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력수프 > Episode#. 8
층간을 이동하는 엘리베이터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중 2악장이 나오고, 객실 벨링 신호음으로 쇼팽의 녹턴이, 건조기 종료음으로 슈만의 즐거운 농부가 나온다. 녹턴은 유리드미 졸업 공연 때 나에게 필요하다고 하시며 선생님들이 정해주신 솔로 작품이었고, 비창은 3학년 무렵 솔로 작품으로 내가 선택한 곡이고, 즐거운 농부는 처음 솔로 작품을 할 때 하고 싶은 음악을 골라오라고 했을 때, 악보가 한 장짜리이고 반복되는 구간이 많아서 쉬울 것 같아서 골랐는데, 어려워서 반려된 곡이다.
현재의 공간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로 오랜 기억 속 공간이 소환되었다. 한때, 정말 하고 싶은 유리드미를 하지 못하고 청소 일을 하면서 무대에서 들었던 음악을 어디에선가 들을 때면, 언젠가 다시 유리드미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올라오면서 헛헛한 마음이 들곤 했다면, 지금은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유리드미를 할 수 있게될지 모르지만, 다시 하게된다면 예전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즐겁게 하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할 수 없다하더라도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며, 그만큼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을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다. 지금은 이동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벨링을 하고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 일을 마치고 걸레를 건조하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찰나가 무엇보다 소중하다.
딸이 1년 동안 웹툰을 공부하다가 다시 음악을 하겠다고 한다. 이랬다 저랬다해서 뭐라고 할까 봐 단단히 준비를 해서 말을 시작했다. 음악을 하든, 미술을 하든, 알바를 하든, 1년 동안 하다가 다른 일을 하든, 10년을 하다가 다른 일을 하든, 뭘 하든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변화의 마음이 생긴 자체가 성장의 징후이고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해보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진짜 잘해보겠다고 묻지도 않은 계획들을 자세하게 풀어놓는다.
음악이, 미술이, 공부가, 청소가, 알바가, 다른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이고, 과정이다. 나는 인생이 성공이랄 것도, 실패랄 것도 없고, 모든 것이 과정이며, 환상이고, 꿈이며, 게임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무대에 올랐을 때, 레이스에 섰을 때, 진지하고 치열하게 임하기. 무대가 끝났을 때, 레이스가 끝났을 때, 끝났음을 알면 되는 것. 애정하는 영화 중 하나인 연애의 목적 OST. 가사처럼. 나는 인생이 가득 차고 치솟고 무모하고 과감하고 엄청나고 불같고 황홀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아직도. 여전히.
그토록 가득 찬 그토록 치솟는
그토록 무모한 그토록 과감한 우리의 사랑
그토록 엄청난 그토록 불같은 우리의 사랑
끝없이 황홀한 우리의 인생
그토록 엄청난 그토록 불같은 우리의 사랑
끝없이 황홀한 우리의 인생
랄라라 랄라라. 랄라라 랄 라라랄랄 라라...
랄라라 랄라라 랄라라 랄라라 랄랄 라라...
그토록 엄청난 그토록 불같은 우리의 사랑
끝없이 황홀한 우리의 인생
이병우, 장재형 - 연애의 목적 (Arts of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