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애니메이션 <위시>를 보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위시>를 보았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마법의 왕국 '로사스'에 사는 꿈 많은 주인공 '아샤'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꿈을 찾아주기 위해 마법사 '매그니피코 왕'을 찾아간다. 그리고, 왕국 사람들이 맡겨놓은 꿈을 가두어 두고 자신의 힘으로 활용하고 있는 왕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샤는 사람들의 꿈을 되찾기 위해 간절한 소원을 빌게 되고, 아샤의 부름에 대한 응답으로 험난한 여정을 함께할 '별'이 찾아온다. 별은 소원 별가루를 가진 별의 정령이다. <위시>는 선한 사람들의 꿈을 이용해서 자신의 힘으로 사용하는 사악한 마법사 왕으로부터 소망을 되찾으려는 아샤 일행의 용감한 분투기다.
<위시>는 어린이 대상의 애니메이션답게 권선징악의 구도를 취하고 있지만, 나는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마법의 왕국 로사스에서 사이비 종교단체의 심리 구조가 느껴졌다. 마법사 매그니피코 왕은 마법의 왕국 로사스를 건설하면서 이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땅이라고 했고, 그 말을 믿은 수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로사스로 이주한다. 그런데, 소원을 이루어주는 방식이 좀 이상하다. 로사스에서는 18세가 되면 왕에게 자신의 소원을 맡겨야 하고, 마법사인 왕이 한 달에 한 번 추첨을 하는 방식으로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어준다. 로사스 왕국의 사람들의 소원은 우리들의 소원과 같다. 마음속 깊이 간절하게 원하지만 이루지 못한 것이다. 왕에게 소원을 맡긴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을 잊어버리게 되고,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소원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게 된다.
이 대목에서 사이비 왕국과 교주, 그곳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의 심리상태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어떤 조건을 내걸고 그것을 위해 헌신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하지만, 그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맡기고 잊어버리게 되며, 결국 행복의 조건이 만들어진 곳에서 정작 자신이 원하는 실체는 기억하지 못하는 공허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의 극단적인 예로 사이비 종교를 말했지만, 우리 자신의 인생 또한 다르지 않다.
어딘가에서 꿈의 속성에 대한 적절한 비유를 들은 적이 있다. 젊을 때는 스포츠 카를 타고 싶지만 살 수 있는 돈이 없고, 그 꿈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버느라 나이를 먹었을 때는 살 수 있는 돈은 있지만 이미 스포츠 카를 사고 싶은 열정이 없다고.
애니메이션에서는 마법사 왕이 절대 악이고, 왕에게 자신의 소원을 바친 왕국의 사람들은 선하지만 힘이 없는 사람들로 나온다. 그러나 힘이 없어서 자신의 소원을 힘 있는 권력에게 바치고 그것을 잊어버리고는 자신의 소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힘 있는 왕이 언젠가는 이루어주리라고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과연 선한가?라는 현실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잘못된 정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예시로 자주 등장하는 플라톤의 말이 있다.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정치뿐만 아니라 직장이나 자신이 속한 작은 공동체 안에서도 그렇고, 자기 스스로의 유기체 안에서도 그렇다. 내 안에도 힘 있고 밝은 측면과 나약하고 어두운 측면이 존재한다. 나의 힘을 믿지 못하고 가볍게 여긴 대가는 플라톤의 말대로 나보다 못 한 자에게 지배당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느끼는 중요한 하나의 사실은 인생은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와 같다는 것이다. 포트럭 파티는 각자 한 가지씩 자신이 잘하는 음식을 만들어와서 나누어 먹는 공동식사를 뜻한다. 주최자 한 사람이 모든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다 준비하면 큰일이 되지만, 각자 한 가지씩만 준비하면 모두가 큰 힘 들이지 않고도 풍성한 음식을 먹게 되는 신기한 형태의 식사다. 힘들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진수성찬이 있다면 그것은 횡재가 아니라 덫일 것이다.
영화 <위시>를 보면서 악인으로 그려진 매그니피코 왕에 대한 분노보다 자신의 꿈을 바치고도 왕의 말만 믿고 속아서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막연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서 더 큰 분노가 일었다. 우리 삶에 크고 작은 저러한 악인이 등장하는 것 또한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나약한 정신을 깨우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우리 삶에 나타난 악인은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힘을 일깨우려는 반면교사가 아닐까? 진정한 선은 자신의 욕구를 분명히 아는 것,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 스스로의 역량을 알고 키워나가는 것... 아샤의 할아버지가 뒤늦게 자신의 꿈을 찾고 연습해서 연주하는 곡의 제목은 디즈니의 주제곡 '별에게 소원을(When you wish upon a star)'이다.
아래에 링크한 영상은 이 영화에 나오는 '별들에게 소원을'의 원곡으로 디즈니 명작 피노키오의 일부다.
별에게 소원을 빌 때
당신이 누구인지는 상관없어요
진심으로 바라는 소원은 어떤 것이든 이루어질 거예요
만약 당신의 진심이 꿈속에 있다면
어떤 소원도 지나치지 않아요
당신이 별에게 소원을 빌 때
꿈꾸는 이들이 그렇듯
운명은 친절하답니다.
운명은 가져다줘요.
비밀스러운 소원을 달콤하게 이룰 수 있도록
갑자기 친 번개처럼
운명은 걸어 들어와 당신을 지켜보지요
당신이 별에게 소원을 빌 때
당신의 꿈은 이루어집니다.
♪피노키오 OST. When you wish upon a star
https://www.youtube.com/watch?v=mWbBvQqmHeA
상상계인 애니메이션 속에서는 주인공 '아샤'가 악의 마법사와 싸워서 꿈들을 찾아주지만, 실재계인 현실에서는 내가 주인공이다. 내 꿈을 찾아줄 아샤는 없다. 스스로 자신의 꿈을 찾고 내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내가 주인공이 될 때, 소원을 이뤄줄 별이 찾아온다. <위시>의 주인공 아샤처럼 '별에게 소원을' 빌어보자. 간절하게, 용감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