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들은 자신의 직업이 메이드라고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호텔 매니지먼트 정도로 말한다. 출퇴근 시간이 정확하고 휴무나 복지도 좋고 일하는 만큼 벌어가는 등의 조건으로 내적인 직업 만족도는 높은 편이지만 세상이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심지어 남편이나 자식에게 까지 비밀로 하는 사람들도 꽤 된다. 모든 사람들이 힘들게 일하는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고, 남의 직업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으면 좋으련만.
아침에 일을 시작하기 위해 모여있는 대기 시간이나 근무 후 퇴근을 기다리는 시간에 다양한 장르의 잡담들이 오간다. 계약서를 쓴다는 사람이 있으면 '노예 계약서'라고 하거나 우리의 신분에 대해 '하녀'라거나 '불가촉천민'이라며 시시덕거리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교묘한 편법으로 자기 재산이 상당하면서도 나랏돈으로 먹고사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가 곧잘 등장한다. 그러면서 잇따르는 말은 그 사람들은 머리가 좋아서 몸이 편하게 살고, 우리는 머리가 나빠서 몸이 고생이란다. 일정한 시간 내에 다양한 변수를 가진 혼돈의 객실에 질서를 창조해 내는, 우리들의 아폴론적인 힘을 존중하면 좋으련만.
한 명 한 명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보면 매일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같은 성격의 말을 다르게 바꾸어서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A언니의 경우, 늘 자랑으로 일관된다. 아들을 카이스트 공학박사로 키워낸 어머니로서의, 남편이 출퇴근시켜 주는 사랑받는 아내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 까지면 딱 좋으련만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남편, 자식 다 잘 되어 있고, 인생을 잘 살았다는 후한 자기 평가에 그런 자신을 시기하는 동료들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는 게 문제다. 또 그 까지면 나으련만 이렇게 힘든 육체노동을 하면서 휴일 텃밭에 농사지은 채소로 갖가지 반찬을 만들어와서 동료들에게 나누어준다. 자신을 시기하는 사람에게 까지 말이다. A언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 인정욕구에 목말라 있는 것 같다.
B언니도 자부심이 대단하다. 스스로에 대해 말하기를 '애교 많지, 일 잘하지, 돈 잘 벌지, 자식들 잘 키워놨지, 남편한테 사랑받지... 인생 별거 있나? 그저 자기 식구들하고 맛있는 거 먹고, 좋은데 여행 다니고 그게 최고!' 라는 자기 철학에 한치의 의혹도 없다. B언니 역시 딱 그까지였으면 좋으련만 항상 2절이 문제다. 누구누구는 남편한테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해서 늘 회사 사람들 끼고 다니면서 분별없이 말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평가로부터 시작해서 여기는 이혼한 사람들이 많고, 요즘 세상에 이혼이 흠이 아니긴 하지만, 확실히 가족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람들과 가정을 지키지 못한 결핍을 가진 사람들은 차이가 난다며 두 세계를 갈라놓는 발언으로 이어진다. B언니의 논리에 따르면 나는 가정을 지키지 못한 결핍을 가진 사람 군에 속하는데, 커밍아웃을 하지 않고 자칭 행복한 가정을 소유한 사랑받는 집단의 사람들과 같이 다니고 있어서 왠지 무언가를 속이고 있는 것처럼 불편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언니는 C언니인데, 이 언니가 오늘 사람들에게 해준 이야기는 이러한 것들이다. 한송이에 삼만 원짜리 송이버섯 세 송이를 넣고 라면을 끓여 먹은 아들을 신나게 깠고, 행복한 집단이 강조하는 '여기서 일하려면 강해야 한다', '강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에 대해, '왜 강해야 되는데? 같은 일 하면서 서로서로 맞춰서 하면 되지?' 하는 무게감 있는 멘트를 날려서 평화로운 분위기를 지켜주었다. 또, 베딩한 후 모양을 다듬는 나이프 손잡이 때문에 손이 아프다는 말들을 하면서 손잡이를 개조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는데, C언니가 내 나이프를 달라고 하더니 스펀지와 테이프로 손잡이를 개조해 가지고 왔다.
외부에서 우리를 보는 시선을 의식하면서 직업을 속이기까지 하면서도, 내적으로는 이 안에서 자신의 입지를 유지하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인지를 자신의 입으로 끝없이 증명하고, 일을 잘 못하거나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 아웃된 사람들 이야기를 가장 신나게 한다. 이런 일들은 단지 내가 몸 담고 있는 일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를 보면 나름 전문가라는 사람들까지 나서서 '이런 사람을 멀리하라', '이런 사람은 당장 손절하라', '사랑받지 못한 어머니는 결코 사랑할 수 없다' 등의 자극적인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며 소외되고 무능력한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자신의 내집단으로부터 아웃시키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그만큼 세상이 불안하고 살기 힘들다는 증빙이기도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병약하고 무능한 사람은 아기일 때 살해하는 문화가 있기도 했고, 성인식이라는 명목으로 용기를 시험해 통과의례를 하고 거기에서 살아남지 못한 사람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서열이 있는 동물 집단도 그렇고, 식물도 그렇다. 가지 치고, 솎아내어 영양분이 좋은 열매로 가도록 일부의 죽음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생존 모드에 익숙해진 인간들은 무엇이든 잘하기만 하면 인정받고 살아남는 방식을 당연하게 여기고, 기술을 배우고 선택에 주저함이 없다.
많이 바쁜 날 출근하면 '우리 선수 왔다!'며 짝꿍 언니가 기뻐한다. '선수'라는 호칭은 빠르고 정확하게 맡은 바 임무를 처리해 내는, 그리하여 돈벌이에 유능함이 담보된 환영의 이름이다. 몸이 아프거나 집단에서 요구하는 일처리에 무능하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은 소외되고 결국 아웃된다.
언젠가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았을 더 젊고 예뻤을 때,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삶의 목표인듯 맹목적으로 달렸던 적이 있었다.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런 사람의 아내가 되었다면, 그런 자녀를 키워낸 어머니였다면 나는 과연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심에 차 있었을까? 그런 자부심이 바람직하기만 한 것일까? 인생이 제 식구들끼리 맛있는 거 먹고, 좋은데 여행 가는 게 최고일까? 정말로 인생이 별거 없을까?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재단되는 돈벌이로 사람을 평가하는 곳에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내 뜻대로 승승장구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절망과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뜨려 끝없는 겸손을 가르쳐 주시는 내 주님의 반전 드라마 덕분에 나는 '아무것도 아닌 자'의 포지션을 선택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자'로 살아남아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유도가 높은 삶을 살게 되었다. 불가촉천민들이 모여 사는 하녀 학교에서 이 세상에 온 목적, 사랑이 무엇인지 잘 배우고 떠나고 싶다.
내가 너를 사랑함이라
'혼자인 것이 슬프면 외로움이고, 혼자인 것이 즐거우면 고독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의 말에 영감을 받아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운 고독을 연마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