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력수프> Episode #10
룸 정비를 하는 동안 다양한 사건 사고를 맞딱들인다. 하룻밤 사이에 한 객실에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술병이 나오는 현장을 목격한다든가, 몇 명 되지도 않는 어린이 투숙객들이 객실 전체를 초토화시켜 놓는다든가,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떤 고객들은 각 방의 이불을 바꿔놓아서 뜻하지 않은 이불 맞추기 게임에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든가 하는 사소한 문제들이다. 체크인 시간이 다가와서 러시콜이 오는 상황에서 꼬인 드라이기 줄을 제대로 감고, 물이 새는 샤워기 오더를 내리고, 놓친 머리카락이 하나라도 있는지 매의 눈으로 체크해야 하는데, 이는 크든 작든 나에게 맡겨진 소임을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와 이에 필요한 차분한 감정과 정확한 판단력을 연마할 수 있는 멋진 순간이다.
각각 1시간 가까이의 아침 준비 시간과 저녁 정리 시간에 많은 사건 사고를 목격하게 된다. 룸에서 맞딱들이게 되는 문제들은 물리적인 흔적에서 기인한다면, 이 시간에 목격하게 되는 문제들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과 감정을 통해 만나게 된다.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오해를 받았다든가, 했는데 안 했다고 지적을 받았다든가 하는 오류들로 자신의 명예나 가치가 실추된 것에 격분하고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크고 작은 감정들과 말들의 총알이 날아다닌다. 이런 일들을 지켜보면 당장이라도 큰일이 날 것 같지만 근무가 시작되거나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아무리 대단한 일도 그것으로 끝나고 모두들 각자의 방으로, 또는 집으로 흩어진다. 그 모습을 보고 듣고 관찰하고 있노라면 인간의 희로애락, 오욕칠정이 칼날 같고 불같으며 덧없고 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녀들은 열쇠 구멍으로 엿보는 습관에 젖어 있어서 자기들이 실제로 목격하는 좁은 범위의 하찮은 사실을 기준 삼아 어마어마하게, 더군다나 그릇되게 추측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들을 들으면서 자주 떠올리게 되는 카프카의 말이다. 이 말을 떠올리고 나서 곧 이어 마음의 균형을 잡기위해 떠올리는 말도 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좌우된다.' 정신의학자로 나치 유태인 수용소에서 겪은 고통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으로 써내고 의미 치료(로고세러피)를 창시한 빅터 프랭클이 한 말이다.
아침, 저녁 준비와 정리 시간에 다양한 쓰레기 같은 감정들이 난무하는 곳에서 잠깐이나마 자유의 공기를 만끽할 수 있는 나만의 아지트를 찾았다. 락커 캐비닛들이 놓여있는 곳 한쪽 끝에 50센티미터 정도의 틈이 있는데, 그 속에 들어가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다. 어릴 때 엄마한테 혼나고 나서 책상 밑에 들어가서 나는 영도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가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서글프게 울고 나서는 다시 찾은 활력으로 놀러 나갔듯이, 기성 제품인 락커의 사이즈가 공간에 딱 맞지 않아서 생긴 50센티미터 공간에 숨어 들어가 모든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차단된 잠깐의 순간을 만끽한 후 새로운 힘을 얻어서 나오곤 한다. 이곳은 아무에게도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매일 다른 맛의 김밥을 싸다 주는 요리 요정 친구에게도.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좋은 친구로 남기 위해 더 가까워지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겠다고 한다. 나는 감히 할 수 없는 성숙한 생각이다. 두려움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라고 한다. 모든 자극으로부터 적절하게 반응하는 성숙한 인격이 되어 자유와 힘을 획득하고 성장과 행복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 지극히 당연한 말이 실제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50센티 아지트에 숨어 들어서 아주 잠깐이지만 좋은 사람 생각을 했다. 두려운가? 복잡한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또 같은 대단원에 봉착했다.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이 세상에 왔고, 그것을 배우기 위해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Toy -좋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