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배우로 알고 있었던 박신양의 그림 전시회 소식을 보게 되었다.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반가운 마음이었다. '역시 이 사람은 소식이 뜸한 동안 어딘가에서 열정을 불사르며 무언가 또 해내서 세상에 내어 보이는구나.'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 것은 알지만 특별한 팬심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 한 사람에 대해서 뉴스, 그것도 썸네일만 보고도 금방 좋은 예감으로 와닿을 수 있었던 것일까? 확인된 건 아니지만 어디선가 듣은 바로는 사람은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에 대해 '좋다', '싫다'라고 하는 감정 전이가 2초 내에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 이후로 인상과 행동과 말과, 다양한 판단의 근거를 만들어내어 새롭게 반응하지만, 최초의 무의식적인 감정 전이는 과거에 중요하게 생각했던(좋아하고, 싫어했던) 대상에게 느꼈던 감정을 새로운 대상에게 옮겨서 생각하는 것이다.
박신양 님의 새 소식에 대해 내용을 알기도 전에 좋은 소식일 거라고 마음에서 먼저 맞이하게 된 전이 내용을 추적해 보면 이렇다. 이삼 년 전 SNS에서 스치듯이 54세 박신양의 수험표를 본 적이 있었다. 국립안동대학교 대학원 서양화전공으로 늦깎이 수험생이 된 사실을 인증한 것이었다. 막 50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나에게 그 소식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신선한 활력이 되기에 충분했다. 미술학도 박신양에 대한 소식을 마지막으로 그 존재를 잊고 있었는데, 조그만 사각 뉴스창에 나타났다. '전시회를 연다. 10년 동안 가끔씩 영화나 드라마를 찍기는 했지만,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고, 10년간 그린 그림 400여 점 중 131점을 <제4의 벽>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하면서 같은 이름의 책도 출간했다'는 알찬 소식이었다.
뉴스 창을 통해 대충 보이는 그림의 윤곽이나 색감만으로도 그간의 몰입과 열정이 느껴졌다. 미술 전시회와 책의 제목인 <제4의 벽>은 관객과 연극 무대를 구분하는 가상의 벽을 뜻하는 연극 용어라고 한다. 연극영화를 전공하고 스승을 찾기 위해 러시아로 연기 유학을 떠났던 그의 청춘기가 연상되었다. 알고리즘을 타고 들어간 또 다른 영상에서는 캔버스를 직접 만드는 목수 박신양을 볼 수 있었다. 캔버스를 직접 만드는 것에 대한 변론은 이렇다. 기성 캔버스는 너무 잘 만들어져 있어서 그림을 시작하기가 부담스러워서 처음부터 스스로 만들어서 그린다는 것이었다. (기억에 의존한 인용으로 정확한 워딩은 아님)
그 장면은 또 '언젠가, 어디선가' 본, 배우 박신양이 가구디자이너가 되었다는 기사를 떠오르게 했다. '언젠가, 어디선가'도 쓰다 보니 어렴풋이 연결이 된다. 그때의 나는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있는 일이 일치되지 못한 상태로 고된 육체노동을 하고 있었고, 카페에 앉아서 멍을 때리고 있다가 카페 한편에 놓여있던 잡지를 읽기 시작했고, 인테리어와 소품 등을 소개하는 잡지에서 목수 박신양을 만났던 것이었다. 그 기사는 대학에서 가구디자인을 전공하고 목공예 공방을 운영했던 20대의 내 모습을 소환했다.
목공 작업을 하던 당시에 모든 기력을 쏟아부어서 더는 미련이 없는 일이었기에 잘 정돈된 공구들이 비치된 멋진 박신양의 목공예 작업실을 보고도 부럽다거나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해본 입장에서 상당한 에너지가 드는 일을, 그것도 취미 수준이 아니라 본인의 브랜드를 낼 정도로 완성도 있게 표현해 내는 능력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한때 목공예를 직업으로 가진 적 있었던 입장에서 그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다른 일을 하면서 지쳐있던 어느 나른한 오후, 잡지 한 페이지에서 본 목수 박신양의 모습은 또 다른 탈피와 변태를 꿈꾸기에 충분했다.
배우, 목수, 수험생이었던 박신양은 세상에 수험표를 던진 것에 대한 결과물로 화가와 작가가 되어 그림 131점을 들고 나타났다. 박신양 님을 잘 알지도 못하고 큰 팬심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궤적에서 점프해서 일치를 이루는 대목이 몇 있는 것으로 감정 전이의 스파크를 튀겼다. 책을 펼쳤을 때, 목수, 화가, 작가 뒤에 숨겨져 있었던, 박신양 님과의 결정적인 공통점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당나귀'다.
내 삶에서 당나귀와의 인연은 또 이렇다. 동화 유리드미로 <브레멘 음악대>를 공연한 적이 있었고, 그때 내 역할이 당나귀였다. 브레멘 음악대에는 네 마리의 동물이 나온다. 당나귀, 개, 고양이, 닭이다. 당시 그 네 마리 동물의 역할을 할 네 명 중에 외형적으로 가장 당나귀에 가까웠던 나는 당나귀 역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긴 했지만, 당나귀의 속성과 됨됨이를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좋은 감정 전이보다 싫은 감정 전이가 있었던 것이다. 늘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걷고, 어리숙하고, 바보스러운 캐릭터로 나오며 결코 주인공은 못 되는 당나귀가 된 것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래도 당나귀답게 좋으나 싫으나 꿋꿋이 연습을 했고, 무대에 올렸을 때, 지도해 주신 선생님으로부터 다른 어떤 음악 작품에서도 받지 못한 칭찬을 받았다. '무대 밖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을 봤다. 무대 체질이다. "좋은 당나귀"였다.'
기쁨도 잠시, 무대의 불이 꺼지면서 당나귀는 내 인생에서 잊혔다. 그 이후에 꿈에서 거북이를 자주 만나긴 했지만 당나귀는 나오지 않았다. 아마 몇 번은 마주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의식에서 당나귀를 패배자같이 여겨서 내 안의 당나귀를 외면했을 가능성이 크다. 작가 박신양의 책 <제4의 벽>을 넘겼을 때, 마주했던 '당나귀'의 모습과 글은 내 안의 당나귀와 강렬하게 조우하게 했다. 잃어버린 나의 당나귀를 찾아준 예술가 박신양의 건승을 바란다. "좋은 당나귀"를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