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렌지나무 Aug 04. 2023

국민... 아니, 초등학교 다녀오기

휴가 둘째날(1)

아직 남아있는 문구점... 주인이 같은지는 모르겠다

나는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세대이다. 초등학교를 잊고 산지는 좀 됐다. 어디에도 초등학교 졸업을 쓰는 이력서는 없으니까.


그러다 최근에 친구가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다는걸 뒤늦게 알게 됐다. 나보다 한 학년 어렸지만 우리는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계단을 걷고 같은 성적표를 받았다. 원래도 좋아하는 친구지만 더 반가웠다.


그러면서 초등학교에 관한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 옛날식 계단, 벽에 붙어있던 헌장, 당시엔 획기적이었던 수업방식(무슨 필름을 비춰서 벽에 띄우던... 암튼 요즘 프로젝터같은 느낌이었다), 작은 동물원에 있던 칠면조, 학교 도서관, 양호실 냄새, 언제나 좋은 말만 쓰여있던 성적표(우리는 점수로 성적을 매기지 않았다)...


얼마전 친구랑 어떤 에 갔는데 거기 계단을 보면서 우리는 'ㅇㅇ초등학교 계단'이라고 하면서 막 웃었다. 계단의 모양이 너무 비슷해서였다. 그냥 생각하려고 하면 잘 모르겠는데, 유사한 물건들, 공간들을 보면 옛날 기억들이 떠오른다.



휴가 둘째날, 그 초등학교에 다녀왔다. 은행 모퉁이를 돌면 학교로 가는 골목길이 있는데, 은행은 간판이며 건물이며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나도 예의 그 '거리의 짧아짐'을 느꼈다. 학교에 다닐 땐 몇백미터 되는 거리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엄청 짧은 골목길이었다. 성큼성큼 걸으면 스무 걸음 정도 되는...


문구점이 두군데 있었는데 학교 바로 앞에 있던건 사라지고 카페로 변해있었다. 그 당시에 엄마들은 카페 대신 골목 입구쪽에 있던 제과점에서 아이들을 기다렸던 것 같다.


수업 끝나고 거기로 가면 팥빙수나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었다. 그때 그 집에선 막대 아이스크림을 수제로 만들어 팔았는데 나는 팥, 커피, 딸기, 멜론 맛을 좋아했다.


아이들한테 인기있던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을 사진으로 인화해서 파는 곳도 있었고, 내가 좋아하던 떡꼬치집도 있었는데, 다 사라졌다.


학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요즘은 진짜 엄격하다. 졸업생들도 학교에 못 들어가게 하고... 아무튼 골목길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고향이 서울이고, 난 아직 고향 동네에 살고 있어서 향수가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지방 출신인 아빠가 태어나서 자란 곳을 그리워하는걸 보면서, 나도 맡아지지 않는 냄새를 맡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향수를 느껴보려고는 한다.


아주 아주 희미하지만, 오랜만에 온 초등학교의 느낌이 그랬다. 친구가 동창이라는걸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이 그랬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곳은 그 초등학교였다.


어쩌면 내 본성(?)이 자란 곳도 그 학교에서였을 것이다. 자유로워야 하고 틀이나 얽매이는걸 싫어하는 내 성격을 다 받아주고 존중해준 곳이 그 학교였다. 엔프피나 인프피가 다니기엔 정말 좋은 곳이었다랄까. 


창의성을 키워준다고(?) 수업도 카펫에 앉아서 하기도 했고, 점수로 학생들을 비교하거나 평가하지도 않았다. 고학년 때는 학생들이 관심분야를 조사해서 각자가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업시간에 맘대로 돌아다녀도 제지하지 않아서 나는 가끔 수업중에 칠면조를 보러 가거나 교내를 돌아다녔다. 뭐든 하고싶은대로 다 할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중에 중고등학교에서의, 그리고 사회에서의 분위기나 문화에 적응하기 어렵기도 했다. 어릴 때 있는 그대로 존중받았던 경험이 나에겐 깊게 자리잡았고, 그렇게 사는게 당연하다는 느낌을 갖게 했으니까.


나중에 그게 우리 사회의 상식은 아니라는걸 알았을 때, 남들보다 더 상처받고 살기 싫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학교 골목길을 통해서 그 시간들을 떠올리고, 친구와 함께 그때의 감정들을 나누는 순간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 행복감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다음번엔 친구랑 졸업증명서라도 떼러 가야되나 싶다. 그러면 들어갈 수 있으려나...?


매거진의 이전글 오래된 갈비집, 3년만의 영성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