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정옥 Oct 01. 2016

전이

내가 하고있는 메이들 일은 한 달에 한번 층과 같이 일할 파트너가 바뀌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매 달 말일 즈음해서 다음 달 스캐쥴 표가 사무실 앞 벽에 게시되는데 참 재미있는 것은 이 때의 풍경에서 초등학교 때 짝을 바꿀 때의 장면이 오버랩 된다는 점이다.
자기가 평소에 마음에 들어하던 사람이 짝이 되면 혼자 좋아하기도 하고 옆 사람에게 기쁨을 표현하고 그 사람을 찾아가서 짝이 되었다면서 함께 기뻐한다. 반면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짝이 되는 경우엔 혼자 있을 땐 노골적으로 싫은 표현을 하기도 하고 당사자 앞에선 억지 웃음을 웃으며 잘해보자고 마음과 다른 인사를 건내기도 한다. 많이 싫어하는 경우엔 스케쥴러가 자기를 미워해서 일부러 그랬다느니 하는 말도 않되는 추측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즈음엔 친한 사람들 끼리 지난 달 짝에 대한 말들도 많이 오가는 화젯거리다. 그냥 오가며 인사할 땐 좋아보였는데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면서 한 달 지내보니 진짜 아니더라는 등이다. 다음 달에 어디가느냐? 짝이 누구냐? 질문이 주 인사가 되면서 짝 이름을 말하면 놀랍게도 곧바로 그 사람을 평가해준다.
 '아~ 그 언니, 좋아. 차갑긴 하지만 일은 칼같이 잘해.'
 '그 사람 진짜 좋아. 완전 잘 챙겨줘.'
 '어떻할래. 진짜 힘들겠다.'
뭐 이런 식이다.

한번은 앉기만 하면 사람 험담으로 시작하는 언니가 내 짝 언니에 대해 욕을 했다. 그 당시 내 짝이었던 언니는 후배들에게 직설적으로 조언을 잘해서 대부분의 신입이나 후배들이 무서워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다고 평가하는 사람들과 나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에 대해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거라고 믿고 편안하게 칭찬이나 욕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 언니도 아마 나도 한 달간 그 언니한테 시달렸을거라 생각하고는 위로 차원에서 한 말이었을 것이다.
 '이번 달 고생했제? oo 언니 어떻데?'
나는 그 언니가 어떻게 말할줄 예측하고는 그 언니와 동조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말했다.
 '내가 보기엔 정신적으로 대단히 건강한 사람인 것 같다.'
그렇게 말하자 이 언니는 속으로 엄청 흥분하는 것 같더니 내가 뭘 잘 몰라서 그런다는 식으로 그 언니의 험담을 하려고 했다.
 '뒷말도 안하고 필요할 때 적절하게 잘 가르쳐주고 대단히 건강한 사람이다.'
고 잘라서 말하고 한동안은 그 언니에게 냉정하게 대했더니 그 이후로 나에게는 사람 말을 안하고 나를 불편하게 여기는 듯 하다.
사실 사람들이 싫어하는 내 짝이었던 그 언니도 문제는 있지만 실재로 내가 보기에 뒤에서 욕하는 힘없는 사람들 보다는 힘이 있는 사람이고, 후배들한테 도움이 안되고 사람들 욕이나 회사에 대한 불만이나 늘어놓으며 자신의 쓰레기 같은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쏟아내는 사람들 보다 훨씬 건강한 사람이다.

참 재미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의 이름을 거명했을 때 1초도 안되어 즉각적으로 튀어나오는 그 사람에 대한 감정들.
좋은 사람, 싫은 사람이 너무나도 명확한 사람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없다. 자기 안에서 오랫 동안 형성되어 온 대인 관계의 습관이 상대를 좋게도 보게 되고 나쁘게도 보게되는, 즉 상대방은 내 내면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 거울에 다름 아니다.
좋게 느껴지는 사람이든 싫게 느껴지는 사람이든 그 감정이 일어나는 내 심연을 들여다보고 관찰할 일이다.

- 12일째 새벽

작가의 이전글 부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