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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May 11. 2023

친구가 해준 치유 워크숍

상담은 진심이 반이라는거


작년 말에 받은 상담은 지금 정리해보니 좋았지만, 그 당시에는 찜찜한 상태로 끝났다. 아빠에 대한 분노와 내 안에 여러가지 헤아릴 수 없는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고 끝났기 때문이다. 상담사 선생님도 더 상담을 받는게 좋겠다고 하셨지만 그때는 형편이 좀 안됐다.


집중적으로 진행됐던 상담이 끝나자 마음이 좀 붕 뜬 상태가 됐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할지, 어떤 생각이 맞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새해가 되고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예술치유에 관한 수업을 하는 강사이기도 하다. 나는 기대도 안했는데 내가 힘든걸 알고 친구가 먼저 질문 카드를 가져와 이야기를 풀어가주었다. 우리는 하나씩 질문을 열고 대답을 했다. 어떤 건 나만 대답하기도 했고, 어떤 건 번갈아 대답하기도 했다.




먼저 나의 성공경험에 관한 질문이었다.

나는 5번의 수능 끝에 **대학교에 합격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친구가 그때 기분이 어땠냐고 물었다. 그때 기분은 엄청 좋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드디어 해방된 느낌이었다.


특히 좋았을 때는 언제냐는 질문에 나는 신입생 OT에 갔을 때 이야기를 했다. 수시 합격자 OT가 있었는데, 눈이 엄청 많이 내렸다. 눈 내리는 교정을 걷는데 한걸음 한걸음이 설렜다. 내가 이런 대학에 합격하다니 하는 기분도 있었고 정말 너무 오랜만에 느끼는 자신감도 올라왔다.


결국 눈이 엄청 많이 와서 버스가 다니지 못했고 아빠가 차로 데리러 와야하는 상황까지 있었지만, 그런 것까지도 좋았다. 어두컴컴한 저녁, 눈 속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나는 취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친구의 질문에 갑자기 그 기억이 떠올랐다.


친구는 글을 잘 써서 **대학교에 간건 정말 대단한 성공이라고,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글을 잘 쓰니까 앞으로도 브런치에 열심히 글을 올려보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했다. 갑자기 다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용기가 생겼다.


그 다음 질문은 내가 지금의 경험과 기억을 갖고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을 할지였다. 뭘 할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과거에 대한 후회는 1도 갖지 않고 재미있게 살 것 같다.


그렇게 대답하고 보니 어쩌면 지금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과거를 깨끗하게 잊고, 개운하게, 새로운 마음으로,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지금이라고 그렇게 못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는 10년 뒤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줄지였다. 아무 생각 안했는데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너 아직 어리다고, 너한텐 지금 기회가 많다고, 하고 싶은거 다 하라고. (듣고 있지, 오렌지나무...?)


순간 조금 뭉클했다. 현재의 나는 그 말을 믿지 않고 좌절하고 있는데, 미래의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게... 믿고 싶고, 믿어야겠다는 결심을 그 순간 했다. 지금의 내가 과거를 아쉬워하는 것처럼 미래의 내가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기를... 내가 그렇게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무엇에서 벗어나면 마음이 편해질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나는 "과거의 기억, 실패로 느껴지는 기억."이라고 대답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과거의 실패 경험에 굉장히 크게 발목잡혀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 스스로 발목을 잡고있는 건데... 나 하나만 잊어버리면 되는건데... 정말 안되는 일일까? 내 마음 여하에 따라서 나는 편해질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그 다음 질문은 나를 표현하는 색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뜻밖에 '회색'이라고 답을 했다. 나는 회색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색은 노랑인데, 답은 회색이라고 말해버렸다. 친구가 이유를 물었다. 나는 지금 열정이 식어있는 모습, 내 인생의 고장난 부분들, 사회생활에서 어색하고 잘 못하는 모습같은 것들 때문에 내가 회색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친구는 다르게 해석해줬다. 회색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럽고 있어보이는 색깔이라고, 그게 나의 개성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어느정도 공감되는 해석이다. 그리고 좀 고마운 해석이다. 나는 생각도 못했는데 나의 장점을 찾아내서 알려주는 것, 그게 이 친구가 가진 재능이기도 하다.


친구의 말대로 나는 회색과 같은 특징이 있다. 나는 겸손한 편이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래서 회색처럼 눈에 띄지는 않지만 나 나름의 개성, 그리고 품위를 갖고있다. 친구가 이끌어준 덕분에 나를 좀더 긍정적으로, 정확하게 보게 됐다.


한편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색, 그리고 친구도 좋아하는 색인 강렬한 노랑이 그 회색 안에 지금은 숨어있다는 생각을 했다. 구름에 가린 태양처럼. 내 안의 밝은 햇빛이 구름 밖으로 나오고 싶어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5년 전의 나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는 "도망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책 한장 넘길 수 없는 상태에서 계속 시험을 보는건 패배의식만 가져올 뿐이라고, 그냥 내 의지로 그만두는게 마음 건강에 더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친구는 공무원 시험을 이야기하면서, 자기 힘으로 시험을 끝내는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과거의 내가 꼭 잘못된 선택을 한 건 아니라고...


나 자신은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나는 '촛불'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내가 약하고, 바람이 불면 꺼지는 촛불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항상 바람이 일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고.


친구는 여기에 대해 성경에서 촛불은 강한 이미지라는 말을 해주었다. 어둠을 빛이 이긴다고. 캄캄한 방 안에 촛불을 켜면 방이 밝아지는 것처럼. 바람에 촛불이 꺼지면 계속 불을 켜면서 살면 된다고!


예전에 사주를 보면 항상 나는 촛불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부정적인 느낌을 받았는데 친구의 해석으로 조금 긍정적인 면을 보게 됐다. 그리고 바람에 촛불이 꺼지면 계속 불을 켜면 된다니...ㅋㅋㅋ 웃기기도 하고 가혹하다(!)는 생각도 했다.


버킷리스트는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첫째, 어려운 시험에 도전해서 합격해보기, 둘째, 낯선 도시에서 낯선 성격으로, 다른 직업을 갖고 살아보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까 재밌는 버킷리스트다. 올해 안에 한번 해볼까? 두번째는 이미 하고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직을 했으니까.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건 '긍정적인 말들'이라고 말했다. 친구와 나, 둘다 똑같다. 우리는 긍정적인 말들로 북돋워줄 때 힘이 나는 사람들이다. 모진 말로 채찍질하면 무너져버리는 유형이다. 그래서 이 친구와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자신이 듣고 싶은 긍정적인 말들을 서로에게 해주는 사이니까.


친구는 성공경험들을 써보고 매주 하나씩 글을 쓰고 나누자고 제안했다. 실천하지는 못했는데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과제이다.     


우리는 서로의 아름다운 점 3가지를 이야기해주기 미션까지 마치고 대화를 끝냈다. 내가 찾은 친구의 아름다움은 삶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내려는 것, 그것으로 에너지를 주는 것, 그리고 천사같은 목소리였다. 친구가 찾아준 내 아름다움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메모를 안 해놓아서...ㅠㅠ




생략했지만 좀더 많은 내용들이 있었다.  

거의 3시간에 걸쳐서 친구는 내 마음을 들어주고 내 존재에 집중해주었다. 끝나고 난 소감은 목욕탕을 다녀온 것처럼 개운하고 마음이 뽀드득하는 느낌이었다. 사실 상담소에서 받은 상담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고 느꼈다.


상담의 반은 '진심'이면 되는 것 같다. 진심이 있어야 내담자도 마음이 열려서 잘 받아들일 수 있고, 상담자도 잘 이끌어갈 수 있는 것 같다.     


친구랑 대화하면서 나 자신을 좀더 많이 알게 됐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도. 덕분에 마음이 좀더 긍정적으로 바뀌고 불씨를 조금 얻어 힘을 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포기할까 고민했던 곳에 지원서를 넣었고, 떨어졌지만 또 다른 곳에 다시 넣어서 합격할 수 있었다. 지금 다니는 직장이 그 두번째 곳이다.


만일 그날 친구가 이렇게 상담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냥 위축된 마음에서 지원서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작은 치유 워크숍이었지만 효과가 정말 좋았다.


혹시 친구의 워크숍에 관심 있으실 분들을 위해 인스타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공감인, 하자센터 등에서 예술치유에 관한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해온 경력이 있다.


친구 인스타: mind_designer_summer


https://instagram.com/mind_designer_summer?igshid=NTc4MTIwNjQ2Y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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