식 본인의 실패인데 부모의 마음이 더 아프다는건 부모의 욕심도 있는거다. 자식을 자신의 아바타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자식이 날 장식해주는 악세서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모진 말이 나오는거 아닐까?
다 떠나서, 어차피 이 상황에서 부모든 당사자든 할 수 있는 건 딱 한가지다. 실패한 현실을 인정하고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살 방법은 그것뿐이다. 못 받아들이면 우울증 무기징역을 살아보거나 그것보다 빠른 자살을 선택하거나 하는 선택지밖에 없다.
"어떤 걸 선택하시겠어요?"
그나마 부모가 빨리 마음 정리하고 자식을 다독여준다면, 자식이 더 빨리 일어나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도 있다. 그러면 그깟 실패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다. 다 망한 줄 알았는데 원래 원했던 것과 비슷한 성공을 이뤄낼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케이스들을 정말 많이 봤다.
정 어렵다면 가끔 한번씩이라도, 본심은 아니라도 진심인 것처럼 말해주면 좋겠다. 자식이 나처럼 그 말 한마디 붙들고 살아날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