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깔끔하게, 드립백을 위한 행거 <비에메종 드립체어>
일본으로 여행을 가면 꼭 사오는 것이 드립백 커피였다. 특별한 브랜드를 찾는 것도 아니고 돈키호테나 슈퍼마켓에 가면 살 수 있는 UCC, 도토루 제품 정도면 충분했다. 일본은 드립백 시장이 큰지 같은 브랜드 안에서도 다양한 제품이 나왔다. 원두의 산지가 다르기도 하고 디카페인도 있었던 것 같다. 일본에 도착해서 편의점에 가면 제일 먼저 드립백을 사 와서 숙소에서 내려 마셨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서 드립백에 조금씩 흘려 만든 커피는 향이 좋고 진했다. 인스턴트 커피는 물론이고 시시한 아메리카노보다도 더 맛있었다.
일본은 핸드드립 혹은 푸어오버 방식의 인기가 많은 것 같다. 호텔에 비치된 커피머신이 에스프레소 방식의 캡슐 제품이 아니라 동그란 종이재질 팩 안에 커피가 있어서 드립 방식으로 내리는 방식일 정도다. 도토루에서 나온 제품이었는데 맛이 그렇게 썩 좋지는 않았다. 차라리 드립백을 비치해놓는게 나을 것 같았는데 호텔이다보니 체면상 가져다 놓은 듯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국내에서도 드립백을 판매하는 곳이 꽤 많아졌다. 특히 개성있는 소규모 로스터리 카페에서 자체 브랜드로 드립백을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그 카페의 팬이라면 그곳에서 직접 내려주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매우 가까운 맛을 집이나 사무실에서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 같은 카페 제품 안에서도 다양한 향과 맛이 있어서 선택의 폭이 무척 넓어졌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환영할만한 변화다.
이전부터 핸드드립을 즐겨 마셔서 드립용 주전자라던가 필터라던가 원두 분쇄기도 갖추고 있지만 그렇게 부지런한 성격이 아니라서 구매했던 원두가 유통기한을 넘기기 일쑤였다. 향이 다 날아가서 쓴 맛만 남은 커피를 갈아서 내려 마실때면 아까운 마음이 가득했다. 그래서 로스터리 카페에서 판매하는 드립백을 발견하자마자 얼른 갈아탔다. 원두를 사서 직접 갈아 내릴때 보다는 훨씬 비쌌지만 드립백은 개별 밀봉 포장되어 오래 보관해도 향이 날아가는 경우가 드물다. 유통기한이 지난 원두를 버리는 것 보다는 조금 비싸도 끝까지 멀쩡한 커피를 마시는게 더 경제적이라 생각했다.
드립백을 받아보니 문제가 있었다. 웬만큼 큰 컵이 아니면 커피를 거의 다 내릴 때 쯤이면 드립백 아래부분이 물에 잠겼다. 맛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찝찝했다. 드립백을 조금만 들어 올렸으면 좋겠는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같은 고민을 한 사람이 많았는지 시중에는 드립백을 거치할 수 있는 상당히 많은 제품이 있었다. 플라스틱으로 된 것도 있었고 캠핑용품 같은 디자인도 있었다. 대개는 스테인레스 철사를 구부려서 만든 방식이었는데 꽤 멋을 부려서 별 모양을 만든 제품도 있었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제품이 있었는데 비에메종의 <드립 체어>였다.
드립 체어는 단순한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컵에 거치하는 부분과 커피를 걸어두는 부분이 심플하지만 심심하지 않은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장식적인 부분이 없어 좋았다. 지금은 비슷한 기능을 가진 제품이 많은데 당시에는 제품 하단 컵과 맞닿는 부분에 실리콘을 입혀서 스크래치를 막는 아이디어는 드립 체어가 유일했다.
크기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철사를 엮어 만든 제품이기 때문에 입구가 넓은 컵이라면 힘을 주어 벌리면 충분히 거치가 가능하다. 반대로 얕고 작은 티컵은 이 제품이 딱이다. 제품을 받아 드립백을 올렸더니 '바로 이거다'싶은 감탄이 나왔다. 기대했던 모든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끝까지 내려도 드립백은 물에 잠기지 않았고 커피를 추출한 다음에 드립백을 치울 때도 편했다.
요즘은 마켓컬리나 쿠팡처럼 새벽배송이 가능한 쇼핑몰에서도 드립백을 취급해서 원하면 언제든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됐다. '오랑오랑'의 드립백은 가격에 비해 품질이 아주 좋은데 요즘은 쿠팡에서도 이 원두를 취급한다. 출근하기 전에 텀블러에 커피를 하나 내려 차 안에서 홀짝거리면 꽉 막힌 도로가 조금 덜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드립 커피의 긍정적인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