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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Nov 07. 2023

하고싶은 일 하기, 그리고 함께 하기

중드 '금심사옥' 후기

https://youtu.be/5om16gDxwPU?si=XPLWUQmapmEA8PeO



중드 '금심사옥'을 보면서 여주가 온화하면서도 씩씩한게 좋았다. 여주 십일랑은 나씨 집안의 서녀 출신으로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결혼으로 신분상승해서 영평후 부인이 된다.


원래 십일랑이 원했던건 결혼을 안하고 도망쳐서 어머니와 둘이 사는 거였다. 어머니가 첩으로 살면서 온갖 설움을 겪는걸 보고 자란 십일랑은 신분상승이고 뭐고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들어가게 되는걸 원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을 밝히기 위한 본인의 선택으로 영평후와 결혼했다. 서녀 출신으로 후작의 정실 부인이 되었으니 편안하게 살면 될 것 같지만 십일랑은 계속해서 자기 삶을 살아간다.


어머니의 죽음의 단서를 찾고, 가장 좋아하는 일(자수)도 계속하고, 이재민 여인들에게 자립할 기반을 만들어주기 위해 자수를 가르치고, 자기를 적대하는 언니도 돕고, 주위 여자들과도 신분의 차이를 넘어 연대하고, 그러면서 영평후 부인으로서의 역할도 한다.


십일랑의 시댁에서는 그녀가 집안에 들어앉아 내조만 잘하길 원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반대와 풍파를 무릅쓰고 자수를 그만두지 않는다. 그녀가 원하는건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하고, 그걸로 다른 사람들도 돕는 것이었다.


남주 영평후는 그 과정에서 부인 바라기가 되어서 십일랑을 적극 지지해줬다. 영평후는 과거 가문이 몰락한 후 식솔들을 살리기 위해 하고싶은 모든걸 포기했지만, 십일랑의 영향을 받아 다시 따뜻해지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신분상승이 결말 부분에서 보상으로 따라오는게 아니라, 신분상승에 상관없이 여주가 자기 가고싶은 길을 가는게 좋아보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게 진짜 해피엔딩이라는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금심사옥'은 신분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모두에게는 출신, 배경, 조건에 따른 각자의 몫이 정해져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너의 본분을 지키고 네 것이 아닌건 욕심내지 마라'는 말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굉장히 슬픈 말이다. 영평후의 첩들은 첩으로서의 본분을 지켜야 하고, 그래서 정실부인 십일랑만 사랑하는 영평후를 바라보는 걸로 만족해야 한다. (남주도 잔인한게 첩들에게는 미소 한번 지어주지 않는다) 사람의 자연스러운 감정인 애정에까지 자기의 몫이 주어져있고,  이상을 바라는건 탐욕이 된다.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집안의 중심은 오직 적자인 순이고, 서자인 유는 형이면서도 적서의 구별이 있기에 같이 공부도 할 수 없다. 어울려 놀면서도 동생인 순을 해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을까봐 조심해야 한다. 각자 받을 수 있는 애정의 몫도 다르다. 드라마에서 강조되진 않았지만 아마도 유에게도 마음에 금이 그어지는 순간들이 많았을 것이다.


신분이나 계급보다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도 요구되는 이 본분이라는게 더 마음 아팠다. 사실 십일랑은 서녀로서의 설움, 죽을 뻔한 위기도 다 지만 결혼 이후에는 어디까지나 신분 높은 집안의 정실 부인이기에 애초에 가진 몫이 다.


교이랑이 아무리 설쳐도 모든 명분은 십일랑이 쥐고 있었다. 그 명분이 있으니까 영평후도 십일랑을 도왔던 것이다. (십일랑이 첩이었다면 아무리 사랑해도 본분을 지키라고 했을 꼰대 남주...) 영평후의 사랑도 다 차지했고, 그게 정실 부인 자신의 몫이라 욕심인 것도 아니다. 주위 사람들도 첩들의 고통에는 아무 관심없이 그저 부부가 화목하다고 좋게 볼 뿐이다.


그녀가 욕심낸건 귀족 부인이 집밖으로 나가 이재민들에게 자수를 가르치는 일 정도? 그것도 결국 이재민을 구한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정당화된다. 물론 십일랑이 워낙 선하고 씩씩하게 자기 인생을 개척하면서 살아가니까 그녀를 응원하게 되지만, 이면에서는 애초에 가진 몫이 너무 적어서 슬픈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십일랑은 최대한 사람들과 함께 가려 하지만, 신분사회라는 눈밭에서 그 온기가 얼마나 따뜻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잠깐이나마 손을 녹일 수 있는게 귀한걸까.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고, 나눌 수 있는건 아주 작은 온기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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