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축제로 성수기를 맞이한 주말의 객실은 혼돈 그 자체였다. 동료들의 모습에서 손목 보호대, 무릎 보호대 같은 의료 내지 스포츠 보조 도구들이 눈에 띄고, 락커에서 파스 냄새가 진동하기도 한다. 일정한 시간 내에 많은 양의 물리적인 더티 dirty를 처리하기 위해 빠른 속도와 근력이 요구되는 날이고, 각자 평소에 쌓아둔 실력을 발휘하는 날이다. 이런 날의 일은 세포 깊숙한 곳에서 공연이나 체육 대회를 했던 과거의 시공간이 연결된다.
유리드미를 할 때, 예측 가능한 적정한 선에서 연습을 할 때도 있었지만, 때때로 '지옥 훈련'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만큼 혹독한 수업을 하기도 했고, 몇몇 하드 트레이닝은 장기기억으로 보존되어 삶에서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되살아나 '나는 할 수 있다!'는 근기를 다잡게 한다. 복잡한 동선을 빠르게 움직이다 보면 서로 부딪혀서 넘어지거나 다치는 일도 흔히 있었고, 그럴 때면 벤치에서 잠깐 쉬게 한 다음,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고 곧바로 투입되었다. 이른바 부상 투혼. 처음 그런 순간을 목격했을 때는 이게 뭐라고 이렇게 까지 해야 되나? 처절한 상황이 온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졸업 공연을 앞두고 솔로 작품을 다듬는 과정 중 한 레슨 시간이었다. 도입 부분부터 "어게인 again!"이 반복되었고, 어떤 점이 안되어서 자꾸 다시 하라고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은 채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하고 있던 중이었다. 관중석에서 선생님들과 동료들이 오직 나의 동작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없는 어게인을 하다 보니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나도 모르게 뒤로 벌러덩 나자빠지고 말았다. 동기들은 크게 놀랐지만, 지도하시던 하이오 선생님은 담담하게 물으셨다. '할 수 있겠냐?'고. 넘어져서 아픈 것보다 넘어졌다는 충격에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나서는 '할 수 있다!'고 대답하고는 벤치로 나가지 않고 곧바로 다시 시작했다. '어게인!' 없이, 중단 없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논스톱으로, 물 흐르듯이, 런쓰루 run through 했다.
끝나자마자 선생님께서 약간 흥분하신 듯이 동기들에게 말씀하셨다. '보았느냐?' 그 말씀은 '달라진 것이 보였다'는 의미였다. 이어서 설명하시기를 '넘어지고 나서 긴장이 해소된 새로운 힘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했기 때문에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런가? 당사자인 나는 그 당시에는 그 설명이 그다지 와닿지는 않았지만, 다른 때 보다 훨씬 자유롭게, 훨씬 공기와 함께 움직인 기분이었고, 평소보다 무대가 작게 느껴진 기분을 선명하게 느꼈다. 그날의 녹턴은 마치 소나기가 쏟아지고 나서 거짓말처럼 맑게 갠 푸른 하늘 같았고, 오랫동안 맘 졸이며 흠모하던 사람에게서 답을 받은 기분이었다.
또 한 번의 잊을 수 없는 하드 트레이닝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날이었다. 그날따라 에어컨도 못 켜게 하고, 창문도 못 열게 하는 가운데, 평소와 다르게 쉬는 시간도 없이 몇 시간을 달리게 했다. 그날 발밑에 깔린 곡은 베토벤 작품이었다. 늦은 오후부터 시작된 레슨은 창밖이 어두워질 때까지, 목에 맨 손수건이 흠뻑 젖도록, 유리창이 우리들의 호흡 때문에 하얗게 바뀌어 캄캄한 밤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두려움이 느껴질 만큼, 안 되는 파트의 '어게인!'이 수없이 계속되었다.
결국 지옥 훈련이 끝이 났고, 하이오 선생님은 마무리 멘트로 '머치 베터 much better!, 웰던 weldone! 하드 트레이닝이었다. 에테릭을 다 썼다.'며 그날의 연습을 치하하셨다. 선생님께서 나가시고 나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연습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쓰러진 것이었는지, 기절이었는지, 낮잠이었는지, 명상이었는지, 잠시 혼절했다가 깨어나서 옷을 갈아입는데, 유리드미 드레스 목과 가슴 부분이 하얗게 변해있었고, 이게 뭔가? 싶어서 자세히 보니 소금이 아닌가! 우리 몸의 체액의 농도를 유지시키는 중요한 소금 성분이 눈으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하이오 선생님께서 죽음의 위협이 느껴질 만큼 강행하셨던 유리드미 수업, '머치 베터 much better!, 웰던 weldone! 하드 트레이닝. 에테릭의 소진'으로 우리가 이루기를 바라신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베토벤 음악의 강렬함 속에서, 이유도 모른 채, 죽도록 달린 지옥 훈련은 라이프 포스 life force, 즉 삶의 힘을 단련했던 시간이었다고 기억하고 회상한다. 내 인생의 베토벤,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피아노 소나타 1번 4악장을 들으며 죽는 게 아닐까 싶도록 뜨겁게 달렸던 순간을 생각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 '머치 베터 much better!, 웰던 weldone! 하드 트레이닝이었다. 에테릭을 다 썼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며.
Barenboim - Beethoven piano sonata op 2 no 1, movement 4
'혼자인 것이 슬프면 외로움이고, 혼자인 것이 즐거우면 고독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의 말에 영감을 받아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운 고독을 연마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