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적인 나란 없고, 관계만이 존재한다

-카를로 로벨리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by 오렌


작년 연말에서 올해 연초에 걸쳐 카를로 로벨리의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읽었다.

이전에 소개되었던 카를로 로벨리 3부작 <모든 순간의 물리학>,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모두 구매해서 읽은 인연으로 신작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독후 한 줄 감상은 부제로 사용된 문구처럼 '기묘하고 아름다운 양자 물리학'이다.


일찌감치 날카로운 수식이 난무하는 수학과 물리를 멀리하고 안전한 그림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내가 뒤늦게 양자 물리학에 심취했던 계기는 역시 정신분석을 받으면서였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자신의 인생이 파마 전과 파마 후로 나뉜다고 말한 바 있다. 내 인생은 정신분석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할 수 있다.- 정신 분석을 받는 동안 꿈속에서 보인 이미지들은 일상적인 의식으로 보아 오고 생각해 온 이미지들의 경계를 허물고 한계를 넘어서는, 이 세상에서 본 적 없는 것들이었고, 그때까지 별로 관심이 없었던 SF영화나 판타지, 불교, 양자물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마침 이화여자대학교 나노과학연구원에서 주최하는 양자미술공모전이 있어서 참여하기도 했고, 한 번의 참여는 이후로 메일링 서비스로 관계망이 연결되어 양자 세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놓치지 않게 했다.


그로부터 수년간 양자물리학에 대한 여러 권의 관련 책을 읽고 강의를 들었어도 내 언어로 명료하게 설명하는 데는 자신이 없다. 그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듯이 '미시세계의 물리학',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새로운 지도'와 같이 세상에 대한 느낌이 조금 더 풍성해지고 선명해질 뿐이다. ('세상에 대한 느낌이 조금 더 풍성해지고 선명해진다'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진전이 아닌가?) 이럴 때면,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리처드 파인만의 말을 떠올리고는 안심을 하게 된다.


다른 양자물리학 책들도 훑어보았지만 카를로 로벨리의 언어로 된 양자물리학을 선택하게 된 것은 그의 책은 수식 없이 이해 가능하며 쉽고 간결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문장이 생동가 넘치고 아름답다!

특히 이번 책은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보다 더 와닿았다. 이중원 교수의 '감수의 글'에 따르면, '로벨리의 철학적 사유는 자연주의 철학의 바탕 위에 있으며 초기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인 나가르주나의 공 사상과 공명한다. 이는 독립된 실체의 존재를 부정하고, 모든 상호작용은 사건이며, 실재를 엮는 것은 이 가볍고 덧없는 사건인 것이다.' (242-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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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인식하게 된 개념은 관찰에 대한 부분이다. 최근 신경과학의 가장 흥미로운 발전 중 하나는 시각 시스템의 기능에 관한 연구로 지금까지 알고 있는 사실과 완전히 다른 뇌의 작동 방식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세상을 다른 각도로, 다른 초점으로, 다른 넓이와 깊이로 보게 하는 '기묘하고 아름다운' 로벨리의 문장들이다.


'멀리서 숲을 바라보면, 짙은 녹색의 벨벳이 보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벨벳이 갈라져 줄기, 가지, 잎사기가 됩니다. 나무껍질, 이끼, 벌레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무당벌레의 눈 하나하나에는 매우 정교한 세포 구조가 있고, 그 세포는 뉴런과 연결되어 무당벌레를 살게 합니다. 세포 하나하나는 도시이고, 각 단백질은 원자들로 이루어진 성이며, 각 원자핵 속에서는 양자역학의 지옥이 펼쳐져, 쿼크와 글루온이 소용돌이치고, 양자장이 들뜨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이 숲은 한 작은 행성의 작은 숲에 불과하고, 그 행성은 작은 항성 주위를 돌고 있고, 또 그 항성은 천억 개의 항성으로 이루어진 은하에 속해 있으며, 그 은하를 포함한 1조 개의 은하가 있는 우주는 무수히 많은 사건들로 가득합니다. 우주의 구석구석에는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실재의 층이 있습니다.

이 층들에서 우리는 규칙성을 인식할 수 있었고, 그 규칙성에서 우리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여 개별 층에 대한 일관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 각각은 근사치입니다. 실재는 여러 층으로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분화한 층위들과, 실재가 분리되면서 나타난 대상들은, 자연이 우리와 관계를 맺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개념이라고 부르는, 두뇌 속 물리적 사건들의 역동적 구성들 안에서 말입니다. 실재를 여러 층위로 구분하는 것은 우리가 실재와 상호작용하는 방식과 관계된 것이죠.'

'대부분의 신호는 눈에서 뇌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뇌에서 눈으로 이동합니다.

뇌는 이전에 일어난 일과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무언가가 보일 거라고 예상합니다. 뇌는 눈에 보일 것으로 예견되는 상을 만듭니다. 관찰된 주위의 이미지가 눈에서 뇌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예상하는 것과 불일치하는 정보만 전달되는 것이죠.' (218-219쪽)


'우리는 실제로 '관찰'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오해와 편견을 포함해)을 바탕으로 세상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무의식적으로 불일치를 탐지하여, 필요한 경우 수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보는 것은 외부를 재현한 모습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상하고,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정보로 수정한 것입니다. 관련된 입력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입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예상과 상충하는 입력입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서 자신의 눈에 비친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이폴리트 텐의 말을 빌리자면, "외부의 지각이란 외부 사물과 조화를 이루는 내면의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지각을 '환각'이라고 부르는 대신, 외부 지각을 '확인된 환각'이라고 불러야겠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예상한 것과 세상에서 수집할 수 있는 것 사이의 불일치를 찾습니다. 우리는 세계에 대한 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 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그것을 수정하려고 노력합니다. 인간의 모든 지식은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져 온 것이죠.

우리는 현실에 대한 우리의 정신적 지도, 개념적 구조를 업데이트하고 개선합니다. 우리가 가진 생각과 우리가 현실에서 얻은 것 사이의 불일치에 대처하기 위해, 그리하여 현실을 더욱더 잘 읽어내려고 하는 것이죠. 때로 그것은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작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예상에 의문을 제기하여, 우리가 세계를 생각하는 방식의 개념적 문법 자체를 건드리는 일이 되기도 하죠.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세계상을 업데이트합니다. 현실에 대해 생각하는 새로운 지도를, 세계를 조금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지도를 찾아냅니다. 이것이 바로 양자론입니다.' (226-229쪽)


'양자론은 내게 우리의 정신적 지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했습니다.

견고한 무언가에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다른 무언가가 열리고 우리는 더 멀리 볼 수 있게 됩니다. 바위처럼 단단해 보였던 실체가 녹아내리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부드럽게 흘러가는 덧없는 삶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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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읽은 이런 문장이 있다. '외부의 귀찮은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내 안의 판단력의 문제'라고.

이 책을 덮으면서 한동안 내 인생에서 별로 관심이 없었던 SF영화나 판타지, 불교, 양자물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죽도록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는데 일이 꼬이고 엉뚱한 곳에 와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 불안, 초조, 후회, 부조리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이었다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 관심이 없었거나 기회가 없어서 아직 모르고 있었던 세계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새로운 의미의 '관찰'이 가능해지고, 내가 알고 있는 세계와 있는 그대로의 실재 세계의 근사치를 줄여나갈 수 있으리라는 예견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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