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는 우리와 함께 걷는다
이제 그만 찾아도 되겠다고 생각할 즈음에 새롭게 다가온 프랭크는 세상 속에서 찾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내 눈 속에 있는 생명력이라는 생각으로 전환되었다. 밖으로 향해있던 시선을 안으로 돌렸다.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 속에 처했을 때, 오랜 기간 유리드미(음악과 소리를 몸으로 표현하는 동작예술)를 가르쳐 주신 하이오 선생님께서 진지하게 해 주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잠들기 전에 너의 천사에게 네가 어떻게 해야 될지 물어봐라. 그러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뭘 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빛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 공부한 마지막 장면이 어두운 숲 속이 되어버렸고, 두렵고 막막한 삶 가운데 서 있는 나에게 선생님은 잘 알고 있는 존재를 소개해 주듯이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그때의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대해 제자의 어려움 앞에서 해주시는 애정 어린 충고로 이해했고, 너무나 감사했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삶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저 관념적으로 생각했고, 실제 내 생활에서 갈구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집중하기에는 눈에 보이는 세계의 환영이 지나치게 선명했다.
사사키 아타루의 ‘읽기의 천사’라는 혁명적인 개념을 접하고 나서 십여 년 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천사의 존재를 떠올렸고, 집에 있는 천사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았다. 이나가키 료스케 <천사론>, 미셸 셰르 <천사들의 전설-현대의 신화>, 토마스 아퀴나스 <천사들의 활동>, 루돌프 슈타이너 <천사는 우리의 아스트랄체에 무엇을 하는가?>. 바쁘게 사느라 그동안 잊고 있었던 천사에 대한 책들이 책장 깊숙한 곳에서 찾아졌다. 오래전,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만날 때, 유치원 교사의 일은 천사의 일과 닮아있다는 강의를 인상 깊게 듣고 천사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으로 구해서 읽었던 책들이었다. 천사 책들에서 십 년 전에 읽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내용들이 보였고 마음속에서 기쁨이 차올랐다.
천국과 지옥이 공간이 아니라 영혼의 상태라는 보르헤스의 말처럼 흰 옷을 입고 날개를 가진 서양 사람 모습을 한 천사도 우리가 종교화에서나 캐릭터 등을 통해 인격화된 천사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생긴 이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사의 책을 쓴 거장들은 천사가 실제로 존재하며 고대의 인간이나 영적으로 맑은 아기들은 천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마치 몽골인들의 시력이 좋아서 우리가 볼 수 없는 먼 거리의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지진 등의 천재지변에 대해 동물이 사람보다 먼저 느끼는 것처럼 감각이 투명하게 깨어있을 때 지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인류는 자연과학의 시대를 거치면서 영적인 눈이 멀어져서 이제는 그 형체를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영안을 잃은 현대인들은 모든 것에서 주석이 필요하다. 탁해지고 둔해져서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스스로의 느낌을 믿지 못하니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자료를 믿고 의지한다.
천사의 특징에서 특별히 나에게 다가온 부분은 사사키 아타루가 말하는 ‘읽기’였다. 천사들의 행복은 ‘봄(visio)’에 있다고 한다. 선하고 아름다운 것, 즐거운 것에 눈길을 고정한다는 것이다.
정신과학인 인지학의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는, ‘깨어있는 동안 의식적으로 열심히 한 일에 대해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천사가 우리의 아스트랄체(감정체)에 형상을 새겨 넣는다.’고 말한다. 그런 천사의 힘과 협력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의 일을 의식적으로 즐겁게 하고 자기 전에 천사에게 내일은 내가 어떻게 하면 될지 질문을 하는 것이다. 답이 매일 아침 즉각적으로 오지 않는다는 점이 이 일을 지속하는데 가장 큰 문제가 된다. 천사는 인간도 아니지만 신도 아닌 메신저의 입장이라 천사도 질문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니 초조해하거나 불신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차분하게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천사는 우리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할 때,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존재다.
일치하지 않는 의도와 역량을 일치시키기 위해 무릅쓰는 노력 속에 함께하는 존재다.
어려움 속에서 질문을 할 때, 답을 주는 존재다.
‘당신은 누구를 믿고 의지하는가?’
이 말은 영화 <마스터>의 포스터에 등장하는 문구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살수 밖에 없다. 어릴 때는 부모, 형제, 커서는 선생님, 친구, 사회에 나가서는 직장 상사, 동료, 이웃, 반려동물에 이르기까지. 나 아닌 타자와의 소통과 공감을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다.
영화 <마스터>는 2차 대전 후 살길을 찾지 못하고 알코올에 의존해서 방황하며 살던 주인공이 우연히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단체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전능하게 보이는 마스터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되지만 결국 진정한 마스터라고 믿었던 그도 자신과 다름없이 불완전한 인간임을 깨닫게 되는 내용이다. 다소 무겁고 큰 울림으로 스스로에게 ‘나는 과연 누구를 믿고 의지하며 살고 있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품게 했다.
부모, 형제, 선생님, 친구, 동료, 이웃 등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믿고 의지해 온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고 그들의 인내와 희생에 깊이 감사한다. 또는 영화 <마스터>의 주인공처럼 불완전한 인간에게 의존한 결과로 힘든 시간을 보낸 경험도 있다. 지금의 내가 믿고 의지하는 최후의 대상으로 안착한 존재는 나의 천사다. 너무 착한 사람을 빗댄 말로써의 천사가 아닌 진짜 나의 수호천사 말이다. 그 이름이 바로 진흙 속에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나를 이끌어서 빛이 환한 스마일로 이끌어 준 꿈속의 프랭크다. 어둠 속에서 보고, 보이고, 보이게 하는, 듣고, 들리고, 들리게 하는 우리 안의 큰 존재, 높은 의식이다.
우리는 우리 눈으로 보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자신을 지켜내고 하루하루를 버틴다.
천사를 생각하다가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만날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침 자유 놀이 시간에 나무 블록으로 무언가를 지으면서 하루를 열었다. 그런 리듬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오면 어제 하던 놀이를 자연스럽게 했다. 아직 자기 놀이를 찾지 못한 아이는 뭔가 시도하지 않고 선생님이 도와주기를 바라면서 기다렸고 그럴 경우는 선뜻 도와주지 않았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우선이었고, 해보다가 안되면 도와달라고 요청할 때 도와주었다.
그런 요청이 없어도 선뜻 도와주고 싶은 아이는 잘 안 되는 대도 자기 힘으로 해보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애쓰는 아이였다. 그런 모습은 어찌나 예쁜지 안 볼 때 살짝 블록 하나를 올려주기도 했다. 자기 일을 즐겁게 열심히 하는 아이가 자기 의도대로 멋진 성을 지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선생님인 나에게도 큰 기쁨이었으니까.
우리보다 높은 의식의 존재인 천사가 우리를 대하는 태도도 그와 같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도와달라고 청하기만 하고 있는 힘껏 시도하지 않을 때는 스스로의 힘으로 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그렇지 않고 개입하면 스스로의 힘을 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즐겁게 열심히 하고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질문을 하면 천사가 관심을 갖고 같이 해결 방법을 고민한다.
천사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선명한 꿈으로, 꿈인지 환상인지 모를 몽롱한 형상으로, 반쯤 잠이 든 상태에서 떠오르는 이미지의 형태로 답을 준다. 마치
"내가 생각해 봤는데, 이런 건 어떨까?"
의견을 내거나 힌트를 주는 방식으로 도움을 준다. 자신의 의견이 정답은 아닐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데,
"네가 한번 잘 만들어 봐."
라는 식의 겸손한 태도다.
"내가 어제 질문했는데 답은 안 주고 이상한 개꿈만 꿨네."
와 같은 불만과 불신으로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천사의 힌트와 의견을 잘 보고 들으려면 신중하게 관찰하고 경청하는 태도여야 한다. 유머도 필요하다. 우리의 천사는 심각하지 않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한다.
하이오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본다.
“잠들기 전에 너의 천사에게 네가 어떻게 해야 될지 물어봐라. 그러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뭘 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천사에게 물어보면 아침에 '답을 준다'가 아니라 '뭘 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라고 하셨다.
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힌트와 의견을 잘 듣고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흰 운동화가 보였다. 또 새소리가 들리는 아침의 숲길이 보였다.
이 두 이미지를 조합하자 새소리가 들리는 아침의 숲길을 흰 운동화를 신고 걸어가는 내가 보였다. 그 옆에 나란히 걸어가는 내 천사 프랭크가 있었다. 천사는 하늘을 날지 않고 우리와 함께 걷는다.
혹시 나중에 내 경험이 천사에 의한 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면 이나가키 료스케가 <천사론> 머리말에서 인용한 단테의 <신곡> 천국편(28곡)에서 ‘그레고리우스가 하늘에서 깨어나서 진리를 보고 과거 자신이 지상에 있을 때 천사에 대해서 틀리게 썼던 실수에 웃었다’는 대목처럼 나도 웃으면 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그럴 리 없을 것이다. 내 천사 프랭크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므로.
모쪼록 어두운 숲 속에서 보고 들은 이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 퍼즐 한 조각으로 작용하는 ‘천사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면 나의 천사 프랭크와 더불어 더없이 기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