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딩파라다이스

- <Oren' New Diary> #5

by 오렌



어제로 1년 3개월간 다닌 직장을 떠났다. <재생의 욕조>를 출간하자마자 곧바로 입사했으니 그 일도 벌써 1년 3개월이 흘렀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외적으로는 체중이 13킬로가 빠지는 혁신이 일어났고, 그 핵심에는 고강도 육체노동으로 인해 드러난 몸의 고질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시작한 PT가 있었다. 마음에 드는 도서관과 목욕탕이 가까이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고, 건강검진 결과 우려했던 대부분의 기관이 무탈했으며, 신체의 회복력과 자신감 혹은 신체가 얼마나 쉽게 무력해지고 그로 인해 멘탈이 나약해질 수 있는지를 재확인한 시간이었다.



시간과 공간의 힘에 대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의 효과와 가치, 그것이 지금 내 삶에서 갖는 위치와 의미에 대해 뼈 아프게 느끼게 했던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작가가 여기 있으면 되나? 글은 언제 쓰려고?"

카톡 프로필에 올려놓은 책을 보고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짝꿍 언니가 한 말이다. 십 년 전에 이 말을 들었다면 초조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나 역시 작가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온 후로 언제나 전업 작가의 삶을 꿈꾸고 있는 건 사실이다. 가령,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아침이면 파리의 몽마르뜨를 산책하고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두드리는 장면을 떠올렸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처음 글을 쓰던 공간이 직접 운영하던 재즈바 구석 테이블 한 켠이었는데 글로 밥을 벌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어디론가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는 표현을 목표로 삼기도 했고, 헤밍웨이가 쿠바 하바나 해변의 한 호텔에서 20년간 머물면서 <노인과 바다>를 집필을 했던 낭만적인 장면을 꿈꾸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삶을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다든가, 내가 부족해서 아직 이러고 있다든가 하는 자괴감이나 자조 섞인 한숨 따위는 물리칠 만큼 선명해졌고 강인해졌다. 동경하고 꿈꿀 수는 있지만, 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무라카미 하루키도, 헤밍웨이도 아니니까. 누군가의 베스트셀러나 노벨 문학상 보다 소중한 내 삶을 살아내는 것이 먼저니까.



무엇보다 하이라이트라고 여겨지는 대목은 늘 이곳에서 일어났다. 객실 정비가 시작되기 전, 이른 아침과 마감을 하는 늦은 오후, 많은 사람들이 머무는 좁은 공용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 이 시공간은 언제나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고,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무언가를 관찰하게 만들고, 잊고 있었던 글감을 떠올리게 했다. 말하자면 좁은 공간에서 어쩔 수 없이 보게 되고 듣게 되는 별의별 사건, 사고, 서사의 향연은 정말이지 지겹고, 역겹고, 도망치고 싶게 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행동하고 말할까?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드라마 제목이 절로 떠올랐다. 그동안 관심을 갖고 얕고 가볍게 공부했던 심리학, 철학, 문화인류학, 신학, 과학, 음악 기타 등등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서 이해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좋고 나쁨, 도움과 의존, 고통과 행복, 교만과 겸손, 성장과 퇴행, 비굴과 용기,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은 저마다의 수준에 따라 다 다르게 세팅되어 있었고, 그로 인한 커뮤니케이션의 부재가 혼돈을 초래했으며, 그 끝에서 결국 '카르마의 소멸'이라는 문구와 다시 만나곤 했다.



<재생의 욕조>를 출간하고 곧바로 취업한 호텔에서 우연인 듯, 필연인 듯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욕조를 닦았고, 욕조 속에서 하느님을 만났다. 늘 은혜로 충만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불만과 짜증, 억울함과 분노, 초조함과 답답함, 실망과 아득함의 진공에 사로잡힌 순간들도 많았으나, 은혜는 늘 나를 둘러싸고 있었으며, 그것이 스며들도록 깨어나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깊고 짧은 고민 끝에 10년 전 처음 이 일을 업으로 삼을 때, 들어갔던 호텔,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작가를 꿈꾸었던 곳에 다시 가기로 결정했다. 농담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곳 밥이 맛있고, 샤워할 때 물이 좋아서가 선택의 이유의 8할이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맛있는 밥을 먹고, 바닷가의 지는 해를 바라보며 저녁을 맞이하겠다는 것이 소소하고도 장대한 그림이다. 2할은 10년 전에 만났던 공간, 사람들을 다시 만나면서 변화한 내 의식을 대면하는 기대감이다. 그것이 샤워와 밥과 바닷가의 지는 해와 만나 무언가 나에게 필요한 소중한 것들을 가르쳐 줄거라 믿는다.



도망치고 싶었던 곳을 떠나 또 다른 공간에 간다. 그곳에서도 틀림없이 도망치고 싶을 것이다. 더 이상 안락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을 기대하지 않고, 그런 곳과 그런 관계는 없다는 냉랭한 현실이 오히려 따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두렵지 않아 졌다. 지긋지긋하던 동료들의 눈가에서 살짝 비치던 물기로 인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쓸까 말까 고민하던 마지막 편지를 단톡방에 던지고 조용히 나가기를 클릭했다. 누군가는 비웃고 누군가는 미소 지을.




안녕하세요? 선배님, 후배님, 동료 여러분.

글로나마 아쉬운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내일도 어김없이 바로 이웃, 어느 층에서 땀 흘리고 웃고 화내면서 일하겠지만요 ㅎㅎ


#파인딩파라다이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싫어하고 행복을 원하며 이를 가능하게 해 줄 공간과 관계를 찾기 마련이지요. 제가 가는 다음 행선지가 궁극의 파라다이스가 아님을 알지만,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모험을 떠납니다. 그곳에서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할 테고요.


유토피아라는 말이 있지요. 이 세상에는 없는 이상향을 뜻하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비되는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이 있어요. 철학자 미셸 푸코가 제안한 개념인데, 유토피아와는 달리 현실에 실재하는 공간으로, 주체가 질문하고 사유하고 상상함으로써 열고 닫을 수 있는 창조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어디에 있든 존재 상태에 따라 그곳이 천국일 수도 지옥일 수도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층 이동과 좁은 공용 시설 때문에 짜증 났던 공간들, 방 변경과 긴 대기 시간과 러쉬 독촉으로 초조했던 시간들, 침대와 주방과 욕실을 안 써서 혹은 팁이 나와서 기뻐했던 순간들, 웃고 화내고 부대꼈던 사람들, 날려갈 듯한 바람을 뚫고 출근했던 아침들... 안 좋았던 일은 십 분의 일로, 좋았던 일은 열 배로 기억하는 것으로, 제 인생 또 하나의 헤테로토피아로 기억하겠습니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궁극의 파라다이스를 향해 땀 흘려 분투하며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는 우리 모두를 자랑스러워하고 리스펙 하며 인사에 대신할게요.


무엇보다 건강하시고, 나날이 예뻐지시고, 행복하시기를, 그리하여 모두 각자가 원하는 파라다이스에 도착하시기를!




참, 이곳에 다니는 동안 있었던 가장 놀라운 사건 하나를 기록하며 오늘의 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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