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어야 할 한 가지 이유

by 오렌


김영하 작가는 말한다.

'세상의 모든 작가들은 작가가 되지 못할 백 가지 이유가 있지만, 작가가 되어야 할 한 가지 이유로 작가가 된다.'라고. 이 말은 내가 작가가 되어야 할 한 가지 이유를 생각하게 했다.


"생각은 바이러스처럼 생명력이 강해. 전염성이 강하고 원대한 계획의 씨가 되기도 하지. 한 사람을 규정하거나 파괴하기도 해."

영화 <인셉션>의 대사처럼, 생각이란 것은 한 가지 생각을 선택해서 핀으로 고정하고 주시하면 할수록 의미와 생명을 갖게 된다.


나는 재주가 많은 편이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잘 배우고 적응력이 좋은 편이고, 세상이 필요로 하고 내가 재미있으면 하던 일의 문이 닫혀도 크게 연연하지 않고 돌아서서 다른 문으로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세상을 살아왔다. 중년이 훌쩍 넘은 어느 날, 작가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작가가 되어야 할 한 가지 이유를 찾는 데에는 재주가 많고 삶의 궤적이 화려한 인생은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오래전, 발도르프 교사교육을 받을 때 연세가 지긋하신 마틴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느리고 꿈꾸는 듯하고 잘 배우지 못하는 아이는 왜 그런가 지켜봐라.

마찬가지로 빠르고 깨어있고 재능이 많은 아이는 또 왜 그런가 지켜봐라."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어떠한 행동 패턴을 갖게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빠르고 재주가 많은 내 성향이 좋은 것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나는 왜 이런 성향으로 살게 되었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찬찬히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그 성향은 슬픈 이유를 찾아내게 했다. 우리가 자신에게서, 또 타인에게서 '좋다', '나쁘다'라는 이분적인 판단을 멈추고 제삼자의 관찰자 시점을 갖게 될 때, 조금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시선과 시야를 갖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호불호가 아닌 이해가 될 때, 차분해지고 비로소 이것이 아니면 안 되는 삶의 소명, 한 가지 이유를 떠올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시대의 체호프, 현대 단편 소설의 거장이라 불리며 20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앨리스 먼로는 자신이 단편 작가가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단편은 그저 장편소설을 쓸 시간이 날 때까지 써보는 연습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사실과 직면했다."

"나는 다른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이 일만큼 끌렸던 것은 없었고, 그러니 내 삶에는 다른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글은 잘 썼지만 주제가 진부하다'는 이유로 발표를 하지 못하는 시절을 겪고 좌절도 많이 했지만 끝내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것은 자신의 말대로 글쓰기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라는 생각에 매달렸고, 결국 가장 잘하는 것(단편 쓰기)을 가장 익숙한 배경(캐나다의 시골 지역)에서 그려내는 작가가 되었다.

-앨리스 먼로, <디어 라이프>(421-423쪽)


'시적인 힘으로 생명과 신화가 밀접하게 응축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여 현대에서의 인간이 살아가는 고통스러운 양상을 극명하게 그려 낸' 공로로 199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의 출생으로 문학 인생이 크게 바뀐다. 아이 문제로 인한 실의와 고통 속에서 방문한 히로시마에서 인류가 저지른 죄악의 실상과 그 속에서도 목숨을 부지하고 새로운 삶을 향해 재생의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하며 깊은 감동과 용기를 얻는다. 스물여덟 살짜리 아버지의 정신적 충격과 고뇌는 결국 아들과의 공생의 길을 선택한다. 평생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아들의 운명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여서 자신의 작가 인생에 명제로 삼는다.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의 생을 지탱해 준 근원적인 힘은 바로 장애가 있는 아들의 존재였다고 고백한다.

-세계문학 단편선, <오에 겐자부로>(749-750쪽)


지적 장애로 평생 자립할 가망이 없었던 아들 히카리는 아버지의 극진한 보살핌 덕에 현재 작곡가로의 삶을 살고 있다.

아버지 오에 겐자부로는 어린 히카리에게 CD에 녹음된 새소리를 자주 틀어주었다. 어느 날, 숲 속 길을 걷고 있었는데 히카리가 갑자기 "뜸부기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숲 속에서 나는 새소리를 듣고 CD로 들었던 새를 떠올렸던 것이었다. 너무나 기뻤던 오에 겐자부로는 11살 된 히카리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하고 이어서 작곡도 가르치게 되는데 지적 장애를 가진 히카리는 수준 높은 음악성을 발휘하게 된다. 히카리는 29살 때 <오에히카리의 음악>이라는 첫 음반을 시작으로 꾸준히 음반을 발매하며 당당한 음악가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노벨문학상 작가 오에겐자부로와 지적장애 아들>




한 분야에서 대가가 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다'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 길은 좌절과 절망 속에서 자신의 운명과 직면했을 때 발견하게 되는 단 하나의 길이다.

'꿀팁!'이 난무하는 시대, '이렇게 하면 무조건 된다.', '일 년 안에 되는데 손모가지를 건다.', '나는 어떻게 ㅇㅇ가 되었나.', '10가지 비밀 최초공개!' 대가들의 인생에는 이런 식의 자극적인 선동은 없다. 지름길도 없고 팁도 없다는 것, 자신의 운명을 바라보고 용기 있게 받아들이는 것.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 답답하고 지루한 말을 할 뿐이다. 인생을 바꾸는 꿀팁보다 답답하고 지루한 말이 반갑게 여겨질 때, 나만의 이유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