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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Nov 16. 2024

나의 요정 친구

-<고독력수프> Episode #7




아침 미팅 시간, 정비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이나 특이사항을 전달하고, 한 달에 한번 미션 mission이 나온다. 미션이라는 이름 하에 매일 똑같이 하는 기본 정비 외에 특별히 지정된 구역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들어왔던 미션이라는 이름은 삶의 주요한 임무나 목표와 같이 장대한 느낌이었는데, 이곳에서의 미션이란 발코니 유리를 닦는다든가, 해바라기 샤워기를 닦는 등의 과제를 지칭하니 좀 어색했다. 하기야 나쁜 일에 잔머리 쓰면서 세상에 유해한 일을 하는 것 보다야 지구의 한 모퉁이를 반짝반짝하게 쓸고 닦는 구체적인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훨씬 무해하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지 않나?



메이드 하면 흔히 전통적인 스커트 차림의 유니폼에 흰 앞치마를 두른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우리들의 유니폼은 올블랙으로 운동선수 같은 스타일이다. 땀이 잘 배출되는 기능성 소재의 검은색 티셔츠에 검은색 바지, 검은색 신발, 모든 게 흑화 되어 있다. 여기에 손목이나 무릎에 보호대라도 하면 모습만 보면 영락없이 배구나 핸드볼 선수 같아 보인다. 아침에 각자의 카트를 밀고 우르르 출발하는 모습을 보면 일개미나 일벌이 떠오르지만, 나는 개미나 벌보다 조금 더 동화적이고 아름답게 요정에 비유하고 싶다. 그래야 무리 중의 한 명인 나 또한 개미나 벌이 아닌 요정이 될 수 있으니까.



요정은 옛이야기 속에 나오는 작고 귀엽고 날아다니며,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착한 주인공을 돕는 역할로 알려져 있지만, 사람들이 간과하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바로 힘들고 거친 일을 척척 해내는 것이다. 불평불만 없이, 주인공의 해피엔딩을 위해, 오직 기쁨으로.



"나 오늘 핫도그 가져왔어. 나중에 먹자."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봐 복화술로 얘기하는 엄청 웃긴 h언니는 요리 요정이다. 이렇게 힘든 일을 하고 무슨 힘으로 그렇게 하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집에서 맛있는 간식을 직접 만들어와서 나누어준다. 빼빼로데이에는 빨간 상자와 파란 상자를 내밀며 "어떤 거 할래?" 물어봤다. 빨간 상자를 고르자 "그게 더 맛있는 건데." 하며 짓궂게 웃는다. 아웃이 없어서 대기하고 있는 아침 시간, h언니는 주로 요리 숏츠를 본다. 보다가 나한테 폰을 내밀며 새로운 레시피를 알려주기도 하고, 김밥 싸는 숏츠를 보다가 일미, 스팸, 땡고추 중 어떤 걸 좋아하냐며 내일 싸 오겠다고 고르라고 한다. 요리 요정이랑 친구가 된 이후로 입사 직후 2킬로 그램 빠진 것에서 멈추고 말았다.



h언니는 요리뿐 아니라 욕도 엄청 잘한다. 문제 상황이 생기면 엄청 흥분하면서 "싸우자, 싸우러 가자, 싸울 일 있으면 언니 불러라, 내 서열 6위다 아이가, 짬 된다 아이가, 내가 말할게." 하면서 큰 눈이 튀어나올 듯이 부라리면서 C로 시작하는 저렴한 욕을 시원하게 뱉어댄다. 그러면서 "니는 욕하지 마라. 욕 배우지 말고 나쁜 거 배우지 마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러고는 5분도 채 안되어서 CCTV 피해서 간식 먹는 법이나 복화술로 욕하는 법 같은 걸 알려준다.



메이드 요정들은 인류를 위한 대단한 미션이 아닌, 냄비나 욕조를 반짝반짝하게 닦는 것과 같이 사소한 미션을 받지만, 매일, 모두 다 해내고 유쾌하게 헤어진다. 아침 방이 시작되면 마지막 방이 끝날 때까지 마라톤을 하듯이 끊임없이 달린다. 움직임 속에서 혼돈을 질서로 바꾸어 놓는 땀과 노동 속에서 사소한 문제들을 헤쳐나가는 영혼은 기쁨으로 가득 차 환호한다. 



일을 하는 동안 나의 미션은 부조리 속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불안하거나 초조해하지 않고, 시시때때로 나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주님을 찬미하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변기를 닦으면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옥상달빛 (OKDAL) - 달리기




'혼자인 것이 슬프면 외로움이고, 혼자인 것이 즐거우면 고독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의 말에 영감을 받아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운 고독을 연마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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