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서는 아폴론적 원리와 헤르메스적 원리의 대립을 다윗왕과 골리앗의 싸움 이야기에 기록해 놓았다. (사무엘기 상 17장)
다윗도 목동이다. *그는 약하고 가볍고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강하고 거대한 것을 이긴다. 그는 골리앗, 즉 당당한 자, 당시의 투사들 가운데 가장 큰 자, 가장 유명한 자에게 승리를 거둔다.
*동일한 사태가 <노자>에서는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 (78장)
다윗은 상대방에게 익숙하지 않은 한 새로운 전투차원을 창조해냄으로써 상대방에게 승리를 거둔다. 그의 무기는 다른 형태의 대결을 위한 것, 동종의 적수를 위한 것이다.
약자는 강자에게 행동의 차원을 규정함으로써 강자를 이긴다. 그는 그만이 통달해 있는 세계로 상대방을 끌어들인다.
다윗 신화는 이를 무릿매(투석기)라는 무기로 형상화시켜 놓았다. 뱀 지팡이와 마찬가지로 무릿매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도구이다. 이 도구를 보고 사람들은 어떠한 힘이 그 속에 숨어 있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물론 누구나 숙련된 무릿매 사용 기법을 배울 수는 없다. 어떤 사람에겐 그 기법이 주어지지만 어떤 사람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어떤 것에 의해서도 극복될 수 없는 이 불가사의한 구별은 헤르메스적 원리에 속한다. 하지만 그것이 주어진 자는 마치 제 물을 만난 것처럼 그 안에서 움직인다.
상대방은 바로 이것을 오인한다. 눈에 띄지도 않는 물건이 그처럼 치명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상대방은 믿지 않는다. 이 "치명성"을 다윗 신화는 생사를 건 싸움을 통해 표현한다.
가장 고유한 것이 인간과 능력, 행동과 할 수 있음, 의도와 상황의 이러한 일치에 이르면 그것은 인간을 무적으로 만든다. 이런 식으로 어딘가에 숙달해 있는 것 (가장 고유한 것 속에 있는 것), 바로 그것이 헤르메틱이다.
헤르메스적 원리는 지배 권력이 생각지도 않은 바로 그런 곳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뛰어난 것이다. 그것이 나타나는 곳에서 그것은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그것은 승리를 자신의 원리로 삼지 않는다. 즉 그것은 승리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것은 승리에 대해 승리한다. 여기에 승리자의 강함보다 위대한 그의 강함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약한 자의 승리에 열광한다.
하찮은 쥐 요리사 레미의 프랑스 최고 요리사 성공기를 다룬 픽사 애니메이션 <라따뚜이>, 버려지고 잊혀진 장난감들이 힘을 합쳐 주인을 도우며 친구란 무엇인가를 일깨워주는 <토이스토리>, 선하고 지혜로운 마음과 아름다움의 힘으로 역경을 극복하는 <신데렐라>, <백설공주>, <용감한 꼬마 재봉사>, <행운아 한스>, <황금 물고기>... 그림형제가 수집한 동화들, 삼라만상의 변화와 변신을 다룬 온갖 종류의 신화들, 모든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약하고 하찮은 자가 눈에 띄지 않는 자신의 존재방식으로부터, 할 수 있음을 통하여, 승리를 이끌어 낸다.
삶의 가장자리에서 침묵할 때도, 더는 못할 것 같이 약해져 있을 때도, 우리 내면의 주인공은 재기를 꿈꾼다. 다시 한번 영광의 순간을, 한 번도 되어본 적 없는 강하고 아름답고 빛을 발하는 주인공이기를 바란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바로 침묵 속에서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약한 자신의 존재방식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내 안의 무겁고 고집스러운 거인을 이기는 작고 가볍고 재빠른, 나만의 무릿매를 발견하는 일이다.
이 연재 브런치북 <헤르메틱>은 헤르메틱에 대한 필사로 이어가면서 헤르메틱에 대한 묵상을 하고 있다.
헤르메스는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꾼 수많은 꿈들 중 유일하게 보인 신의 이름이다.
오랫동안 헤르메스라는 키워드로 찾아 헤매면서 헤르메틱이라는 정신적 지향, 작가적 고향에 도달했다.
헤르메틱은 어둠 속에서의 비상이다. 헤르메스적 근본 경험은 붕괴와 근원적 도약, 발견, 건너감이다.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찾아내고, 끝까지 살아남으며, 스스로 힘을 갖는 존재 방식이다.
헤르메틱에 대해서 가장 잘 정리되어 있는 책이라고 생각되는 H. 롬바흐의 저서 <아폴론적 세계와 헤르메스적 세계 -현실에 관한 사유의 전환: 철학적 헤르메틱>의 내용을 필사. 요약하는 것으로 '존재의 헤르메틱', '예술 작품의 헤르메틱'에 대해 소개하고 정리해 나가려고 한다.
이 정리본이 차후에 어떤 형상으로 드러나든 그 뼈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