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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Nov 02. 2024

재신체화

-<고독력수프> Episode #3




저녁의 낮잠

요즘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방전된 휴대폰을 충전하듯이 완전히 방전된 몸으로 멍 때리며 앉아있다가 기절하듯이 잠이 든다. 두세 시간가량 자고 나면 저절로 깨어나서 해야 할 준비들을 하고 다시 자는 패턴이 만들어졌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2킬로그램이 빠졌고,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기절하듯이 잠들 만큼 모든 에너지를 다 사용하는 하루하루가 고되다기보다는 신체와 정신 건강에 유용하고, 무엇보다 '옳다'는 생각이 견고해지고 있다.




척추

척추는 유리드미를 할 때 하이오 선생님께서 특별히 한국말을 배우셔서 강조하셨던 신체 부위였다. 외국인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발음이었을 텐데 굳이 한국어로 "쳑츄~"라고 애써 말씀하시면서 상체를 꼿꼿이 펴는 동작을 해 보이셨던 모습을 자주 떠올리는 요즘이다. 목부터 엉덩이까지 연결되고 관통하여 신체가 바르게 직립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척추는 얼마나 중요한지!




고강도의 육체노동

을 하는 데 있어서 건강한 신체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손톱을 조금만 짧게 깎아도 통증을 느끼게 되고, 살이 찌면 허리에 무리가 가고 호흡이 가빠진다. 아무리 힘든 날이었어도, 힘든 날일 수록, 퇴근길에 헬스장에 들러서 운동을 해주어야만 한다. 반드시! 언젠가는 밥은 먹어도 운동은 안하는 날이 있었다면, 지금은 밥은 걸러도 운동은 거르지 않고 있다. 하루 종일 움직이고 또 무슨 운동이냐고? 많이 사용한 근육은 사용한 대로, 사용하지 않은 근육은 사용하지 않은 대로 반대의 힘을 가해서 풀어주고 강화해야만 다음 날을 위한 준비가 된다. 




새로운 날들을 이루는 요소

들을 돌아본다.

다음 마디를 칠 건반 위에 손을 미리 가져다 놓는 것과 같이 다음 동선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손을 갖기 위한 반복 훈련

수고한 발을 위한 시원한 알로에 마사지

꼭 필요한 것을 말하는 입을 위한 침묵

손발의 수고를 덜어주는 총기 어린 눈

손발과 등뼈와 좌골과 신경과 시력과 총체적인 신체의 아우성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공기와 뜨겁고 차가운 속성

거룩함을 붙들기 위한 읽기

중심을 기억하기 위한 쓰기

신체에 활력을 주는 음식

고요한 아침을 여는 커피 한 잔

할 일을 마친 후에 먹는 달콤한 디저트

비발디 사계 여름 2악장의 긴장감과 속도감

아침 출근길 올려다보는 하늘 

층간 이동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바라보는 바다

88층 유리창에 맺힌 가을 빗방울이 건네는 인사

모든 것을 리셋시키고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해주는 은혜로운 잠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몸을 새롭게 만들고, 기억을 아름답게 편집하고, 모든 것을 다 주시는 하느님의 약속을 굳건하게 믿고 있다. 이른바 재신체화 작업을 하고 있다. 새로운 날들은 새로운 몸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Lauv - Never Not



'혼자인 것이 슬프면 외로움이고, 혼자인 것이 즐거우면 고독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의 말에 영감을 받아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운 고독을 연마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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