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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정옥 May 10. 2021

벽에 부딪혀도 밀고 나가기

-제임스 스콧 벨, <소설쓰기의 모든 것>

 제임스 스콧 벨, <소설쓰기의 모든 것> 1. 플롯과 구조 p175의 내용이다.

소설을 쓰다가 일순간 자신감을 잃을 때, ‘내가 쓴 소설은 완전히 쓰레기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 때,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작가가 고안해 낸 처방전이며, 이번에 한 달 가까이 장편 소설 초고를 쓰면서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기록해 둔다.    

 

1. 하루 동안 글을 쓰지 말고 쉰다.

2. 평화롭고 조용한 장소(공원, 호숫가, 텅 빈 주차장 등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이면 아무 데나)에서 시간을 보낸다.

3. 아무것도 하지 않고 30분쯤 시간을 보낸다. 책도 읽지 않고 음악도 듣지 않는다.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4. 순전히 즐거움을 위한 일을 한다. 영화를 보든가 몇 시간 동안 쇼핑을 한다.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5. 저녁에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마시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으며 잠을 청한다.

6. 다음 날 아침 일찍 무엇이든 좋으니 쓰고 있는 소설에 대해 써본다. 원고지 2,3매 정도 쓴다. 편집도 하지 않고, 생각을 하기 위해 천천히 쓰지도 않는다. 그저 무조건 쓴다. 그러면 다시 흥미를 찾을 수 있다.

7. 초고를 완성할 때 까지 밀고 나간다.     


잊지 말자. 우리가 쓴 초고는 우리가 벽에 부딪혔을 때 걱정하는 것만큼 형편없지 않다.     


 초고를 쓰는 한 달 동안 위에 제시된 방법들을 거의 다 사용해 보았으며, 의외의 큰 효과를 보았다.

 산책의 효과가 가장 즉각적이고 확실했으며, 마침 집 근처에 아이스크림 무인 가게가 생기는 바람에 아이스크림은 괜히 너무 많이 먹었다.

 정말 신기한 것은 멍 때리거나 잘 쉬고 나서 다시 들여다보면 작가의 말대로 같은 문장이라도 그다지 형편없지 않고 새로운 지점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장편 초고는 처음 써보았는데, 한달 가량이나 작업을 하고 거기에 모든 생각이 메이게 되니까 서둘러 마무리짓고 싶었다. 총 46챕터를 썼는데, 처음에는 하루 한챕터 씩 차분하게 써 나가다가 막바지에는 급하게 마무리하게 되어서 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출력한 후 다시 읽어보는 것도 엄두가 안나서 며칠 째 숙성시키고 있는 중인데, 작가의 말처럼 '내가 쓰레기를 쓴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제일 컷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한 달의 시간과 출력하는 비용 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런데,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한 내용이 책 속에 그대로 쓰여져 있었다.

 p202의 서둘러 끝맺지 않기 바로 그랬다.

‘소설 쓰기는 아주 힘겨운 일이다. 그러므로 결말이 다가올 때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작가들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때로 작가들은 소설을 쓰느라 너무나 오랜 시간을 보낸 탓에 빨리 끝내고 싶어서 안달한다.’

 정말 소름끼칠만큼 정확한 내 심경을 그대로 적어놓고 있었다.

 구조, 시점, 플롯, 인물 등 소설의 요소들에 관한 작법 공부를 위해서 읽기 시작했지만, 소설을 쓰면서 내가 맞딱뜨리고 있는 심리적 부담을 너무 잘 헤아려주고 있어서 더욱 신뢰가 가는 책이다.

 흔히들 이런 말을 많이 하곤한다. '글은 자신이 산 만큼 쓴다. 어떻게 쓰느냐는 어떻게 사느냐에 달렸다.' 등등...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싶은 부담백배의 말씀들이 '정말 그렇구나', 뼈때리는 조언으로 와 닿고 있다.

 '내가 쓰레기 같이 살면 쓰레기 같은 글 밖에 못 쓸 것 같고,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는 만큼 좋은 글을 쓰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한 달 동안 A4 1000매 가량의 장편 초고를 쓰면서 아무리 숨기고 가리려고 해도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처럼 확연하게 드러나는 나의 문제들을 여실히 볼 수 있었고, 그래서 고통스러웠고, 그래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출력해 와서 책상 한 구석에 뒤집어 엎어 놓고는 들춰보지 않은 초고를 내일 들춰볼 생각이다. 그리고 대거 삭제할 것이고, 합치거나 없애고, 다듬고 잘라낼 것이다.

 뭐가 됐든 끝까지 밀고 나가서 이야기로 이야기되도록 살려내고 싶다.

 가제로 가지고 있는 제목 후보가 두 가지인데, 끝날 때 까지 어떤 제목이 더 나을지, 아니면 마지막에 새롭게 등장한  제목이 초반부터 버티고 있었던 타이틀을 밀어내고 새롭게 부상할지... 여러 가지 요소들이 다시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답답하고 지루한 일을 대하는 내 태도를 견지해가며 새로운 작업을 해내게 되면 몹시 뿌듯할 것 같고,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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