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세차게 내리는 빗속에 장바구니를 들쳐메고 우산을 들고 마트에 갔다.
오늘 일용할 음식들을 사서 냉장고에 채웠다.
책상 옆 공간에 접이식 의자를 펴놓고 등받이에 밴드를 걸쳐두었다. 일하는 중간중간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겠다는 의지를 환경으로 설정해둔 것이다. 생각과 의지, 마음의 힘이 쌓여서 시각화, 물질화 된 것이다.
'의지만으로는 안된다. 실천할 수 있는 환경설정이 필요하다.'는 한근태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그것을 내 경험의 단어로 재정의하면 '정신의 물질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신이란 어마어마한 실수와 반복을 거듭하면서 축적된 힘이 "마침내!" 실천되는 것이니 냉장고에 채운 음식 몇가지, 운동하려고 꺼내놓은 의자 하나가 나에게는 단순한 물질이 아닌, 처절하고도 영광스러운 "단일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세찬 빗줄기 속에서 오토바이를 타면서 원하고 원망했던 시간들을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기싫은 일을 하면서, 숱한 의문과 끊이지 않은 생각들 속에서 삶이 유지되기를 기도했던 그 날들을 말이다. 그건 멋진 것도,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다. 내 삶의 모든 요소요소들을 당연하게 여겼던, 그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음으로 놓쳤던 현실을 다시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분투였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비오는 아침이다.
먹고싶은 것들로 냉장고를 채우고, 그토록 원하던 아침 독서를 하고, 모닝페이지를 쓰고있다.(바로 이것이다!) 집중적으로 일을 하고나서 늦은 오후에는 헬스장에 가서 2시간 근력운동을 할 것이다.
하기싫지만 해야했던 힘겨운 아르바이트 대장정의 나날이 지속되는 동안, 틈틈이 도서관에서 찾아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무라카미 하루키와 한근태 작가님의 삶, 그 여유와 자유를 동경해오던 내가 그들과 닮은 일상을 설계하고 실천해나가고 있다.
자유! 희뿌연 안개같던 젊음과 열정 속에서 외쳤던 관념적인 단어였던 자유를 지금도 외치고 있다.
보다 더 선명해지고, 보다 더 구체적이어지고, 보다 더 실천적이어진 형태로.
한방울 한방울 농부의 땀으로 지어진 한톨 한톨의 밥알이 모인 한그릇의 밥처럼, 한땀 한땀 빼곡하게 연결된 바느질로 지어진 옷처럼 그렇게 치열한 준비로 이어나가는 끝에서 만나는 날숨이 지금의 내가 아는 자유다.
길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 위에 오르는 것, 경계가 자유다. 한계가 자유다.
알람을 맞추고 자제력을 다해 지켜내는 치열한 일상과 마주하는 현실이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