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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l 14. 2019

별과 먼지


 영화 《기생충》을 보고난 뒤 충격에 빠져서 하루 하고도 반나절을 멍하게 보냈다. 영화가 끝나고, 시작할 때와 같은 봉준호 감독의 시그니처 음악이 울려퍼질 때 무서웠다거나 재미있었다거나 하는 어떤 감정으로도 쉽게 표현되지가 않았다. ‘책은 도끼가 되어야 한다.'던 카프카의 말이 생각났다. 집에 돌아와서 오후 내내 영화 속 곳곳에 포진되어있던 미장센과 주제의식에 대해 집요하게 생각이 들었다.

 '장르가 봉준호, 봉준호가 장르'라는 말이 실감났고, 배우들의 연기, 배경 음악, 소품 하나 하나의 디테일에 섬세하기 때문에 봉준호와 디테일의 합성어로 '봉테일'이라는 신조어가 있다는 말에도 수긍이 갔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 영화에 숨겨진 의도를 해석하느라 분주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본 이미지 한 조각에서 세계를 놀라게 하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고 사람들의 기립과 폭발적인 관심을 끌어내는 예술가의 모습에서, 봉준호의 페르조나라고 일컬어지는 배우 송강호에게 무릎을 꿇고 상을 바치는 인간적인 모습에서 많은 것을 본다.


 그의 영화는 이미지 한 조각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언제 어디선가 포착했던 이미지 한 조각을 주머니 속에 넣고 만지작거리고 있다가 세월이 흘러 영화가 된다는 거장다운 말을 한다. 가령 잠실대교를 지나면서 잠실대교에 매달려 있는 '무엇'을 보고 그 이미지를 상상력의 힘으로 숙성시켜서 탄생한 것이 《괴물》이라든가, 이수교차로 근처에서 신호대기를 하면서 본 커다란 그림자에서 《옥자》를 만들어냈다든가, 어린 시절 관광버스에서 본 아줌마들의 막춤은 《마더》의 엔딩씬으로 이어졌다. 여행지에 도착해서 자신과 버스 기사는 내려서 바깥 경치를 즐기고 있는데 아줌마들은 좁은 버스 안에서 시동이 꺼진 버스가 흔들릴 정도로 춤을 추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고, 그 호기심을 나중에 영화 어느 장면에 꼭 넣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어린 그의 눈에 포착된 기이한 이미지 한 조각은 우습다거나 슬프다거나 무섭다거나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기괴한 감정 덩어리로 진화해서 세상에 투척된다.




 이렇듯 일상의 이미지 한 조각을 오랜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두고두고 하나씩 끄집어 내어 이질적인 요소들을 연결시키고 상상력을 덧붙여서 리얼한 실현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가 강조한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의 힘과 관찰의 힘, 기록의 힘, 연결의 힘이다.

 좋은 예술이란 그것을 접하고 나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내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준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최고의 영화였다.

 누구나 언제 어디선가 우연히 봤던 이상한 이미지 하나 정도는 있지 않은가? 그것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지만 누군가에게는 사라지고 마는 먼지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빛나는 별이 된다. 우주에서는 별은 먼지이고 먼지는 별인데 지구에서는 무엇이 그 둘을 이같이 극과 극으로 밀어내는 것일까? 이 질문이 남았다. 그리고 내 주머니를 뒤적여 엉켜있는 나의 이미지 한 조각을 꺼내본다. 


 수년 전, 태양계인 행성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들었던 인지학 강의가 떠올랐다. 당시의 내 수준에서 말 그대로 소우주인 작디작은 인간을 어마어마한 태양계 행성에 비유해서 진지하게 설명하시는 외국인 선생님들이야말로 외계인 같이 여겨졌다. 인류가 달에 간지도 50년이 지났지만 나의 우주는 아직도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별세계일 뿐이었던 당시였다.

 태양을 중심으로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각 행성들이 소우주인 인간에게 어떻게 조응하고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처음에는 생소하고 이질적으로, 나중에는 경탄해마지하며 들었던 기억이 있다. 강의를 들을 때 마다 이성으로는 이해가 잘 안 갔지만 강력한 감정이 그것에 대해 더 알고자했다. 그것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고는 그 강력한 이끌림을 설명할 길이 없다.

 자연의 리듬과 인간의 성장 주기는 각 단계별로 특성을 나타낸다. 7년 주기로 발달 단계를 나누어 태양계의 각 행성과 대응된다. 

 0세에서 7세 까지의 유년기는 달, 7세에서 14세 까지의 아동기는 수성, 14세에서 21세 까지 소년기는 금성, 21세에서 42세 까지 청년기는 태양, 42세에서 49세 까지 중년기는 화성, 49세에서 56세 까지 장년기는 목성, 56세에서 63세 까지 노년기는 토성에 각각 해당된다. 그 연령대의 발달단계에 해당하는 행성의 영향력을 받는다. 

 또 0세에서 63세 의 절반에 해당되는 35세를 중심으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인간의 삶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35세까지는 모든 게 준비단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커다란 들숨의 상태와 같다. 인간의 몸은 정신적 고유성을 들이마시며 세상으로부터의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받는 육화의 단계이다.

 35세 이후로는 주는 단계로 바뀐다. 인간은 자신의 인생과 주변 사람들에게 이제껏 받은 것을 돌려준다. 그리고 세상에서 그것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한다. 커다란 날숨의 과정이 시작된다. 탈육화 과정이다. 

 달의 시기인 0세에서 7세 까지는 토성에 해당하는 56세에서 63세의 시기와 조응한다. 7세에서 14세 까지의 수성의 시기는 목성의 시기인 49세에서 56세까지의 시기와, 14세에서 21세 까지의 금성의 시기는 42세에서 49세까지의 화성의 시기와 조응한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지나온 삶에서의 원인에 의해 형성된 결과인데, 어려움이 있거나 육체적 질병이 있다면 그 원인을 지나온 시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원인에 따른 결과, 불교에서 말하는 업과 같은 내용이다. 정신과학인 인지학의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혁명이 아니라 ‘카르마의 의식’이라고 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도록 부인되는 일은 우리 인생을 지혜롭게 인도하는 존재에 대한 증거이며, 그것의 관찰을 통해 내 삶을 선택해서 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칼 세이건은『코스모스』에서 지구는 중년기에 접어들었다고 표현했다. 격동의 시간인 사춘기를 이미 지났고, 만약 불덩어리 사춘기 지구가 계속되었다면 인간은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중년기에 접어든 육체성을 가진 지구와 그 땅 위에 사는 인간의 의식은 유아 수준이라는 설정은 비상을 욕망하는 인간의 고도의 정신적 지향을 끌어내리는 무겁고 무기력한 육체성과 연관 지을 수 있다.

 태양계의 큰 그림 중에 나에게 강한 울림이 있었던 행성은 수성과 목성이었다.

 현 인류의 발달단계를 태양계 행성에 비유하자면 수성 단계이다. 그리고 인류가 가야 할 의식의 다음 단계는 목성이다. 현재 인류의 의식 상태에서 우리가 지향해야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는 각각의 개인이 독립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 과업을 완수할 때 비로소 확립되는 화합과 사랑의 공동체는 미래에 있다. 화합과 사랑의 공동체는 이를 구성하는 독립된 개인들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수성

 수성은 태양과 가장 가까운 행성이다. 수성은 태양이 생겨난 후 남아있는 먼지 알갱이들이 서로 뭉치고 충돌하면서 만들어졌다. 지구와 비교했을 때는 상당히 작은 행성으로, 총 질량이 지구의 5% 수준이지만 밀도는 지구의 98% 정도로 거의 같다. 수성은 태양계 행성들 중 유일하게 공기가 거의 없다. 수성은 자전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매우 크다. 불처럼 뜨겁고 얼음처럼 차갑고 칠흑같이 어둡다. 최대 450도에 이르고 밤은 영하 135도 까지 떨어진다. 낮이 3개월이나 된다. 수성에서 보는 태양은 지구의 태양보다 세 배나 크고 일곱 배나 뜨겁다. 2년에 3번의 생일 파티를 할 수 있다. 수성은 하루가 59일 1416시간, 1년이 88일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수성을 헤르메스 신에 대응시켰다. 이것은 태양계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행성으로 운행이 빠르기 때문에 발이 빠른 신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네이버의 로고 날개달린 모자는 헤르메스의 것으로 발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는 전령의 이미지를 따온 것이다. 

 헤르메스는 고대 로마에서 메르쿠리우스와 동일시되어 영어로 머큐리(Mercury)가 되었다. 뜨거운 태양열을 받는 상태와 잔혹한 추위의 극단적인 물리적 상황의 대비는 태양 가까이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인간에게 신의 뜻을 전달하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성격을 잘 설명해준다. 무엇인가를 변성시키고 잘 연마하여 빛나게 해주는 신비한 힘을 가진 수은은 머큐리(mercury)로 수성과 이름이 같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목자의 신, 길과 여행의 신, 약탈과 도둑, 사기의 신, 상인의 신, 발견의 신, 비상의 신, 치유의 신으로 끼지 않는 데가 없을 만큼 많은 역할과 활동성을 상징한다. 자기의 책략으로 어떻게든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고 끝까지 살아남는 방법을 알고 있는 똑똑한 신이다. 수성의 힘을 가진 사람들은 영리하고 사리분별이 밝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또한 독특하거나 처리능력이 빠르다. 

 수성의 사람들은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여 재탄생시키는 힘이 있는데, 이 능력으로 현 인류의 의식을 진화시켜 미래의 의식인 목성으로 인류를 구원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이 재능을 발전시켜 확장한다면 보다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할 수 있고, 타인의 재능을 알아차리고 사람을 가치 있게 살아가도록 도와줄 수 있다. 수성의 힘, 헤르메스의 힘을 의식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재발견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인류는 발전할 수 있다. 세상을 위해 특별하고 대단한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자신의 가치를 알아내고 능력을 계발시켜 필요한 사람, 도움이 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각자의 특별한 능력을 주셨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수성의 힘을 가지고 있다. 신화적으로 말하면 헤르메스의 힘, 바로 헤르메틱(hermetic)이다.   헤르메틱은 우리의 가치를 신적으로 높일 수 있는 힘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고유한 신성을 가지고 있고 신에게서 부여받은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 각자가 성장하는 만큼 신은 그 능력을 더 드러내고 진화한다.




목성

 목성은 태양계에서 가장 큰 행성이다. 부피에 비해 질량은 낮다. 목성의 신 주피터는 제우스와 동일시된 그리스 신화의 최고신이자 다양한 기상 현상을 지배하는 여러 부족의 하늘의 신이다. 목성은 기체로 이루어진 행성이다. 목성의 내부는 밀도가 아주 높아 기체가 액체 상태로 존재한다. 

 목성의 온도는 영하 148도로 태양으로부터 받는 열보다 훨씬 더 많은 열을 자체적으로 방출한다. 열원이 목성 안에 있다. 목성의 자전은 태양계에서 제일 빠르다. 하루가 짧고 공전은 길다. 지구의 11.8년이다. 적은 노력으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목성의 힘은 순수한 학문, 혹은 영성적인 학문, 종교에 해당한다.

태양계의 행성을 두 무리로 나눌 수 있는데, 지구형 행성과 목성형 행성이다. 지구를 닮은 지구형 행성으로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이 있고, 목성을 닮은 목성형 행성으로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있다. 목성형 행성들은 모두 고리가 있지만 토성 말고는 현재 지구에서 관측되지 않는다.

목성은 위성이 63개 정도 있다. 지구는 위성이 달 하나 밖에 없다는 점과 대비되어 목성의 공동체성을 유추할 수 있다.

 처음에 지구와 쌍둥이 행성으로 출발한 금성은 위치로도 가장 가깝고 조건도 비슷했다. 그러나 온실효과에 의한 표면온도의 상승으로 지금은 가장 가까운 행성이지만 접근할 수 없는 불바다로 변했다. 지구와 쌍둥이였던 금성의 신은 사랑의 비너스이다. 그 이름과 위상에 맞지 않게 각종 맹독성 기체와 세상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맹렬한 더위로 전 행성에서 대참사가 벌어진다.  

 우리가 순수한 사랑과 아름다움을 향하지 않고 이기심과 집착으로 점철된 착각된 사랑으로 인류애를 저버린다면 목성의 공동체에 이르지 못하고 금성의 불바다로 퇴행할 것임을 재난의 땅이 된 샛별은 조용히 경고하고 있다. 

 인류 의식이 수성의 힘을 잘 사용해서 발전한다면 화합의 공동체인 목성의 의식으로 진화할 수 있고, 그것이 인류의 사명이다. 


 칼 세이건은 ‘인간은 눈의 한계로 가시광선이라고 하는 아주 좁은 띠 모양의 무지개를 편애하면서 살아간다.’ 고 말하고, 빛의 일부분만을 볼 수 있는 인간은 태생적으로 얼마나 무지한가. 우리는 지금도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 언제나 겸허한 자세가 중요하다.‘라고 지적한다. 

 한낱 유한한 미물이면서 동시에 전 인류의 흔적인 집단무의식의 지혜의 보고를 가진 소우주인 인간은 우리가 태어난 곳, 별을 바라보면서 길을 물어야 한다. 

 거대한 먼지 덩어리인 별, 스스로 빛나지 못하지만 태양을 통해 빛나는 별을 바라보면서 한없는 겸손함을 배워야 한다. 

 읽을 때 마다 우주정신으로 고양시키는 『코스모스』의 마지막 단락이다.

‘인류는 우주 한구석에 박힌 미물이었으나 이제 스스로를 인식할 줄 아는 존재로 이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기원을 더듬을 줄도 알게 됐다. 별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별에 대해 숙고할 줄 알게 됐다. 10억의 10억배의 또 10억 배의 그리고 또 거기에 10배나 되는 수의 원자들이 결합한 하나의 유기체가 원자 자체의 진화를 꿰뚫어 생각할 줄 알게 됐다. 우리는 종으로서의 인류를 사랑해야 하며, 지구에게 충성해야 한다. 아니면, 그 누가 우리의 지구를 대변해 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생존은 우리 자신만이 이룩한 업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인류를 여기에 있게 한 코스모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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