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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Oct 29. 2024

움직임이 곧 생각이다

-<고독력수프> Episode #2





10년 만에 다시 간 호텔에서 재미있는 일들의 연속이다. 나는 그동안 그곳을 빠져나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돌아갔고, 몇몇 동료들은 계속 그 일을 하고 있었다. 어디 갔다 왔냐면서 반가워하는 모습들이 마치 이산가족 상봉과도 같이 시끌벅적하다. 이곳에서 만난 동료들은 꼭 초등학교 때 친구들 같다. 만나자마자 바로 말 놓고 친구 먹고, 언니야! 하고 부르는 식이다. 몸을 부대끼면서 일을 하다 보니 빨리 친해진다. 고향 사람들 같고 인간적이다.



타임루프물처럼 같은 경험이 반복되고 있는 기분이다. 과거의 동료들이 살이 더 찌거나 빠진 모습으로, 안경을 쓰거나 주름이 생긴 모습으로, 입사 동기였던 동료가 주임이 되어 있는 모습으로, 늘 반복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긴장하고 흥분하고 불만에 가득 차 있고 여전히 화가 나 있는 모습으로, 내 삶에 재등장했다. 이러한 반복을 깨닫지 못한다면 또 다른 10년, 또 그다음 10년...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늙어가고 죽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또 어떠랴. 그조차도 수고로움을 인정받아 다음 챕터가 열릴 것이다. 좀 더 진화된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고. 끝없는 모험만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같은 경험이 반복되긴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기에 예전과 같이 시지프의 형벌처럼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달라진 것, 그것은 바로 의식이다. 내가 왜 다시 이곳에 왔는지, 지금은 어디쯤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이러고 있는지, 10년 전에 비해 한점 의혹도 없이 명확해졌다. 배 고프다며 간식을 달고 다니는 입과 구부정한 자세에 팔자걸음으로 걷는 볼썽사나운 걸음걸이를 바라보는 나의 눈이 과거와 달라졌고, 늘 불만에 가득 차서 부조리함을 토로하는 말들과 억울함에 흥분하는 동료들의 넋두리를 듣는 나의 귀가 예전과 달라졌다. 그때는 그런 모습들이 보기 싫고 나는 저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들의 보기 싫은 모습에서 내가 보인다. 그리고 연민을 느낀다. 



죄인이라는 단어. 형제, 자매라는 호칭,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간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가 터져 나온다. 한때 저항을 느꼈던 표현들이 동료들의 애환 속에서 너무나 명료하게 떠오른다. 그들은 진정 나의 자매이고, 나의 거울이고, 이 일은 곧 나의 기도가 된다.



길을 알기에 두려운 마음이 없고 편안하다. 이곳에서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 말없이 소처럼 묵묵하게 일하는 것이 기본몸이 건강하고 동작이 빠를 것, 내 이야기를 최대한 하지 않고 그들의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고개를 끄덕일 것. 업무적으로는 3D 즉,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일을 잘 처리하면 편하게 지낼 수 있다. 힘들다는 생각에, 트라우마에 고착되지만 않으면 된다. 세상에 안 힘든 일은 없다. 힘들게 일해서 겨우 먹고사는 일이 가장 평화로운 일이라는 마인드를 탑재하면 된다. 그런 시간이 쌓이면 생기는 것이 많아진다. 가만히 있어도 밥 사준다는 예쁜 언니들이 줄을 선다.



일을 시작해서 마칠 때까지 계속 달린다. 10년이 지났지만 몸에 길이 만들어져 있어서 따로 복기하거나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일이 몸에 착! 붙는 기분이 좋다. 헐떡이는 내 숨소리만 들리는 순간이 좋다.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살아있음으로써 다음으로 갈 수 있다. 



내 삶에서 눈을 뜨기 힘들 만큼, 속옷이 다 젖을 만큼, 옷에서 흰 소금이 생길 만큼, 땀을 흘리며 한 일, 끝나고 나면 육체와 정신이 다시 결합할 때까지 잠깐 멍한 상태로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할 만큼 에테릭을 모두 소진한 일은 두 가지다. 바로 유리드미와 호텔 메이드 일이다. 하나는 성스럽고 또 하나는 속된 일 같이 보일 수도 있지만, 두 일은 매우 비슷하다. 움직임에 관련되어 있다. 



얼핏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메이저 그룹과 마이너 그룹은 많은 것들이 다르다. 힘을 쓰는 방법을 알고 있고, 다음 동작으로 가는 트렌지션이 물흐릇듯 자연스럽다. 동시동작이 가능하고, 틈새 시간과 공간, 공기를 활용할 수 있다. 의존과 도움의 차이를 몸으로 알고 있다. 그 모든 치밀함은 생각을 하면 안 되고, 몸속에 만들어진 길에서 나와야 한다. 그 길을 따라 생각 없이 움직일 때 가장 완벽한 퍼포먼스가 된다.



나는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




Don't Look Back In Anger




'혼자인 것이 슬프면 외로움이고, 혼자인 것이 즐거우면 고독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의 말에 영감을 받아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운 고독을 연마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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