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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Aug 02. 2019

함이 없는 함

오늘의 연필깎기


 출간 소식을 몇몇 지인에게 알렸더니 대학 선배가 졸업동기 모임 단톡방에 홍보를 했고 다들 궁금해한다며 초대해 주었다.
내 경우는 대학 졸업 이후로 워낙에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적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아무런 이질감이 없지만, 글을 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미술을 전공했는데 왠 글인가' 하고 생소하게 여겨질 수도 있으므로 다들 놀라워했다. 
'축하한다', '대단하다'와 같은 인사를 받으면서. 책을 전혀 보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냈다는 소식 하나만으로 받는 축하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었지만 감정은 부끄럽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마치 전학을 가서 첫 쉬는 시간에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기분이었다.
의례적인 인사가 끝나고 대부분은 빠져나가고 글쓰기에 관심있는 두세명의 동료들과 좀 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명의 관심사는 출판업계의 전망이나 내가 출간한 방법에 대한 것이었고, 다른 한명은 글쓰기에 재주가 없다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한 상대적 부러움을 내비쳤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선을 넘지 않는 정도를 의식하면서 약간의 코멘트를 했다.
"만약에 그렇다면 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라 계발이 안된거야.
우리가 미술쪽으로 나름의 재능이 있어서 인연이 된거잖아.
그게 좋은 측면도 있지만 지적인 계발이 이미지 영역에서 멈춘 측면도 있어.
그래서 글은 사실 모두에게 가장 필요하고 쉬운 자기계발 방법이야.
오랜만에 나타나서 글쓰기 전도사가 되었네."
그러자 
"노력해서 된다면 정말 좋겠어요. 글쓰기."
하고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연히 되지.
내가 해본 방법 중 제일 좋은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글을 쓰는거야.
일명 '무의식의 힘으로 글쓰기'지.
처음엔 10분, 15분, 점점 30분, 1시간...
시간과 양을 늘려가다보면 글쓰기 근력이 생겨. 헬스랑 비슷해."
"오~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요! 고마워요!"



초미니 초절전 단톡방 작가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오면서 3년 전에 써둔 스물 세편의 글을 모으고 이번에 책 작업 하면서 배우고 느낀 내용을 정리해서 글쓰기를 잘하고 싶지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입문자를 위한 책, <3주 글쓰기 근육 만들기>를 집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마음 속에는 항상 두가지 목소리가 있다.
"니가 뭔데? 너는 문예창작과도 안나왔고,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을 통해 데뷔한 공식 작가도 아니잖아. 베스트셀러 전업 작가들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 강연 다니고 한다는데... 수십년간 글 써온 작가들의 글쓰기 책도 재고가 쌓였다고. 현실을 직시해!"
감정적으로 뜨겁게 올라오는 목소리는 앞을 향해 내달리는 말과 같고, 그 뜨거움을 식히면서 냉철하게 현실을 보게하는 이성의 목소리는 말 고삐를 잡는 기수와도 같다. 기수가 너무 고삐를 단단하게 잡으면 말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너무 느슨하게 잡으면 말이 제멋대로 달리다 사고가 나게된다. 
말이 올바른 방향을 향해 적절한 속도로 잘 달릴 수 있도록 고삐를 적절하게 잡는 것, 두 가지 목소리를 귀담아 들으면서 글쓰기의 바다를 유영해나가야 한다.



지금의 나는 글쓰기를 잘하고 싶지만 재주가 없다고 생각하는 친구나 출판 업계의 사정을 분석하면서 '내가 재능이 있는걸까?', 전망이 좋은가 그렇지 않은가? 다른 베스트셀러 작가는 어떻게 하는가?' 이런 질문을 하지는 않는다.
어떤 영역에서든 이런 질문을 하고 있다면 물리적으로 오랜 시간을 한 일이라도 한편으로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순수한 즐거움으로 영혼이 선택한 일을 육체가 해나간다는 것은 재능도 전망도 타인의 시선도 넘어서는 사랑의 영역이므로 조건이 좋다고 하고 조건이 나쁘면 접는 식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단순해 진다. 좋으니까 하는거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느님께 맡기는거다.
함이 없는 함,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행위에 의해 자유에 가까워질 수 있다. 



'계곡을 지나가던 코이너 씨는 갑자기 발까지 물이 차오른 것을 발견했다.
주위를 돌아보고 나서야 그는 계곡이 실제로는 바다로 이어지는 만의 일부이며, 만조 때가 가까워졌음을 깨달았다.
그는 곧장 멈춰 서서 거룻배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거룻배를 찾는 동안 그는 멈춰 선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거룻배가 보이지 않자 그는 이 희망을 버리고, 물이 더 차오르지 않기만 바랐다.
물이 턱까지 차오르고 나서야 그는 이 희망마저 버리고 헤엄치기 시작했다. 
코이너 씨는 바로 자기 자신이 거룻배임을 깨달았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생각이 실종된 어느 날> 수록



누군가 대단한 권위체에 의해 재능이 있다는 것을 확인 받는다면, 출판계가 앞으로 번창하게되고, 작가라는 직업이 유망직종이 된다고 톱기사가 난다면 글을 쓸 것인가. 
결국은 내가 쓸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만 남는다.
기다리지 말고, 희망을 버리고, 오늘의 연필을 깎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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