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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Jun 02. 2023

가족은 원래 짐이다

짐이 나쁜게 아냐

자살의 수많은 이유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게 내가 가족에게 짐같다는 느낌이다.


지금 정상적인 감정에서는 이해가 잘 안되는데... 나도 오랫동안 내가 살아있는게 가족에게 민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살은 가족의 짐을 덜어주는 일 같았다.


이건 주위 가족이 우울증 환자를 짐 취급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모를 감정이다. 아마도 나 자신에게 고통을 주고있는 내가 스스로에게도 짐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에... 당연히 타인에게는 더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자살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다. 무슨 의미냐면,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은 정말 다양한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에 자살이 옳다, 그르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도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죽음을 자연스럽게 생각할 때도 산을 타러 가면 높은 곳에서 떨어질까봐 두려웠다) 내 마음에 대해서도 자신할 수 없다. 나는 인간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듯이 삶과 자살의 사이에도 서 있다고 생각한다.


자살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다만 이 이야기는 하고 싶다. 가족이란건, 사랑하는 사이라는건 원래 짐스러운거고 그 짐은 나쁜게 아니라는거, 견딜 수 없어서 차라리 죽길 바라는 짐은 아니라는 거다. 대부분의 경우엔.


그냥 아주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가족과 다툰다. 뜻이 안맞고 습관도 안맞고 성격도 달라서. 나는 사과를 말했는데 상대방은 바나나로 알아들어서 싸우는 경우도 많다.


오해, 갈등, 짜증, 분노, 상처, 다툼, 부담. 사람과 사람이 가까울수록 피어나는 것들이다. 나는 인생의 상당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걸쳐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인간들이 가까워질수록 힘들어진다는건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군가와 엮이려고 하고 가족을 만든다. 사람이 주는 버거움보다 사람이 주는 친밀감과 애정이 더 크기 때문에.


물론 자살사고가 시작된 사람에게는 이런 말이 들리지도 않고 믿기지도 않는다는걸 안다. 나는 그냥 계속 반복하면서 스스로를 세뇌하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일지도 모른다. 그들 자신도 내가 부담스럽다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그 짐을 기꺼이 짊어질거고, 그건 나쁜게 아니다. 그건 정이고 본능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그 짐을 지라고 할 자격이 있다.


언젠가 내가 엄마한테 사과한 적이 있다. 우울증으로 너무 고통받았던 몇년간 나는 엄마한테 자살하고 싶다고 수백번도 더 울부짖었다. 마지막에는 엄마가 자신도 따라죽을 거지만, 어쨌든 내 고통을 더는 방법이라면 내가 자살하는걸 받아들이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가끔 제정신으로 돌아올 땐 엄마한테 진심으로 사과했다. 엄마 마음을 다 찢어놔서 너무 미안했다. 엄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괜찮다고, 너는 어릴 때 엄마한테 평생 줄 기쁨을 다 줬다고. 그러니까 너는 엄마한테 다 요구해도 된다고.


엄마가 말을 돌려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심을 있는 그대로 말해준거지... 그 마음은 어느 부모나 똑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나 때문에 자기가 고통스러우니 제발 나가 죽으라고 고함지르던 내 아빠도 엄마와 마찬가지로 그 짐을 지고 걸었다.


우울증에 걸린 나를 30대 후반까지 부양했고, 내가 계속 폐인이 되어도 평생 먹고살걸 마련해두고 갈 방법을 찾으려고 자기 나름대로 매일 속을 끓였다. 한동안 돈돈 하면서 자기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한탄하고, 우울증에 걸렸던 이유가 그거였다. 내가 폐인이 되어도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려면 돈이 필요한데, 자기가 그럴만한 돈이 없어서였다.


내가 부모의 짐이었던건 맞지만, 그들은 당연한듯 그 짐을 메고 걸어갔다.


아마 반대라면 나도 그러지 않을까. 나도 아빠가 버겁고 힘겨울 때가 있지만, 사랑하기에 안고간다. 이 가족이 내 팔자라고 생각하면서.


우리 가족만 그럴까? 가족이 애증관계라는건 사랑만큼 짐도 무겁다는 의미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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