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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Oct 01. 2016

불꽃

-내 안의 열정을 기억하는 글쓰기

 

 칼 융은 '기억, 꿈, 사상' 에서 어린 시절에 꾼 꿈에대해 적어놓았다. 

 '어느 알 수 없는 장소에서의 밤이었다. 나는 강한 바람을 안고 힘겹게 느릿느릿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는 언제 꺼질지 모를 작은 불꽃을 손으로 동그랗게 감쌌다. 모든 것이 이 작은 불꽃을 살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우리 모두는 내면에 타오르고 있는 불꽃이 있다.
 활활 타오르기도 하고 꺼질듯 흔들리기도 하지만 누구나 힘차게 또는 약하게 뛰고 있는 심장처럼, 흐르고 있는 피처럼 존재하고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고 춤을 추었다. 그러면서 먹고 사는 것도 순탄치 않은데 왜 그런 것들을 하느냐고 가까운 사람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었다. 그 때는 답답한 가슴으로 '그냥 내가 하고 싶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성인이 되었는데도 책임감 없고 이기적이고 철없는 부류의 인간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주위 사람들과의 갈등을 겪거나 내 재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는 나 조차도 나를 믿지 못하고 포기하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이제서야 왜 그토록 고차적 세계에 대한 갈망과 표현에의 집착이 있었는지 알아가고 있다.
 불꽃, 불꽃이다. 나를 따뜻하게 하고 세상을 비추는 불꽃이 되고 싶은 것이다. 

 4년 가까이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무의식 세계를 여행했다. 매일 같이 건져올려지는 수많았던 꿈들을 그 당시에 선생님께서 분석해 주셨고, 나도 내 나름대로 느꼈지만 평생 동안 그 신비한 상징들에 대해 음미하게 될 것이다.
 푸른 드레스를 입은 여신도, 교황도, 붉은 불사조도... 온갖 크고 높고 영광스러운 상징들과 역겹고 비열한 똥통 같은 꿈들이 혼재되어 나타났다. 그 모든 성과 속이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더럽고 추한 것들이 빠지기를 바랬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닮아가길 바랬다. 

 분석을 종료할 어느 시점에 나는 아주 연약한 성냥개비 인간을 꿈꾸었다. 내가 그 성냥개비 인간의 손을 잡고 걷는데 부러질듯 약한 다리로 성큼 성큼 높은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꿈들 중 성냥개비 인간의 꿈을 가장 잊지 못한다. 아니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융이 꺼질듯한 불꽃을 손으로 감쌌던 것 처럼 나도 내 안의 성냥개비 인간이 쓰러지지 않고 힘을 내어 계속 걸어가기를. 걸어가는 그 힘으로 점점 더 강하고 단단해지기를 소망한다.
 내 안에 가득해질 사랑이 차고 넘쳐서 세상 속으로 흐르기를 바란다. 
 지금은 어디 즈음일까. 힘내고 힘내고 힘내자.


-여섯 번 째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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