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올해의 마지막 글이다. 지금까지 연재 브런치를 기획하고 쓰는 동안 기꺼운 마음으로 쓰는 날이 더 많긴 했지만, 초심을 잃고 의지를 발휘해서 겨우 쓴 날도 적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가득 차서 흘러넘치는 글이 아니라 긁어모으고 짜냈던 글도 있었다. 한 번은 아침에 깨었을 때, '오늘은 또 어떻게 쓰나?' 고민을 하다가 일요일인 것을 알아차리고 좋아했던 적도 있었다.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하겠다고 펼친 판이면서! 이런 우여곡절과 희로애락이 있어서 풍성해지고 성장하고 애정이 생기는 것도 같다.
오늘 아침에 깨었을 때, 일요일이라 연재 브런치를 쓰는 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제 도서관에서 읽은 책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벌써 쑤-욱! 자라나 있었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아쉬움이다. 건강한 중독이다. 그래서 약속한 요일이 아니더라도 아낌없이 쓰기로 했다.
류시화 작가의 새 산문집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를 올해 마지막 책으로 읽기 시작했고, 1/3 정도 읽었다. 한꺼번에 다 읽기가 아까워서 조금씩 생각하면서 읽고 싶고, 읽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감정을 느꼈던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일요일 아침인데도 벌떡 일어나 컴퓨터를 켜게 했다.
오늘 쓰는 내용 말고도 2024년 연초에도 더 인용하고 따로 또 요약할 것이 틀림없지만, 당장에 올라오는 감정을 쓰는 것도 의미가 있기에 연애편지 쓰는 기분으로 따끈따끈한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
지금까지 짧지 않은 인생의 여정에서 류시화 작가가 세상에 던진 글들을 나이스 캐치! 해서 읽으며 인생의 모퉁이마다에서 중요한 결정을 했던 경험에 대한 글을 며칠 전에 쓴 적이 있다. 일면식도 없는 작가의 한마디에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거듭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보면서 류시화 작가가 이 책에서 쓴 단어인 '소울그룹'이란 것에 대해 즐거운 상상을 해보았다. 현실에서 잘 아는 사람이 아니어도, 포레스트 검프에 나오는 깃털처럼 바람에 날리다가 문득 내 앞에 떨어진 글귀 하나에 결단과 실행과 설렘과 자족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에 대해, 그 위대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깃털은 틀림없이 천사의 깃털일 것이라고.
류시화 작가의 글은 독특하고 놀랍고 즐겁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에피소드들로 흡인력 있게 몰아간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부담감을 주지 않고도 스스로 고쳐 앉고 반성하고 퇴색한 내 안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한다. 좋았던 문구를 뽑아 적자면 너무 길어질 것이기에 몇 개만 추려본다.
'내가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이 상상 밖의 인물이면 더 좋겠다. 불행과 행복의 내력이든, 상실과 성취의 경험이든 뜻밖의 이야기를 당신이 가지고 오기를 바란다. 우리는 두려움에 맞서 불가능한 사랑에 빠지고, 준비하지 않았던 일을 경험하기 위해 이 행성을 여행 중이니까. 가슴에 믿음을 품고 별에 닿기 위해.'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18쪽)
'당신이 상상하는 지구 행성이 아닐 거야. 당신이 생각하는 인생이 아닐 거야. 그래서 하루하루가 난해하면서도 설레고 감동적일 거야. 자신의 관념과 기준 속에 갇혀 있지만 않는다면, 당신이 상상한 것보다 더 좋은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 눈을 크게 뜬다면."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20쪽)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마다 자신의 아름다움도 동시에 발견한다. (......) 세상의 아름다운 것을 목격하는 순간 사람은 노예가 되기를 멈춘다. 삶이 힘든 시기일수록 마음속에 아름다운 어떤 것을 품고 다녀야 한다. 그 아름다운이 우리를 구원한다.'
-가지에서 미소 짓지 않는 꽃은 시든 꽃 (36쪽)
'천국의 열매는 구한다고 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준비가 되었을 때 그것이 그대를 찾아올 것이다.'
-가지에서 미소 짓지 않는 꽃은 시든 꽃 (37쪽)
2023년 연초에 가졌던 담대한 포부와 달리 무너져 내린 일이 있었다. 그 일을 불행한 일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웬걸? 계획대로의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다면 이토록 은밀하고 즐거운 글쓰기의 자유로운 오솔길은 모르고 질주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내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망한 일로 인해 더 다양한 지층을 살게 되었고, 약자가 됨으로써 약자를 이해하게 되었고,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 좋고 재미난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올해 보았던 가장 마음에 남는 책을 곱씹고, 올해 보았던 가장 좋았던 영화(올해라고 하기엔 민망하지만 <포레스트 검프>다)를 떠올리며 올해를 보내주고, 새해를 맞이하려고 한다.
끝으로 써본 이 편지 형식의 짧은 글은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에 수록된 아름다운 글 <당신도 누군가를 꽃 피어나게 할 수 있다>에 쓰인 문장들을 읽다가 떠오른 마음이 있어서 그 문장들을 사용해서 써본 것이다. 알게 모르게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람들에게, 류시화 작가의 유려하고 아름다운 문장의 힘을 빌어, 포레스트 검프에 나오는 천사의 깃털처럼 바람에 실어 보낸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평화를 빕니다......
Dear. 내가 쉽게 놓아주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구차한 변명 같지만......
저는 수많은 물리적인 이별을 겪고도 제대로 된 정신적인 애도를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