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글쓰기의 마음가짐

-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를 읽고 2

by 오렌


류시화 작가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를 2/3 정도 읽었고, 해서 오늘의 <기승전글>은 작년인 어제에 이어 '-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를 읽고 2'로 이어가려고 한다. 수요일, 그러니까 1월 3일은 '-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를 읽고 3'을 씀으로써 3부작으로 마무리하는 것으로.

그만큼, 읽으면서 올라오고 겹쳐지고 연결되는 생각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실은 이 책을 사면서 같이 구입해서 동시에 읽고 있는 카를로 로벨리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후기도 감정이 식기 전에 쓰고 싶어서 갈등을 했지만, 좀 더 차분해지기로 했다. '좀 더 차분해지기'는 올해의 중요한 목표이자 인생 전체의 목표이기도 하다.


작년에 쓴 또 다른 브런치북 <프랭크를 찾아서> 1화 제목은 <너는 왜 네가 꿈꾸는 대로 하지 않니?>, 부제는 <나는 왜 내가 꿈꾸는 대로 하지 않았을까?>이다. 그 질문들에 대한 직접적인 답은 하지 않고 수많은 사건과 생각들을 나열해 놓았는데, 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으로 지금에 와서 생각나는 말은 '차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 놀라운 설명이 되어있다.

'모모는 베포가 대답할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었고, 또 그의 말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모모는 베포가 진실이 아닌 이야기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베포는, 모든 불행은 의도적인, 혹은 의도하지 않은 수많은 거짓말, 그러니까 단지 급하게 서두르거나 철저하지 못해서 저지르게 되는 수많은 거짓말에서 생겨난다고 믿고 있었다.' (49쪽)'


베포가 말한 '급하게 서두르거나 철저하지 못해서 저지르게 되는 수많은 거짓말'이 바로 내가 꿈꾸는 대로 하지 않았던 이유이고, 그걸 바로잡기 위해서 좀 더 차분해져야만 한다.


20240101_072908.jpg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에 수록된 <봄의 제전>을 읽고 생각을 하다가 새해 새 아침 글쓰기에서 새로운 루틴을 시도하게 되었다. 내가 새롭게 시도하게 된 아침 글쓰기 루틴을 말하기 전에 본문을 먼저 소개한다.

'그대가 하는 일이 단순히 취미 생활이 아니라면, 그 일을 그대의 삶 자체로 여긴다면 그대가 매일 하는 의식은 무엇인가? 나의 경우는 매일 아침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내 시집을 열어 내가 쓴 시를 한 편씩 읽는다. 지난 30년 동안 이것을 건너뛴 날이 거의 없다. 산문을 쓰든, 번역일을 하든, 다른 시인의 시를 모아서 엮든, 나 자신이 시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내 안의 시인에 연결되기 위해.' (137쪽)


평생을 시인으로, 전업 작가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살아온 시인이 자신이 시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자신 안의 시인에 연결되기 위해 매일 아침 과거의 자신이 쓴 시를 읽기를 30년 동안 건너뛴 날이 없다는 고백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나도 내 안의 작가와 연결되기 위해, 보다 의식적인 행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었던 어제 쓴 글을 읽는 것도 좋지만, 과거에 쓴 글을 읽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브런치 플랫폼 기능 중에 '통계'에 보면 '글 랭킹'이라는 것이 있는데, 거기에 올라온 글을 한편 읽고 오늘의 글을 시작하는 것이다. 브런치 플랫폼이나 검색 등으로 유입되어서 읽은 글들의 제목이 순위별로 나열되어 있는데, 글이 쌓이면서 오래전에 쓴 글의 제목들이 보인다. 필요한 단어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내 글을 찾았을 가능성이 더 많겠지만, 여하튼 누군가가 읽은,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서 미처 잡아내지 못한 틀린 맞춤법을 고치기도 하고, 단지 얼마 전이었는데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많이 엉성하고 성의가 없었다는 반성도 하게 되고, 반대로 글솜씨는 투박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진정성이 느껴지는 글에서는 초심을 기억하게도 한다.


dont-give-up-3403779_1280.jpg



'작가'라는 이름은 나에게 여전히 가슴 설레는 직업이다. 아주 오랜 세월 무의식 속에 버려놓은 이름이고, 한 번씩 발에 걸리더라도 외면한 이름이고, 내것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틈만 나면 멍하게 또는 절절히 동경한 이름이기도 하다. 직업이란 것이 그 일로 돈을 벌어서 생활을 하는 일을 뜻한다면 아직 작가가 아니고, 글을 쓰는 순간의 정체성을 말한다면 이미 작가인 중첩 상태에 놓여있다.


삼 년 전에 몰입해서 본 드라마 <나빌레라>가 생각난다. 평생을 우체부로 정년퇴직을 한 주인공이 오랜 세월 마음속에 간직했던 발레를 하는 이야기다. 가족들이 모두 당황하고 반대하는 발레를 손자뻘 되는 강사에게 배우며 꿋꿋이, 즐겁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주인공 덕출은 치매에 걸리고 만다. 자신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발레 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하는 독백은 내 오랜 꿈을 의식의 표면 위에 또렷하게 떠오르게 했다.

“덕출아, 나중에 기억을 다 잃어도 이것만은 진짜 안 잊었으면 좋겠는데, 심덕출 네가 발레 하는 사람이었다는 거, 꿈이 있었다는 거, 잊지 마. 알겠지?”


평생을 이런저런 많은 일들을 하면서 돈을 벌고 살아오다가 중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서야 의식적으로 또렷하게 떠올린 이름, 작가를 향하는 새해 새 아침, 매일 할 의식으로 과거에 내가 쓴 글을 한편 읽고 오늘의 글을 쓰는 것으로 결정한다.

류시화 작가는 <봄의 제전>에서 쓰고 있다.

'시인이며 소설가인 찰스 부코스키는 "네가 사랑하는 것을 찾으라. 그리고 죽을 만큼 그것에 빠져 보라."라고 했다. 영혼의 작업에 다만 집중하라는 의미이다. 불꽃을 계속 태우는 것이 삶이다. 생을 불태우려면 자신이 불타는 것을 견뎌야 한다.' (137쪽)


또 다음의 글은 류시화 작가님 페이스북에서 발췌한 것이다.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도 페소아는 썼다. 우리에게는 이런 깨달음이 필요하다.

위대해지려면 전부가 돼라.

너의 어떤 부분도 과장하거나 제외하지 말고.

모든 일에 있어서 너의 전체가 돼라.

최소한의 행동에도 너의 전부를 담으라.

그렇게 모든 호수마다에서 보름달은 빛난다.

저 높은 곳에 살아 있으면서.'

read-3355287_1280.jpg



어제 읽은 부분에서 꼭 소개하고 싶은 재미난 대목이 있어서 한 꼭지만 더 쓰고 마치려 한다.

류시화 작가님이 토끼가 된 이 사진은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에 수록된 유일한 사진이다. 책에는 흑백으로 조그맣게 실렸는데, 혹시 좀 더 큰 칼라 사진이 있나 싶어서 검색을 해보다가 류시화 작가님 페이스북에 있는 원본을 찾게 되었고, 빌려왔다.


이 사진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러하다. 작가님의 집필실이 있는 제주도의 귤밭에 누군가 집에서 키우다 '귀찮으니까 내다 버린' 토끼가 새끼를 뱄다는 것이다. 선글라스에 장발을 한 작가님의 범상치 않은 모습에 놀란 토끼를 보고, 어미 토끼가 놀라서 배 속의 새끼가 잘못되면 큰 일이라고 생각했던 작가는 토끼를 안심시키는 묘책을 생각해 낸다. 바로 자신이 토끼로 변신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어렵사리 토끼모자를 구입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고 한다. 그 증거가 바로 아래의 사진이다. 작가는 토끼 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으며, 토끼들은 이상한 토끼와 더불어 살면서 사계절 맛있고 상큼한 풀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해피엔딩 스토리다.


행복한 토끼 되기가 실린 글 <부서진 가슴에서 야생화가 피어난다>의 마지막 대목이다.

'나는 인간이고, 토끼이며, 토끼모자를 쓰고 눈 쌓인 한라산을 바라볼 때는 산 그 자체이고, 돌집 앞 바닷가에서는 흰 파도 그 자체가 된다.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순간이 나 자신이 된다. 존재는 거대하고 불가해한 수수께끼다. 우리는 그렇게 매 순간 대상에서 대상으로, 하나의 신비에서 또 다른 신비로 걸어 들어간다.' (104쪽)

모모나는 왜 내가 꿈꾸는 대로 하지 않았을까

143337481_3315791948525868_4921591785539180214_n.jpg




copyright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