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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우울증 아니라고...

by 오렌지나무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출근했다가 병원에 가서 한달치 약을 받아왔다. 오후에 집중력이 확 꺾이는 문제 때문에 ADHD약을 증량한 것 말고는 지난달과 별 차이가 없다. 병원에서 쓸데없이 보조배터리를 충전하다가 놓고 와버렸다. 다음주에 한번 회사 점심시간에 찾으러 가야한다.


약을 수령한 이후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친구를 만나러갔다. 친구의 직장 근처에서 만나 같이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갔다. 이렇게 더운 날은 맛집, 핫플을 찾기보단 가장 가까운 상가에서 머무는게 제일 좋다. 그래서 바로 근처에서 밥을 먹고 걸어서 1분 거리의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친구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 말을 들었다. 너 우울증 아니라고. 정상이고, 정상 중에서도 밝은 편이라고. 왜 약을 먹는지 모르겠다고. 나는 여러번 되물었다. 진짜야? 나 정상이야?


살면서 사람이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는건 당연한거고, 슬픈 감정이든 뭐든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구나'하고 누군가에게 얘기도 하고 스스로 한탄도 하고 그러고 그냥 지나가면 되는거고 그게 우울증 약을 먹어야 되는 이유가 되진 않는다고.

그러면서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줬다. 너는 자신의 감정에 직면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


맞는 말이다. 내 안에는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 내가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들이 많이 있다. 나는 그걸 우울증약으로 눌러서 묻어버리려고 하는 것 같다.


왜 감정을 느끼는걸 억눌러? 친구가 물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부정적인 감정은 느끼면 안되는거고,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는건 자신이 못나서 그런 거라고. 뭔가 실패하고 잘못하고 문제가 생겼으니까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그러니까 슬프거나 창피하거나 괴로운건 내 인생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라고. 그렇게 생각해온 것 같다.


친구가 상담해준대로 내 감정에 직면하지 않으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아무것도 제대로 알 수 없게 된다.


조금 눈물이 날 뻔했다. 어렵다. 잘 모르겠다. 괴로운 감정을 너무 느끼면 우울증이 온다. 생각과 감정을 무조건 버리면서 우울증에서 좀 벗어났다. 하지만 결국은 내 감정들과 마주하고 인정해야 한다. 친구가 준 숙제를 안고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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