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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정옥 Jul 14. 2019

괴테의 식물원, 뿌리와 날개

-관찰하는 순간, 모든 것은 기회가 된다

  

디테일 수집가


 디테일 수집가로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괴테의 이야기다.


 괴테나 슈타이너같이 식물을 유심히 관찰해 본 철학자들은,
식물이 서로 반대인 두 방향을 향해 성장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쪽은 중력에 끌리듯 땅속으로 파고들며,
다른 한쪽은 반중력이나 부상력 같은 것에 떠밀리듯
허공으로 치뻗는 형상을 이루고 있다.

 괴테는 '기계론적인 세계관을 타파하고 자연의 궁극적인 신비를 밝힐 수 있는 살아 있는 과학을 찾고자 갈망하게'되었다. 또한 괴테는 파라겔 수스로부터 신비학이 살아 있는 자연을 다루는 것이므로, 진실을 밝혀내는 데 있어서 과학이라는 방법보다 그것이 훨씬 더 적합하다는 것을 배웠다. 자연의 신비를 벗기고자 하는 현인은 금단의 구역을 침범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 신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사람이며, 그들이야말로 영혼과 우주의 신비를 깊이 천착한 사람들이라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괴테가 배운 것 중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연의 보고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괴테는 이제까지의 식물학적 방법으로는 생장 주기를 가진 유기체로서의 식물의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생명체로써의 식물을 다룸에 있어서는 그에 걸맞은 새로운 연구 방법이 필요했다.




식물들의 생장 주기 상상하기 & 하루 돌아보기


 괴테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식물들의 생장 주기에서 보여주는 여러 단계들, 즉 씨앗으로 돌아오는 동안의 여러 모습들을 상상해 봄으로써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괴테는 바이마르의 공작이 자기가 소유한 화려한 정원의 한 모퉁이를 선사하자 그곳에서 살아 있는 식물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키워 나갔고, 그의 이러한 식물에 대한 관심은 그 지방에서 유일하게 약재상을 경영하고 있는 친구에 의해 더욱 북돋아졌다. 괴테는 그 친구의 도움으로 자신의 식물원을 만들 수 있었다.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정신을 기울이는 자에게 자연은 결코 죽어 있지도 침묵하지도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슈타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서 어느 날 기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슈타이너는 깨어있는 인간이 되도록 습관을 들일 수 있다고 말하며 저녁에 하루를 되돌아볼 것을 권유했다.

 내 인생에 정말로 기이한 사건이 등장했다. 정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돌아보기를 계속할 경우, 크고 작은 사건들, 평범하게 보이는 사건들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존재를 위한 죽어감


 에른스트 레어스는 <인간인가 물질인가>에서

 '괴테가 특별한 용어를 붙이지는 않았지만, 식물의 주기 속에는 또 하나의 자연의 원리가 숨어있다. 이 원리는 ‘모든 생명에게 미치는 보편적인 의미를 잘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레어스는 괴테가 말한 이 원리를 ‘자제의 원리’라고 불렀다.

 '식물의 생애 중에서 이 원리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때는 잎이 꽃으로 변할 때이다. 잎에서 꽃으로 변모할 때 식물은 그 활력에 있어서 결정적인 감소를 한다. 잎에 비하면, 꽃은 죽어가는 기관이다. 그러나 이 죽어감은, ‘존재를 위한 죽어감’이라고 할 만한 성질의 것이다. 이것은 단지 형태 변화만을 보이던 생명력이, 이 단계에서는 영혼이라는 보다 높은 수준의 진후를 드러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원리는 곤충의 세계에도 적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송충이의 왕성한 활동력이 나비라는 아름답지만 덧없는 짧은 삶으로 변화하는 것 등에서 말이다. 인간의 경우에도 이 원리가 적용된다. 즉, 대사 계통으로 변화해 가는 것은, 유기체에 의식이 생겨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괴테는 식물의 형태가 점차 발달하고 세련되어 가는 과정에는 확대와 수축의 주기가 세 차례 되풀이된다고 보았다. 즉, 잎의 확대는 꽃받침이나 꽃턱잎의 수축을 초래한다. 그런 뒤엔 꽃잎의 확대가 이루어졌다가, 암술과 수술이 만나는 수축이 이어진다. 그랬다가 마지막으로 과일이 자라나는 확대와, 그 속의 씨앗에 의한 수축이 그것이다. 이 여섯 단계의 순환이 끝나면, 식물은 새로운 출발을 할 준비가 갖춰지게 되는 것이다.



포도나무 관찰기


 괴테의 식물학을 참고하여 식물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본 사례다.

 잎이 떨어진 초봄부터 포도 열매가 맺히는 여름까지 약 6개월에 걸쳐서 일주일에 한 번 포도나무를 관찰했다. 관찰 방법은 포도나무에서 시선이 잘 닿는 한 부분을 정해서 10cm x 10cm 정도의 부분만을 관찰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관찰하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피해서 한 귀퉁이에 눈에 보이는 대로의 변화를 기록하는 형식이었다.


 일주일 후에 같은 위치를 보면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또 일주일 후에 별로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변화가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 때문인지 그래도 조금은 나뭇가지에서 잎이 돋으려는 듯 보인다. 일주일 후, 부드러운 연둣빛 새싹이 딱딱한 나뭇가지를 용케도 뚫고 올라왔다. 또 일주일 후 잎이 1cm 정도 자란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눈에 띄지 않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가듯이 천천히 자라는 포도나무를 보면서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답답함 속에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케치북을 넘겨보면 활동사진처럼 조금씩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봄이 왔는데도 겨울의 옷자락이 남아있는 듯이 쌀쌀한 날씨 속에 잘 자라지 않아서 조급함을 주던 포도나무는 본격적인 봄이 오자마자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뜨거운 여름이 닥치는 듯한 기세로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일주일 만에 잎이 손바닥만 하게 커져서 처음에 정한 구역이 어디인지 찾기도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10cm x 10cm 정도의   부분만으로는 그림을 그리기도 곤란해서 임의로 30cm x 30cm 정도로 시야를 넓히게 되었다.


 마침내 송알송알 포도열매가 맺었다. 하루하루 다르게 살이 차오르던 포도 알은 잎과 같은 연두 빛에서 자신의 본연의 색깔인 매력적인 보라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투명하도록 영글어진 포도송이는 마침내 하얀 당분을 밖으로 뿜어내며

 “한 알 드셔보세요.”

 수줍게 말을 건넨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힘


 같은 방법으로 고구마를 관찰했고,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관찰했다.

 변화무쌍한 아이의 관찰은 가만히 있는 식물에 비해 어려울 것 같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식물이나 사람이나 관찰을 했을 때의 양상이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관찰을 시작할 때는 뭔가 큰 변화가 나타나고 그 대상을 위해서나 나 자신을 위해서 유익한 지점들을 많이 찾게 될 것으로 기대를 한다.


 처음에 열심히 집중해서 포착한 형상과 말, 나의 느낌 등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모든 감각들은, 며칠 지나고 나면 상투적이고 둔감해진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이 말하는 바, 있는 그대로 보는 힘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눈앞의 대상에 대해 이미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입각한 선입견으로 보게 되기 때문에 새로움을 발견하기가 힘들어졌다. 어느 순간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나 판단이 끼어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슈타이너는 말했다.

 아이를 1년 동안 관찰하게 되면 그 아이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사람을 관찰하기 전에 식물 관찰을 먼저 하는 것을 추천했다.



후쿠샤의 노래

 

 꽃가게를 지나다가 너무 예쁜 꽃을 발견했다.

이름은 후쿠샤, 분홍과 보라 투톤의 앙증맞은 꽃을 데리고 왔다.

위에서, 아래에서,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이 작은 식물 한 뿌리를 오랫동안 들여다보면서 우주가 열리는 창조의 섭리와 우주가 왜 음악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보이고 들려지는 듯했다.


 흙에서부터 밋밋한 연둣빛 가는 풀대롱 하나가 올라와서는 거기서 둘로 갈라지고 올라가면서 넷으로 갈라진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풀은 관심을 주든 안주든 나름의 법칙대로 착착착 모양을 생성해 나간다. 어느 지점에 와서 직선의 줄기는 타원형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윤기 없이 푸석하던 풀대롱일 때와는 달리 생명을 품은 가능성의 타원은 반지르르한 빛을 낸다. 이런 게 에테르체 일거라는 합리적 추측을 한다.


 1단의 연둣빛 타원은 2단 3단으로 나아가면서 좀 더 크고 좀 더 붉은빛을 띠며 고조된다. 연둣빛이 점점 더 붉어지면서 둥근 꽃 표면에 칼로 그어놓은 것처럼 정확하게 + 4등분이 생긴다. 때가 되면 4등분의 창이 열리면서 꽃이라는 것으로 변한다. 꽃이 '핀다'는 표현을 하지만 잎의 입장에서 보면 피워내는 것이고 자신이 변형되는 것이다. 잎이 뒤집어져서 그 안쪽 면이 드러나는 것이 꽃이다.


 연둣빛 잎은 더 이상 잎이었던 사실을 떠올리지 못할 만큼 뒷면으로 펼쳐져 꽃받침이라는 형태로 변형된다. 붉은빛으로 물들던 연두는 아예 사라지고 확실한 분홍만 남는다.

 연두색 네 조각의 잎은 정확하게 분홍색 네 조각의 꽃으로 변형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신기한데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분홍의 네 조각 안에서 다시 더 짙은 보라색 일곱 꽃잎이 나선형으로 천천히 움직이면서 피어난다.


 "분홍색 네 조각의 꽃은 예고 탄에 불과했다. 내가 바로 후쿠샤다!"

 존재감을 한껏 뿜으며.

 그 안에서 꽃 수술이 직선으로 힘차게 뻗어 나오는 모습은 가히 감동적이다. 일곱 개의 크고 작은 직선들 사이로 가장 키가 큰 암술이 여왕벌 같은 권위를 가지고, 제1 바이올린 주자처럼 당당하게 진두지휘를 한다.


 종 모양의 후쿠샤가 연주하는 음악은 피콜로 같은 작은 금관 악기 소리가 들릴 것 같다.

 분홍의 직선 끝은 다시 작은 타원형으로 마무리되고 분홍은 다시 생명의 빛, 노랑을 품는다. 힘찬 주제가를 연주하며 자신의 생명의 절정을 노래한 후쿠샤의 노란색 꽃밥은 어느새 시들한 갈색으로 변한다. 노래를 하는 동안 세상으로 꽃가루를 퍼뜨린 것이다.


 절로 그림이 그려지고 음악이 떠오르는 작은 꽃 한 포기의 위력 앞에 믿음이든 상상이든 창조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천재 예술가, 하느님을 닮아가고 싶은 최고의 열망을 떠올린다.

 하느님은 자신이 창조한 후쿠샤가 피워낸 형상과 색깔의 아름다움을 보시고, 향기를 맡으시고, 음악을 들으시며 쉬신다.



사이의 천사


 출근길에 초록과 빨강이 맞닿은 식물들을 여럿 보았다.

처음에 길을 걷다가 나뭇잎 하나를 발견했을 때 반가운 마음으로 주워서 책갈피에 끼웠다.

초록에 빨강이 바로 붙어있는 모습이 사상 초유라는 무더운 날씨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무더운 공기 속에서만 뿜어낼 수 있는 화려한 색깔이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나뭇잎 하나를 줍고 나서 길을 걷자 그런 것들이 눈 위에 후드득 떨어지듯이 많이 보였다.

색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사진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나뭇잎 형태에서 다른 형태들이 보인다. 물고기, 날개, 하트, 십자가, 손… 세상을 새롭게 일깨워주는 빨강과 초록과 나뭇잎이 침묵의 선지자 같다.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빨강, 초록 크레용을 꺼내서 몇 초 만에 드로잉을 해서는 10cm x 10cm짜리 작품 하나를 그렸다. 제목은 'between', '사이'로 정했다.

 잎과 꽃 사이, 꽃과 열매 사이, 열매와 씨앗 사이,

초록과 빨강 사이, 여름과 가을 사이, 어제와 오늘 사이,

큰 나와 작은 나 사이, 너와 나 사이

천사는 틀림없이 '사이'에 있다.




노랑노랑한 노랑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나뭇잎이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나뭇잎 배를 타고 십 년 전 딸을 만나러 갔다. 그림을 그리던 주희가 말했다.

 "엄마, 노랑은 참 신기한 색깔이야. 빨강을 만나면 주황이 되고, 파랑을 만나면 초록이 되잖아. 나는 노랑이 참 좋아."

 "맞아. 노랑은 빛이야. 햇빛이 비추면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지. “

그리고, 다시 십 년 후인 지금으로 순간 이동한 나뭇잎이 말했다.

 "너무 심각하고 소심하게 행동을 고민하지 마. 인생은 모험이야.

가슴이 시키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실험해 보면서 배워가고 더 나아지는 여행이지."

하루는 선물이다. 작은 인생이다.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노랑이 주황이 되거나 초록이 되듯이.

빛이 꽃이 되고 나무가 되듯이.

그러고도 언제든 노랑으로. 빛으로. 그대로. 남아있듯이.


노란 낙엽을 하나 주웠다.

불고 또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 속에서

또 하나의 낙엽을 주워서 잎맥과 빛깔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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