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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정옥 May 09. 2021

납치와 시의 발견 사이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감상문

지미 -다섯 살 반. 다섯 살부터 시를 쓰게 된 천재

리사 –착한 남편, 청소년기의 세 아이를 둔 20년 차 유치원 교사


유치원 교사인 리사는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과 따분함을 해소하기 위해 평생교육원에서 시 수업을 받고 있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우연히 지미가 읊는 시를 듣게 되고 아이의 놀라운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점차 아이의 시에 온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첫 시작은 아이의 놀라운 재능을 키워주고 싶다는 열정이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첫 장면인 하늘색 빛 유치원 배경에서 점차 알 수 없는 회색빛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처음엔 단지 아이의 시가 너무 놀라웠고, 순수하게 시를 사랑했지만, 점점 그 사랑에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왜곡되고 변질되어 간다. 낮잠 시간에 지미만 몰래 깨워서 아이에게서 시가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한다든가, 아이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시가 떠 오를 때 마다 전화해서 말하라고 시킨다든가, 남편과의 성관계 도중에 지미에게 전화가 오면 만사를 내팽개치고 지미의 시를 받아적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일상의 모든 질서가 지미의 시에 의해 흘러가게 된다.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사건이 다가온다. 시 수업 시간에 평범하고 지루한 시로 늘 좋지못한 평가를 받았던 리사는 어느 날부터 지미의 시를 자신이 지은 것처럼 발표하게 되고, 이를 모르는 선생님은 리사의 변화된 시에 크게 감탄하고 칭찬하며 결국 시를 통해 리사와 성관계를 하는 사이로 까지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시 낭송의 밤에 리사를 초대한다. 리사는 무슨 의도인지 시 낭송의 밤에 지미를 데리고 가서 발표시키게 되고, 시 선생은 큰 충격을 받는다. 예술가들이 서로 영향을 받기는 해도 이건 아니라고, 당신은 적어도 예술가는 아니라고, 허영가라고 퍼붓는다.

안정적인 가정에서도 마음을 정착하지 못하고 지미에게 전화를 건다.

결국 지미를 데리고 교외로 간다. 이는 리사에게는 시를 위한 특별한 여행이었지만, 지미에게는 유괴나 납치가 되고, 시를 향한 순수했던 사랑은 그들이 함께 물놀이 했던 회색빛 깊은 호수가 암시하듯이 점점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으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시만 잘 쓰는 줄 알았더니 이 아이는 진짜 천재였다. 선생님인 리사가 샤워하는 동안 문을 잠그고 경찰에 신고를 한다. 자신이 납치당했다고. 

리사는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긴장감 있게 몰아왔던 자신의 입장을 절박하게 토로한다. 

“세상이 널 지워버리려 해. 세상에 널 받아 줄 곳은 없단다. 너 같은 사람들 말이야. 몇 년도 안 지나 너도 나 같은 그림자가 될 거야.”

결국 리사는 경찰에게 연행되고, 지미는 경찰 차 안에 홀로 갇혀있게 된다. 아이스크림을 사서 곧 돌아오겠다는 여자 경찰의 말에서 지미는 이미 리사가 했던 말처럼 시인이 아닌 아이스크림이면 해결되는 다섯 살 꼬마로 일반화되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아무도 없는 차 안에 갇힌 지미가 말한다.

“시가 떠올라요.”

“시가 떠올랐다고요.”

아무리 말해봐도 아무도 듣지 않는다. 자신의 시를 알아봐 주고 받아 적어줬던 리사는 이제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리사의 이상 행동이 불안하고 옳지 않다고 정죄하는 마음으로 보게되고, 다섯 살 천재 지미가 경찰에 신고하는 장면에서는 정의가 이긴 것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기도 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 크고 긴 여운을 남긴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누군가에게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세상이 과연 그럴까 라는 질문이 되어 후폭풍으로 몰아친다. 과거의 캐릭터가 권선징악적이고 승자와 패자, 선인과 악인이 분명했다면 현대의 캐릭터는 그 경계가 불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리사를 정죄하고 지미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것으로 우리는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는가 말이다.

옳고 그름이 불분명한 회색빛 세상은 불안하고 누구나 여기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리사의 외침처럼 서로를, 스스로를 서둘러 그림자로 만들어버리고 그림자 됨에서 평온을 찾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본 감상평들도 대단히 제 각각이었다. 이런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천편일률적인 교훈과 권선징악으로 세상을 청정지역으로 만드는 이야기는 아이들의 세상, 동화 속 이야기다. 실제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 복잡다단한 가치와 온갖 생각과 감정들이 얽혀있는 거대한 구조물이다. 그것에 머무를 능력이 없으면 모든 것을 단순화시켜버림으로써 안락을 회복하려한다. 그럴 때 그 자신도 일반화되어 그림자가 되고 말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이 연결되었다.

“사람은 살균된 세계 속에서는 행복할 수 없는 법이지요. 그 세계에 생명을 이끌어 들이기 위해서는 미생물들을 들끓게 해야 했습니다. 상상력을 회복시키고, 시를 발견해야 했던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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