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력수프> Episode #5
어제, 한 동료가 퇴근 시간 10분 전에 옷을 갈아입고 사무실 앞을 서성거린 모양이었고, 그 모습을 본 과장이 주임에게 혹독한 질책을 한 모양이었고, 질책을 받은 주임으로부터 앞으로 퇴근 시간 전에 옷을 갈아입고 사내를 다니지 말라는 공지가 퇴근 직전에 전달되어 동료들의 거친 감정에 불을 붙였다. 사람들은 10분 전에 집에 간 것도 아니고, 옷 갈아입은 것 가지고 그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중들의 웅성거림은 처음 메이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10년 전의 한 장면으로 오버랩되었다. 퇴근 1분 전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가 '당장 올라가라!'는 질책을 받은 한 동료가 모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그 길로 퇴사해 버린 것이었다.
비슷한 사례가 이어서 떠올랐다. 직원 식당에서 배식하시는 분이 식권을 냈냐고 물어봤을 뿐인데 식판을 집어던지면서 밥을 안 먹고 나가버린 동료가 있었다. 식판만 집어던진 것이 아니라 유니폼도 집어던지고 그 길로 퇴사해 버려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냥 '냈는데요.' 한마디만 하면 될 일을 왜 그토록 감정에 불이 붙었던 것일까?
'하녀들은 열쇠 구멍으로 엿보는 습관에 젖어 있어서 자기들이 실제로 목격하는 좁은 범위의 하찮은 사실을 기준 삼아 어마어마하게, 더군다나 그릇되게 전체를 추측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카프카의 말이다. 메이드 일을 하면서 뿐 아니라 존경받는 직업군에 속해 있을 때에도 사람들은 잠을 잘 때를 제외하고는 정상적인 상태이거나 사로잡힌 상태이거나 둘 중 하나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 같다.
정상적인 상태를 다른 말로 이성적인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고, 사로잡힌 상태를 다른 말로 감정에 휘둘린 상태, 즉 정신이 분열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분열되지 않고, 일치를 이룬 온전히 맑은 정신으로 낮시간을 얼마나 점유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다시, 10분 일찍 옷을 갈아입고 사무실 앞에서 발각된 부주의한 한 사람 때문에 전체가 퇴근 전에 혹독한 질책을 받은 어제의 상황을 복기해 본다. 그 순간 나는 모욕을 당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집단 광기와도 같은 불평불만에 휩쓸리지 않기위해 마음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체계, 경계, 각, 보이는 것, 질서로 지탱되는 구조 안에서, 그것이 필요해서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지켜야 할 약속을 어긴 것이고, 과장이라는 사람은 그런 위반 사항을 지적하는 것이 자신의 업무이고, 큰 일도 아닌 것에 지적당한 것에 모욕감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알겠습니다. 앞으로 안 그러겠습니다.' 하면 그만인 일이다.
그런 일이 있는 날, 나는 투명 망토를 입고 군중 속에서 사라진다. 이건 판타지적인 설정이고, 실제에서는 사람들이 단체로 타고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피해서 조금 늦게 가거나 축지법으로 빨리 걸어서 어쨌거나 필사적으로 군중에서 이탈해서 혼자되기를 성공시킨다. 퇴근 시간의 맑은 공기를 불평불만의 감정으로 오염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부조리하고 모순적이며 이해가 가지 않거나 받아들이기 힘들더라도 때때로 상황을 견디면서 적응해 나갈 필요도 있다. 혼자되기에 성공한 나는 아무도 없는 길모퉁이에서 '나는 너희들과 달라!'를 외친다. '거리의 파토스'가 필요한 순간이다.
일찍이 니체는 '거리의 파토스'das Pathos der Distanz가 필요하다고 했다. 거리의 파토스란 천한 것들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열정, "나는 저들과는 다르다"는 마음가짐으로 탁월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가리킨다. 타인을 경멸하고 '나는 너희들과 달라'라는 거리감을 버팀목 삼아 자기 존중감을 지키는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니체는 그것이 '초인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말했으며, 지금까지의 인류 문화의 고귀한 유산은 이러한 열정에 의해서 태어나고 유지되어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모든 저급한 자, 열등한 자, 범속한 자, 천민적인 자들에 비해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행위를 '좋은 것'으로서, 즉 최상의 것으로 느끼고 평가하는 고귀한 자, 강한 자, 드높은 자, 고매한 자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거리의 파토스에서 가치를 창조하고 그것의 이름을 새길 권리를 비로소 획득하게 되었다.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박찬국 옮김, 아카넷, p.34
귀족사회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위계와 가치 면에서 여러 단계가 존재한다고 믿으며 어떠한 의미에서든 노예제를 필요로 한다. 지배계급이 신문들 사이의 차이를 뼛속까지 느끼면서 예속된 자들과 도구에 해당하는 자들을 항상 감시하고 천시하며 끊임없이 복종과 명령 그리고 억압과 배제를 연마하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거리의 파토스가 없었다면, 저 다른 보다 신비한 파토스, 즉 영혼 자체 내에서 거리를 항상 새롭게 확대하려고 하는 열망, 보다 드높고 보다 희귀하며 보다 멀고 보다 넓으며 보다 포괄적인 상태를 형성하려는 열망은 전혀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박찬국 옮김, 아카넷, p.357
10년 전 메이드였던 나는 나에게 메이드 일을 전수해준 사수, 멘토 언니를 존경해마지 않았다. <보노보노>에 나오는 야옹이형을 연상시키는 멋진 멘토 언니에게 글을 쓴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고, 나의 커밍아웃에 멘토 언니는 '우리는 다 똑같아. 메이드가 잘나 봤자 메이드지. 메이드는 그림자일 뿐이야.'라는 뜻밖의 충고로 공중에 발이 뜬 내 날개를 꺾어 바닥으로 내동댕이 쳤다. 충격적이었던 그 사건으로 목적이 다른 사람에게 굳이 속의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웠고, 괜한 말을 함으로 인해 불필요한 시기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10년 전 메이드였던 나는 동료 메이드들에게 거리의 파토스를 가지며 초인으로 향하고자 하였다. 지금도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긴 하지만, 그때와는 양상이 좀 다르다. 그때는 다른 것만을 의식했다면, 지금은 다름을 의식함과 동시에 같음도 함께 의식하고 있다. 내가 글을 쓴다는 말 따위는 결코 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과 똑같고, 그림자일 뿐이다. 때로는. 그리고, 나는 그들과 다르고 특별한 존재다. 때로는. 나를 이해해줄 것 같은 누군가를 붙들고 나의 진실을 말하고자 애타던 나는 이제 없다. 진실이란 삶 그 자체이므로.
Charlie Puth - Left Right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