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직장은 나에게는 제대로 된 첫 직장이다. 그전까진 여유롭고 따뜻한 동네에서 어리광부리면서(?) 일을 했고 직장동료나 상사도 없었기 때문이다. 의전이나 여러가지는 있었지만, 그래도... 회장님이나분과장님들이나 위원님들은 '타인'은 아니었다. 그냥 내 입장에서만 써보자면, 난 그분들이 '아빠 친구분들' 같았다.
그래서 그냥 부모님 대하듯 했다. 핸드폰 잃어버리시면 연락처 복구하는 것도 도와드리고 일정관리도 해드리고 살갑게 전화도 가끔 드리고 커피도 타드리고 말동무도 해드렸다. 물론 사업에 참여자들 없다고 주변에 좀 모시고 와달라고 떼도 많이 썼다.
난 편식이 심한 편인데 평소에는 사회생활에서 숨기지만, 거기서는 그냥 100% 솔직하게 말했다. 못 먹는건 못 먹는다고 하고 다른거 사달라고 하고 술 싫으면 안먹고 등등. 그래도 버릇없다고 하시는 분은 없었다. 요새 애들 다 그렇지 뭐...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진짜 사회생활을 하려니 적응이 잘 안된다. 여기선 내 역할이 좀 달라졌다. 나보다 어린 직원들에게는 언니 역할도 해야하고 (애교로 먹고 살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의미다...), 30~40대에 맞는 대화도 해야하고, 싹싹해야 하고 뭔가 해야될게 많아졌다. 다양한 가면을 써야 한다랄까.
그런데 나는 내 나이만큼의 경험치가 없다보니 배우지 못한 것도 많고, 사회생활에서의 나는 아직 스무살 정도에 머물러 있다. 속으로는 불안에 떨고, 이렇게 말할까 저렇게 말할까 수십번도 더 재고, 뭘 해야할지 몰라 당황하고 진땀이 난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잘난척 한다거나 나이에 안맞게 애기짓 하는걸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난 진짜 모르고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남들을 보고 열심히 배우고 시도해보고는 있지만 부족한게 많을 수밖에 없다.
어른들 사이에서는 듬성듬성한 내 사회성으로도 괜찮았지만 이제는 좀더 촘촘해져야 한다. 업무도 어렵지만 사회성 키우기도 참 어렵다. 마을을 안 거치고 처음부터 진짜 직장에 왔더라면 난 정말 적응을 못했을 것 같다. 요즘도 ADHD약과 불안장애 약으로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약간 눈물이 날 뻔 했다. 상대방도 좋은 마음에서 가르쳐주려고 한건줄은 알지만, 난 몰라서 안한게 아니라 하려고 했는데 기회도 놓치고 어쩔 줄 몰라하다 못하고 있었던 거였다. 속상해서 조금 울고싶은 기분이었다.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부끄러워서... 그래도 친절하게 도와주는 사수 덕분에 기분이 풀렸다.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그런데 뭐랄까... 지금의 내가 그냥 나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서툴지만 앞에 나서서 상처를 주지는 않는다. 조용해서 재미는 없지만 진지하고 남의 말을 상냥하게 들어주는 성격이다. 나는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진심으로 대하고, 장점을 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내가 보는 상대의 장점들을 말로 표현해준다. 그게 사람을 지지해준다는걸 아니까.
그게 나인 것 같다. 조직이고 함께 살아가니까 더 배우고 더 친밀한 사람이 되고싶긴 하지만 그래도 내 성격, 내 장점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난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게 아니라 좀더 먼저 손내밀 수 있는 내가 되고 싶을 뿐이다.
음... 그러고보니 별일 아닌 것 같다. 별일 아닌건 아니지만 별일 아닌. 나한테 내가 아닌걸 기대하지 말자. 내 나이만큼의 경력직인척 하지 말고, 겉으로 그런 척 해버리고 속으로는 어떻게든 채워보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신입으로 살자. 난 '초보운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