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by 오렌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설레는 마음과 함께
언제나 크리스마스 돌아오면 지난 추억을 생각해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지 않았다. 이맘때 즈음이면 들국화의 <또다시 크리스마스>가 흥얼거려진다.

건물 위를 올라가는 대형 산타 풍선, 쇼윈도 전체를 포장한듯한 커다란 빨간 리본, 자동으로 움직이면서 캐럴이 나오는 산타 인형, 주인장의 취향에 맞게 꾸민 각양각색의 크리스마스 트리들로 장식된 큰 길가의 가게들은 평소보다 특별하게 단장을 하고 눈길을 끈다.

"땡그랑, 땡그랑......"

지하철 역 한편에는 붉은 제복을 입은 구세군이 어김없이 등장해서 종소리를 울리고, 부쩍 많아진듯한 카페들과 베이커리의 유리문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주문받습니다.' 내지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주문이 완료되었습니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브랜드 아파트들의 공용정원에는 꼬마전구로 꾸민 형상들로 화려하게 반짝인다. 크리스마스도 빼빼로데이처럼 자본주의의 또 하나의 전시장 같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무렵이 되면 잊히지 않고 다시금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십여 년 전, 유치원 교사로 아이들을 만날 때의 일이다. 세월이 흘러 구체적인 일화는 희미해졌지만 당시 유치원 교사들과 원장 선생님, 또 학부모들 사이에서 서서히 생긴 오해와 불신으로 반목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원장 선생님은 좋게 보면 아이들 밖에 모르는 분이셨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평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어른들이 힘들더라도 그 힘듦과 애씀으로 아이들이 잘 자란다'는 교육관을 가진 분이었다. 이론적으로는 백번 맞는 말씀이지만 현실에서 그 일이 실현되는 데에는 같이 일하는 동료 교사들과 학부모와의 공감과 소통이 필수적인 일인데, 아이들을 위해서 최고의 일을 하는데 반대 의견을 내거나 하면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고, 그런 일의 반복으로 교사들이 그만두거나 불만을 가진 채로 일을 하게 되어 시간이 갈수록 공기가 무거워지고 있던 차였다.


크리스마스 준비를 하면서 그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원장 선생님은 1년의 축제 중에 크리스마스가 아이들에게 가장 특별하고 마법적으로 기억되는 축제로 여기고 한 달 전부터 크고 작은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라 교사들은 아이들 개인의 일지 정리며 환경 장식이며 부모 면담이며...... 과중한 업무로 몸이 아픈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로 인해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힘든 상황이 생겼다. 몸이 힘들어지면 마음도 더 지쳐서 마음을 터놓는 교사들이 교실 구석에서, 건물 밖에서 불만을 얘기하는 모습들이 공공연하게 보였다. 낮에 아이들에게는 '이제 열밤만 자면 산타 할아버지가 오시겠네.', '이렇게 싸우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시겠지?' 하면서 기대를 갖게 하고, 겁도 먹게 하며 지내면서 정작 어른들의 마음속은 거짓된 에고로 단단하게 뭉쳐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들이 하원하자마자 지친 교사들이 잠시나마 차를 마시면서 쉬었다가 다시 잔업을 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원장 선생님은 어디 꽃시장에 가서 샀는지 천고가 2층 높이에 달하는 높은 천장에 닿을 만큼 커다란 전나무를 사서 일꾼들이 끙끙대며 조그만 유치원 출입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신발을 벗을 여가도 없어서 신은 신발에서 흙이 뚝뚝 떨어졌다. 선생님들은 표정 관리가 안될 만큼 굳은 얼굴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맞이했다. 원장 선생님은 작년에 사용했던 장식 상자들과 지금 막 시장에 들러서 사온 새로운 장식들을 쏟아내며 '너무 예쁘죠?',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연신 감탄하며 장식들을 들여다보았다. 원장 선생님 본인도 밖에서 힘들게 다니시면서 정말 많은 일들을 하셨다. 원장 선생님은 '어른들의 힘듦으로, 그 힘듦을 이겨내는 힘으로 아이들이 잘 자란다'는 자신의 소신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대형 트리 장식에, 각자 맡은 아이들 일지 정리에...... 쌓인 업무에 두려움을 느낀 교사들은 '오늘 밤샘해야겠다.'는 둥, '정말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는 둥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사정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일도 없지만, 각자의 힘겨움이 누적되고 시야를 가려서 동료의 마음이나 생각을 헤아릴 수 있는 여유가 전혀 없었다.


마침, 지나가던 학교 대표교사 선생님께서 유치원 선생님들이 수고한다고 간식을 사가지고 들어오시다가 유치원 선생님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작은 소리로 시작된 불만성토는 점차 볼륨이 커져서 문이 열리는 소리도 못 듣고 계속되었고, 결국 대표교사 선생님은 입구 구석에 서서 유치원 선생님들이 울리는 신문고를 그대로 듣게 되었다. 불만의 목소리는 누군가의 눈치로 잦아들었고, 대표교사 선생님은 얼어붙은 듯이 그 자리에 서서 무거운 공기 속에 이 한마디를 투척하셨다.


"선생님들, 수고 많으십니다. 그런데...... 이곳에 예수님이 오실까요?"


나는 해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시작되는 거리에서 십여 년도 더 지난 이 에피소드를 떠올린다.

당시에는 나도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불만의 당사자였으므로 나름의 입장이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누군가 개인의 잘잘못은 희미해지고 하나의 메시지만 점점 더 또렷해진다.


"이곳에 예수님이 오실까요?"


크리스마스의 메시지로 곧잘 사용되는 '임마누엘(Immanuel)'은 '임마누(Immanu)', '우리와 함께 있다.'와 '엘(El)', 하느님이 합쳐진 말로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신나는 캐럴을 틀고, 선물을 사고, 크리스마스 한정 케이크를 주문하면, 예수님이 우리 집에 오실까?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실까? 어떻게 하면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실까? 차분하게 생각해 보는 연말이 되었으면 한다.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설레는 마음과 함께

언제나 크리스마스 돌아오면 지난 추억을 생각해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사랑의 느낌과 함께

누구나 크리스마스 돌아오면 따스한 사랑을 찾지


거리에는 캐럴송이 울리고 괜스레 바빠지는 발걸음

이름 모를 골목에선 슬픔도 많지만

어디에나 소리 없이 사랑은 내리네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설레는 마음과 함께

언제나 크리스마스 돌아오면 지난 추억을 생각해


거리에는 캐럴송이 울리고 괜스레 바빠지는 발걸음

이름 모를 골목에선 슬픔도 많지만


어디에나 소리 없이 사랑은 내리네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들국화, <또다시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