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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정옥 May 10. 2021

길모퉁이 글쓰기 카페를 꿈꾸며

 어젯밤 꿈에 삶은 달걀을 까는데 물기 어린 달걀 속살이 뽀얗게 드러나면서 껍질이 깨끗하게 떨어져 나갔다. 질척하게 들러붙는 감정의 속성이 보다 밀도 높아진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법상 스님은 집착만 없어도 해탈이라고 하신다.

 법륜 스님은 집착하는 감정을 설명하실 때 쌀과자 비유를 자주 하시는데, 끈적하게 들러붙는 엿 같은 사람이 되면 안 되고, 바삭바삭한 쌀과자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다.

우리의 감정 상태를 보여주는 꿈은 대체로 시각적 이미지로 보여진다. 특히 집착의 감정은 ‘착’이 의미하듯이 들러붙는 성질의 물질로 시각화된다.

 만약 어젯밤 꿈에서 집착의 감정이 여전히 미해결 과제로 나타났다면 달걀 껍질에 속살이 들러붙은 형태로 보여졌을 것인데, 껍질이 깨끗하게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았을 때, 한층 단단해진 감정이 느껴졌다.

 달걀 껍질에 속살이 많이 들러붙으면 실제로 먹는 양이 줄어들고 버려야 할 부분이 많이 생기는 것이니 이 얼마나 소모적이란 말인가.

 오래전에 집착에 대한 감정을 꿈꾸었을 때 아스팔트의 콜타르 같은 물질이 끈적하게 들러붙는다든가 접착제가 떨어지지 않고 붙는 등의 이미지가 보여졌다. 모두 원하지 않는데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불쾌감을 주는 물질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 교사 안은영>에서의 젤리 괴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는 능력을 가진 보건 선생님 안은영이 이를 두려워하거나 피하기보다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매력적인 퇴마사로 활약하는 코믹 판타지이다. 형형색색의 귀여운 젤리로 형상화된 괴물들이 실제 무의식에서 보여진다면 귀여운 형상을 하고 들러붙는 생명체들은 떨쳐내야 할 징그러운 속성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먹는 젤리도 보기에는 너무나 상큼 달콤 사랑스러운 비주얼이지만 이에 들러붙어서 충치를 유발하는 물질을 숨기고 있듯이 말이다.


 과거 직장 동료들과 함께 공부하는 심리교육 클래스를 운영했었다. 같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방식으로 미해결 심리 과제를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진행했었다. 구성원이 돌아가면서 그날의 글제를 지정하면 30분의 정해진 시간 동안 즉석에서 글을 쓰고, 이어서 돌아가면서 자신이 쓴 글을 낭송하는 방식이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이런 식이면 좋겠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시도해본 것이었는데, 효과는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생각나는 글제들은 이런 것들이다.

 집착에 대하여, 숨기고 싶은 것들, 원망스러운 것,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하는 것...

 이런 식의 제목이 주어지면 처음에는 쉽게 글 속으로 들어가지 못해서 답답해하는 순간을 갖다가 어느 순간 펜을 잡은 손이 빨라지기 시작하고 마감 시간이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5분만 더 쓰자는 제안을 할 만큼 많은 감정들이 쏟아지곤 했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머뭇거리는 시간이 짧아지고 곧바로 오랜 묵은 감정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추가 시간이 없이 정해진 시간에 끝내게 되었고, 낭송 시간에 우는 일도 줄어들었다. 눈물을 감추고 애써 웃는 것이 아니라 나와야 할 눈물이 빠져나와서 마른 자리에서 생겨난 미소들이 참 좋았다.

 모두 다 공통적으로 말했던 소감은 글을 쓸 때는 몰랐는데, 자신이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을 때 누구 하나 예외 없이 한 번 이상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큰 울음을 터뜨렸다는 것이었다.

 내가 심리학 박사도 아니고 의사는 더더욱 아니고 어떤 권위나 명분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런 방향성을 가지고 글쓰기 수업을 진행한 것 뿐이었는데, 그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보이며 눈물을 쏟았다.

 처음에 이와같은 장면이 연출되었을 때는 우는 발표자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모두 당황했다.

 나 역시 이론적으로는 조금 더 알고 있을수도 있었지만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명색이 진행자라 그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고민 했었지만 이내 어떤 방식이 가장 유용한지 알 수 있었다.

 그냥 울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좋았다. 처음엔 한 사람이 울기 시작했을 때, 옆 사람이 어떤 액션이라도 취해야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하는 제스츄어를 했고, 이후에 그러한 위로를 받은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울 때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위로해주는 마음은 고맙지만 온전히 제 감정이 빠져나갈 때까지 방해받고 싶지 않았는데, 등을 쓰다듬으니까 그 감정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아쉽고 불쾌했어요.”

 대단히 솔직하고 소중한 피드백이라고 생각되었다.

 위로해준 사람은 자신의 호의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서운할 수 있지만 더 심층적인 관점에서 보면 위로하는 사람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혹은 그렇게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하는 형식일 수 있으며 그 상황에서 더 필요한 방식은 어쩌면 마음으로만 진정하게 깊은 공감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아픔을 함께하는 방식을 진솔하게 나누고 질서를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그 이후에 또 누군가가 눈물을 터뜨리는 상황이 생기면 그 사람이 다 울 때까지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나중에 그런 감정이 서로 충분히 공유되었을 땐 한 사람이 울고 있을 때 차를 준비하러 일어나기도 하고 각자 알아서 행동하기도 했다. 그 행동 역시 그 사람이야 울든말든 나는 내 할 일 한다는 식의 의도가 아니라 서로를 올바로 이해하고 성숙한 자세를 견지했을 때 구성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럽고도 편안한 공기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심리교육 클래스는 3년 넘게 지속되다가 코로나 영향으로 중단 되었는데, 만약 다시 그와 같은 클래스를 하게 된다면 글쓰기에 중점을 두고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침에 깨었을 때, 껍질이 깨끗하게 떨어져 나가는 달걀 꿈으로 내가 시도해왔던 생산적인 일들 중에 가장 잘한 것 같은 일,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글쓰기 클래스가 소환되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더 나이가 들고, 집착에서 더 자유로워질 어느 날, 길모퉁이 작은 글쓰기 카페를 열고 싶다.

각자 생업에 충실한 사람들 평일 저녁, 길을 가다 우연히 들르듯이 글쓰기 카페에 머문다. 호구조사하지 않고 스스로 말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한다. 돌아가면서 글제를 정하고 각자 편한 구석에 가서 30분간 글을 쓰고, 발표를 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눈물을 흘리면 좋겠다. 어설픈 위로 없이 울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눈물이 마른 자연스러운 미소로 차를 마시면 좋겠다. 요란스러운 인사 없이 각자 가던 길을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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