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정옥 May 10. 2021

내가 누구였는지 기억해야 할 때

-넷플릭스 드라마 <나빌레라> 감상문에 더하여

 

 얼마 전에 브런치 메인에 뜬 글을 읽었는데 이런 식의 내용이었다. 자신은 작가 소개란에 수상 경력 한 줄 적는 것도 괜히 민망해서 적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많이도, 잘도 자신을 어필한다는 식이었다.

학력이나 이력이나 수상 경력을 낱낱이 기록해논 내 메인 소개 페이지가 떠 올랐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조금도 민망하거나 그걸 단촐하게, 있어 보이는 한 줄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는 왜 저렇게 길게 써 놓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고, 관심 없을 수도 있고, 혹자는 부지런하다라든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또 누군가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이런 이력을 보고 책을 출간하자든가, 강의 의뢰가 온다든가 하는 요행을 바래서도 아니고,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영화 <메멘토>를 보면 10분 마다 기억이 리셋되는 주인공이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 몸에 문신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유를 모르고 그냥 문자로 된 문신이 가득한 몸만 본다면 그 사람의 절박함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연재한 <나빌레라> 12부작을 단숨에 보았다. 눈물 찍어내면서 감정이입 200% 되어서 본 드라마는 모처럼이었다. 20대 발레리노 이채록으로 분한 송강 배우가 너무 잘 생겨서 눈물이 날 것 같았고, 평생 우체부로 정년퇴직 후 일생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꿈, 발레를 70이 넘어서야 시작한 심덕출로 분한 박인환 배우의 열연이 눈물샘을 압박했다.

 70대 덕출은 우연히 채록의 발레 연습하는 모습을 엿보게 되고 마지막으로 날아오르고 싶은 꿈을 갖게 된다. 너무 늦었다고 안 된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절박하게 매달리듯이 전념하여 인정을 받아내고 결국 무대에 오른다.

 처음에 덕출이 왜 그렇게도 절박하게 매달리는지, 그저 70 노인이 해보고 싶은 마지막 일이라서라고 생각했던 것은 또 한 번의 사건으로 더 심화된다. 덕출은 이미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발레를 시작하기 전부터 덕출은 자신이 점점 기억을 잃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더 늦기 전에 한 번이라도 날아오르고 싶었던 것이다.

 마지막 화에서 덕출이 자신의 연습 장면을 녹화하는 카메라에 대고 하는 말이다.

“덕출아, 나중에 기억을 다 잃어도 이것만은 진짜 안 잊었으면 좋겠는데, 심덕출 네가 발레하는 사람이었다는 거, 꿈이 있었다는 거, 잊지 마. 알겠지?”     

 덕출은 일생의 가장 긴 시간을 집배원으로, 한 여자의 남편으로, 세 자녀의 아버지로 성실히 살아왔지만 모든 기억을 잃어가는 순간, 마지막으로 자신이 누구였는지 스스로 선택한 기억은 자신이 발레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존재적 선택이다.

 덕출이 카메라에 대고 말하는 행위처럼 글에 대한 내 행보를 낱낱이 기록해놓은 의도는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어쩌면 나도 덕출처럼 더 많은 시간을 다른 일을 하면서 살아 왔지만 항상 글 쓰는 일에 목말라 있었고, 나 역시 덕출처럼 기억을 잃어간다면 내가 글 쓰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한 뇌과학자가 말하기를 사람들은 20대에 이미 경미한 치매가 시작되고 있다고 한다. 70의 덕출이 아니어도, 지금의 나도 매일 아침 눈 떳을 때, 뇌의 상태가 시시각각으로 다름을 느낀다.

때때로 오랜 시간 공들여 써서 응모해논 글이 심사 진행 중인데도 한두달 지나면 내가 그런 일을 해놓았는지 잊어버리고 아무 것도 한게 없는 것 같은 공허감과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다. 치매가 진행중인 덕출이 작은 수첩에 일일이 기록하듯이 나도 점차 기록의 힘에 의지해야한다는 절박함을 느낀다.

지금 진행 중이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도 기억하고, 오늘의 읽을 것을 읽고, 어제 쓴 글을 다시 읽고 수정하면서 오늘의 쓰기로 연상을 연결하고... 치밀한 사유의 물살을 타야만한다.

그 물살을 놓치게 되면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일상의 디테일을 놓치게 되고, 덩어리진 허약한 사유는 금방 내가 누구인지, 뭘하는 사람인지 잊어버리고 허둥되게 다.

 덕출이 유명하거나 젊고 멋진 발레리노가 아니었어도, 단 한 번 무대 위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백조의 호수를, 그것도 왕자가 아닌, 백조로 발레를 했지만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발레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이기에 다소 과장되고 극적인 설정과 연출이 있긴 했어도 주제 의식에 있어서 만큼은 잊을 수 없는, 잊고 싶지 않은 명작이다.

 

 <나빌레라> 드라마에 특별히 더 애착이 형성되었던 개인적인 이유가 또 하나 있다. 한때 내가 누구였는지 꼭 기억하고 싶었던 내 꿈은 유리드미스트였다.

 덕출이 백조의 호수를 꿈꾸었듯이 나는 일생에 걸쳐 비발디 사계 전악장을 완성하는 꿈을 꾸었었다.

 봄 3악장, 가을 1,3악장, 겨울 2악장, 이렇게 4악장을 미완으로 남긴 채 내가 하던 유리드미 그룹이 와해 되었고, 다시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하고싶지만 거의 불가능한 은 더 애절하게 작은 불씨로 남아 그것을 실현하고 싶은 꿈이 된다. 지금 사계를 들을 땐 내가 했던 악장 보다 하지 못한 악장, 그래서 미완의 꿈으로 남은 악장을 더 유심히 듣게 된다.

너무나 힘든 상황에서 시간과 비용을 만들어서 했던 일이라 더 간절했던 꿈의 좌절은, 그 아름다운 리듬을 글로 쓸 수 있을까?또다른 꿈로 깨어났다. 그 역시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더 매혹적이라고 생각하면서... 현재 내 수준과 능력에 맞는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알츠하이머를 앓으면서 기억을 잃어가는 덕출의 아름다운 몸짓을 보면서 내가 규정하고 싶은 나, 편집하고 싶은 나, 내 존재가 선택한 나, 시간과 노력과 열정을 바친 나를 새롭게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누구였는지 기억해야할 때가 되기 전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에 얼마나 존재를 기울이고 있는가? 질문하면서 세상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좀 더 부지런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글을 쓰고 싶으면서도 쓰지 못하고 있을 때, 헤밍웨이가 한 이 말 뒤에 자주 숨곤했다.

 “내가 쓸 수 있다는 의지만 확고하다면 10년을 쉬어도 괜찮아, 하지만 그런 의지나 확신이 없다면 하루는 곧 영원이겠지.”

 10년 전에도 이 글에 숨었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의지만 확고하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이런 말은 헤밍웨이 같은 거장한테나 어울리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다시 10년이 지나기 전에 확고한 의지보다 더 확실한 것은 매일의 문장 노동임을 생각하면서 뭘 쓰든 간에, 스스로 정한 분량을 매일 쓰겠다는 약속을 한다.     

작가의 이전글 납치와 시의 발견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