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객실 정비를 했다. 거실에는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 가장 큰 K룸에는 이중섭의 그림이, Q룸에는 몬드리안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VVIP 룸과 일반 객실은 모든 구조와 요소가 별다를 것 없이 기본은 똑같다. 출입문이 있고 현관이 있고 거실과 주방, 방들과 욕실들로 이루어진 유닛에 타올이나 어메니티, 비누, 생수, 커피, 차 등이 세팅된다. 더 비싸고 고급스러운 객실일수록 더 크고 더 많고 조금 더 복잡해지는 객실들의 변주. 어떤 주제를 바탕으로, 선율, 리듬, 화성 따위를 여러 가지로 변형하여 연주하는. 그것뿐이다.
이곳은 기본 외에 능력에 따라 추가로 룸을 더 받아서 정비하는 방식이고, 따라서 개별적으로 수입이 다르다. 2인 1조로 움직이는 시스템이고, 6개월에 한 번씩 짝을 바꾼다. 지난주에는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벤트가 있었다. 다음에 짝을 하고 싶은 동료의 이름을 적어서 제출하는 비밀 투표가 이루어졌다. 하루의 긴 시간 동안 같이 움직이면서 호흡을 맞춰야 하는 짝, 매일의 컨디션과 수입에 영향을 미치는 짝은 매우 민감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고, 짝과 잘 맞아서 몇 년씩 같은 짝과 일하는 사람도 있고, 맞는 짝을 만나지 못해서 계속 바꾸거나, 서로 혹은 한 사람이 안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별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해서 같은 짝과 하고 있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부부나 자식, 부모, 친구, 직장 상사... 다른 인간 관계도 그런 것처럼.
사람들이 좋아해서 인기가 많은 사람도 있고, 아무도 같이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과 싫어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명확하게 정리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과 행동의 통제력이 좋고, 맡은 바 일을 잘 수행하는 등 생존력이 높은 사람이다. 생존력이 높은 사람을 선택해서 같이 생존력을 높여보겠다는 의지와 욕망들이 새로운 짝을 선택하기 위해 펄떡인다.
유리드미를 할 때, 처음에는 그룹의 뒤에서 앞사람을 따라 하는 식으로 시작한다. 나의 의지와 욕망이 원하는 것을 밖에서 보고 안으로 가져오는 과정이다. 그러다 음악이 익숙해지고 발로 그리는 폼 form과 팔로 표현하는 톤 tone이 점차 내 안에서 자리 잡고 질서 지워져 가면서 앞사람을 보지 않고 내 안에 집중하게 된다. 그룹으로 움직이면서 기본 동작들을 숙지하고 나면 작품을 할 때는 각 작품에 따라 필요한 인원대로 정확한 포지셔닝을 한다. 여덟 명, 다섯 명, 세명... 여러 곡을 여러 형식으로 연습을 하고, 졸업을 위해서는 최종적으로 솔로를 해야 한다. 솔로를 소화한다는 것은 폼이나 톤을 잊어버렸을 때 컨닝할 앞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컨트롤한다는 것, 폼과 톤이 온전히 내 안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처음 솔로를 할 때, 무대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고 두려웠다. 우주 미아가 된 기분이랄까. 바깥에 의존하고 있던 정신이 온전히 나 자신을 믿지 못함이었다. 솔로를 한다는 것은 온전히 나 자신을 믿는 것이다. 두려움을 자신감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오직 반복과 연습뿐이다. 반복된 연습으로 외부의 동경을 내 안으로 옮겨놓는 것이다.
솔로가 되고 나서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형식이 바로 듀엣이다. 듀엣이 가능하려면 각자 자신의 세계가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협화음이 생기고 힘의 불균형이 생기고 결국 한쪽으로 기울어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
불완전한 인간이 결핍을 채우기 위해 생존에 유리한 짝을 선택하는 리얼한 현장에서 웃음 뒤에 숨겨진 민감한 촉들을 느끼며 참 재미있고 몹시도 피곤했다. 퇴근하면서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닮은. 스카이블루였던 아침의 하늘은 푸르시안 블루와 오렌지의 보색 대비를 이루며 장렬하게 죽어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고, 그들의 숙소를 정비하는 것으로 나의 평화로운 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이기적이고 추한 것들이 생을 만들고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나무가 사라져 간 산길
주인 없는 바다
그래도 좋지 아니한가
내 마음대로 되는 세상
밤이 오면 싸워왔던 기억
일기를 쓸 만한 노트와
연필이 생기지 않았나
내 마음대로 그린 세상
우린 노래해 더 나아질 거야
우린 추억해 부질없이 지난날들
바보같이 지난날들
그래도 너는 좋지 아니한가
바람에 흐를 세월 속에
우리 같이 있지 않나
이렇게 우린 웃기지 않는가
울고 있었다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세상에 우린 태어났으니까
저 푸른 하늘 구름 위에
독수리 높이 날고
카우보이 세상을 삼키려 하고
총성은 이어지네
TV 속에 싸워 이긴 전사
일기 쓰고 있는 나의 천사
도화지에 그려질 모습
그녀가 그려갈 세상
우린 노래해 더 나아질 거야
우린 추억해 부질없이 지난날들
바보같이 지난날들
그래도 우린 좋지 아니한가
강물에 넘칠 눈물 속에
우리 같이 있지 않나
이렇게 우린 웃기지 않는가
울고 있었다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세상이 멋지지 않았는가
크라잉넛 _ 좋지 아니한가
'혼자인 것이 슬프면 외로움이고, 혼자인 것이 즐거우면 고독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의 말에 영감을 받아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운 고독을 연마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