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와 충격을 생산하는 글쓰기

-한 노작가의 인터뷰를 읽고

by 오렌


“왜 그리기를 멈추셨습니까?”

“그림을 그릴 만한 의미를 못 느꼈어.”

“어떤 의미를 말하시는 겁니까?”

“작가에게는 가해지는 충격이 가장 중요해. 심각하게 느껴지는 그 충격이 와야 하는데. 나태한 상태에서 세월을 보내다 보니 좋은 작품이 안 나와.”

“새 작품을 보려면 큰일이 생기길 바라야 하는 건가요?”

“그게 솔직한 마음이야. 뭔가 생겨야 할 듯하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작품을 그리는 화가의 인터뷰 내용이다.

평생 그림을 그려온 노년의 화가의 인생을 이 몇 마디의 말로 평가하는듯한 무례함에 먼저 인간적인 용서를 구한다. 또한 광대한 월드와이드웹의 세계에 이 몇 마디의 펄떡이는 언어를 던져줌으로써 솔직하고 용감한 그 체험담을 낚은 이가 반면교사 삼아 경각심을 갖게 해 준 것에 대해서 감사한다.


이 대화에서 '의미'와 '충격'에 주목되었다.

그림을 그릴만한 의미를 못 느껴서, 충격이 오기를, 가해지길 기다린다는 말에서 의미와 충격은 외부에서 생기는 것, 오는 것,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라는 지고의 진리를 확인하게 한다. 무엇보다 '나태한 상태에서 세월을 보내다 보니 좋은 작품이 안 나온다'는 말이 가장 무섭고 중요한 대목이다. 인간이 가진 나약한 육체성을 한 마디로 요약해 준다.


하루키가 눈 뜨자마자 시작해서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매일 10킬로미터를 달린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히 알려진 글쓰기 비법이다. 김훈 작가는 책상 앞 벽에 '일필오'라고 써붙여놓고 매일 원고지 다섯 장을 쓰는 것을 스스로와의 약속으로 정해놓고 글을 쓰고 있다고 한다. 조정래 작가는 스스로 만든 맨손체조를 하루 세 번 하면서 체력과 정신을 다잡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발에 물집이 잡히고 피가 나도록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충격을 선택하기도 하고, 강도 높은 육체노동으로 정신을 일깨우기도 한다. 이른 아침에 사과를 한 개 먹는다든가, 늦은 오후에 향기로운 캐모마일 차를 한잔 마신다든가, 점심을 먹고 집 앞에 나가 5분 동안 걷는다든가, 다 있는 가게에 가서 새 노트와 볼펜을 산다든가, 달콤한 향의 핸드워시로 손을 씻는다든가...... 지루하고 따분한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각자가 고안한 크고 작은 노력들은 마른땅에 솟아나는 새싹처럼 우리에게 활력과 기쁨을 나누어준다.


이렇게 쥐어짜보고, 저렇게 해봐도 안 되는 온갖 방법을 시도해 보다가도 다시 돌아오게 되는 법칙은 '성실한 생활'이다. 규칙적인 일상, 대우주와 조응하는 하루의 리듬이다. 하나 더 보탠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쓰고 오후에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노작가가 말하는 '작가에게 필요한 충격'을 생각하다가 고등학교 1학년 물리 공부를 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 백과를 통해서 복습한 물리 용어다.


관성(inertia)

관성은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는 상태에 있고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는 상태에 있는 경향으로 운동의 상태가 변할 때 물체의 저항력으로 뉴턴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관성을 제1법칙으로 정의했다.

뉴턴은 움직이는 모든 사물을 지배하는 운동법칙을 찾아냈고 우리는 지금까지도 뉴턴의 물리학적 세계관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관성의 영어 명칭인 이너티아(inertia)의 어원은 라틴어 iners로 ‘게으르다. 쉬다’라는 뜻이다.


운동량(momentum)

운동량은 운동하는 물체가 갖는 운동 효과를 말한다. 운동 효과는 물체의 질량이나 속도에 따라 달라지며 질량이 일정할 때 운동량은 속도에 비례하고 속도가 일정할 때 운동량은 질량에 비례한다.


충격량(impulse)

물체가 받는 충격의 정도를 나타내는 물리량으로 크기와 방향을 가지고 힘과 시간의 곱으로 나타낸다. 충격량의 크기는 충돌 과정에서 받는 크기가 클수록, 받는 시간이 길수록 크다.


물리 용어인 관성을 일상어로 번역하면 습관, 경향, 상태 정도가 될 것 같다. 우리의 습관은 관성의 지배를 받고 있다.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관성을 유지해서 성장하고 성취하는 사람도 있고, 원치 않는 나쁜 습관이나 중독의 관성에 머무르며 변화하지 못해서 괴롭고 불행한 사람도 있다. 이런 관성은 깨뜨려야 할 관성이다. 관성을 깨는 방법은 새로운 관성, 즉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 변화다. 변화를 위한 동기와 가능성을 찾아 시도하는 것이다. 무모와 비겁 사이에 잠들어있는 용기를 발휘해서 공부, 운동, 여행...... 뭐가 됐든 나름의 유용하고 유의미한 자극이 될 운동과 충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다시 화가의 말로 돌아가보자. 평생 좋은 작품으로 부와 명예를 누린듯한 노년의 화가가 더 이상 의미와 충격을 느끼지 못해서 미필적 절필을 선언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의미와 충격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수천만 원 호가하는 작품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의미와 충격을 자생해 내려면 화가라면 뭐라도 그려야 하고, 작가라면 뭐라도 써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을.


외부에서 오는 충격을 기다리지 말고 내 안에서 끊임없이 만들어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서 창의성의 포트락 파티에 가지고 온 작은 요리 하나를 꺼내본다.

필자가 스스로 고안해 낸 '창의력을 위한 샘물 명상'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다름 아닌 어릴 때 배운 동요 '깊고도 넓고도'를 부르며 내 안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의식하는 것이다.

악보가 없어도 가사만 보고도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다.

깊고도 넓고도 깊고 넓은 샘물 흐르네
깊고도 넓고도 깊고 넓은 샘물 흐르네

의식하면 할수록 결코 마르지 않는 우리 안의 샘물, 각자 자기만의 샘물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을 발견한다면 세상의 거대한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바다를 향할 수 있다.

외부에서 다가오는 충격을 기다리지 말고 내 안에 의미와 충격을 일발장전하고 하루에 나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