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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Jun 11. 2018

은주에 대하여

내게 웃으며 상처 준 아이

살면서 많은 ‘은주’들을 만났다. 내 이름 못지않게 흔해서 정은이, 지은이, 은정이처럼 한 반에 둘셋쯤 있는 이름으로. 김씨, 박씨, 임씨 등 성이 이름을 대신하듯. 어디에나 은주가 있었다. 성까지 같은 은주는 예사가 아닐 정도로 많았다. 

가끔 은주들은 하나의 이름을 공동으로 소유한 사람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얼굴이 조금씩 다른 여인들이 은주라는 이름 하나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 은주들은 내가 이런 상상을 하는 것조차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도 성격과 경험이 제각각이듯, 은주들도 그랬다. 내가 만나온 은주들은 기억나는 사람만 세어 봐도 열 명이 넘는 것 같다. 가물가물한 은주들까지 포함하자면 더 많을 것이다. 그중 한 명의 은주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어디에나 있는 흔한 성씨와 이름이니 실명을 공개해도 그녀가 누구인지 구분도 못할 것이다. 그러니 스스럼없이 그녀의 실명으로 이야기를 꺼내본다.


중학교에 갓 입학해 내 앞줄에 앉은 은주를 처음 만났다. 다들 초등학교를 벗어나 아동과 청소년의 영역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열네 살이었다. 어색하게 서로의 이름을 묻거나 어쩌다 마주치면 웃는 정도로 어색한 시간을 이겨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앞줄의 은주는 몸을 홱 돌려 나를 보고는 현실감 없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안녕?”

그 목소리가 어찌나 크고 또렷했는지 주위 아이들이 모두 은주를 쳐다봤다.

“어, 그래. 안녕?”


별 용건도 없이 은주는 그렇게 내게 인사를 했고, 싱긋 웃었다. 사실 가장 현실감이 없었던 건 은주의 큰 눈이었다. 당시 나와 가족은 모두 축 처진 무쌍꺼풀의 눈이었다. 가끔 쌍꺼풀이라 불리는 선이 눈 위에 하나씩 얹힌 친구들을 보면 신기하고 부러웠다. 은주의 눈은 그중에서도 으뜸이었다. 동양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크고 굵은 쌍꺼풀의 눈. 정말 비현실적이었다.


커다란 눈 아래로는 조금 작은 크기의 코가 아담하게 서있었고, 폭은 좁지만 두께는 적당히 도톰한 입술도 보였다. 얼굴형은 적당한 곡선을 타고 흐르는 달걀형이었다.


당시 미용실에 가서 중학교에 들어간다고 하면 묻지도 않고 일자 단발로 잘라주곤 했는데, 은주의 머리는 조금 다르게 층이 들어가 동그랗게 말린 단발이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매일 아침 공들여 드라이를 한 머리였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은주는 예뻤다. 정말 예쁜 아이였다.


그 뒤로 은주와 나는 딱히 공통분모가 없는데도 친해졌다. 은주는 나처럼 초등학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부터 보습학원에 다녔는데, 그곳에서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고 했다. 은주로부터 그 남자 친구의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아직도 기억한다.


남자 친구의 이름은 진수였고, 머리가 빨리 자라서 2주에 한 번씩은 이발소에 가야 하며, 나이에 비해 키가 크고 순한 아이였고, 은주에게 예쁜 필기구 선물을 자주 했다. 그 나이의 아이들이 보통 그러하듯이 은주와 진수는 한 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헤어졌다. 은주와 달리 무쌍꺼풀에 반곱슬 일자 단발머리인 나는 외모에 자신감이 없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못 생긴 아이 같았다. 은주처럼 이성교제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나와 은주는 한동네에 살지 않았지만 하교를 함께 한 날이 많았다. 외가댁 근처 빌라단지에 은주의 집이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은주네 집에 몇 번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엄지 손가락만 한 크기의 거북이를 공책만큼 큰 사이즈로 키워낸 것이 거실에 있었다. 조금 쌀쌀맞고 몸이 불편한 할머니가 항상 방 하나를 차지하고 계셨다. 우리는 거실이나 은주의 방에서 함께 숙제를 하고, 과자를 먹곤 했다.


어느 날 은주는 학교에 와서 내가 반창고를 감은 손가락을 보여줬다.

“이게 뭐야?”

“나 어제 혈서 썼어.”

“뭐? 혈서?”


혈서라는 단어에 화들짝 놀랐다. 혈서의 이유를 은주는 설명해줬다.

“실은 담배를 피워봤거든. 그런데 엄마한테 걸렸어. 엄마가 방에 오자마자 내 손 냄새를 맡았거든. 엄마가 혈서를 쓰라기에 썼지. 커터 칼로 손가락 끝을 조금 쨌어.”

“뭐라고 썼는데?”

“다신 안 그럴게요,라고.”

이 말을 하면서도 은주는 싱긋거리며 웃고 있었다. 은주의 어머니가 조금 독특한 성격이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흡연한 딸에게는 혈서를 쓰게 했지만 정작 본인은 담배를 신나게 피운다는 것, 중년에 접어든 나이지만 코 성형을 했다는 것, 그토록 싱긋거리며 잘 웃는 딸에게 무심하다는 것.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때의 은주를 몹시 좋아했던 것 같다. 혼탁한 환경에서 언제나 싱긋거리는 은주가 좋았나 보다. 일 년이 지나 내가 은주에게 큰 배신감을 느꼈던 것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중학교 2학년이 되고도 우리는 같은 반이었다. 은주는 그 예쁜 얼굴을 가졌음에도 친구들에게 미움을 많이 샀다. 아이들이 “쟤는 아무한테나 저렇게 웃는다.”, “저렇게 웃으면서 남자 꼬시려고 한다.”라고 험담을 해도 나는 곧이듣지 않았다. 웃는 얼굴이 어때서, 남자 친구 좀 사귀면 어때서. 내가 좋아하는 은주는 나쁜 마음으로 웃지 않았을 것이다.


그 무렵 나는 짝사랑하는 오빠가 있었다. 오며 가며 얼굴을 익힌 고등학생 오빠였는데, 우연히 은주네 집에 놀러 가던 길에 마주쳤다. 알고 보니 은주의 바로 윗집에 살고 있었다. 마주친 그 오빠와 나와 은주, 셋이 인사를 할 때 오빠의 시선은 은주의 예쁜 얼굴에 박혀 있었다. 그래도 나는 아무것도 상상하지 않았고, 하고 싶지 않았다. 은주는 나쁜 마음으로 웃는 아이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은주는 환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상미야. 나 그 오빠랑 사겨.”

티 없이 웃으며 은주는 빠르게 내 마음을 할퀴었다. 몇 초쯤 멍하게 있던 내가 말했다.

“은주야. 내가 그 오빠 좋아하는 거 너도 알잖아. 내가 전에 말했잖아.”

“응. 알아.”

“안다고? 알면서도 사귄 거야?”


은주는 대답 없이 웃고 있었다. 얼굴 가득 환하게, 비현실적인 큰 눈은 반달 모양이었다. 그 뒤로 나는 은주를 외면했다. 말을 섞지 않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 오빠와 내가 사귀지 않았고, 사귈 가능성도 없었지만 먹던 밥이 식도에 콱 박힌 것처럼 괴로웠다.


내 주변 친구들은 그것 보라며, 그럴 줄 알았다며 더욱 꼿꼿하게 은주를 힐난했다. 그래도 한 교실에서 지내며 어쩌다 나와 마주치게 되면 은주는 눈치 없이 환하게 웃었다. 전해 듣기로는 그 고등학생 오빠와의 연애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끝났다고 했다.


그랬던 은주를 성인이 되고 다시 만나긴 했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 교정을 걷던 중,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은주가 나와 같은 대학교의 일본어과에 입학한 것이었다.


여전히 환하게 웃는 은주는 변함없이 예뻤고, 또다시 눈치 없이 배시시 웃으며 나를 반가워했다. 내가 좋아했던 은주라는 친구의 반가운 얼굴과 한물 간 배신감이 주위에 나뒹굴었다. 그 뒤로 몇 번 더 교정에서 마주쳤다. 내가 속한 공과대 건물과 은주가 속한 문과대 건물이 조금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졸업 전까지 서너 번 마주친 게 전부였다. 자주 마주쳤다 해도 중학교 시절처럼 친근하게 지낼 수는 없었을 거다. 하지만 다시 만났을 때 환하게 웃던 은주가 정말 반가워서 웃었던 건지 궁금하긴 했다.


오늘 문득 은주가 떠올랐다. SNS의 이용자 검색에 은주의 성과 이름을 넣어봤다. 예상대로 너무 많은 은주가 나왔다. 살펴볼 것도 없이 창을 껐다. 그 수많은 은주들 중에 결말도 좋지 않았던 은주가 떠오른 건 왜일까. 아마 지금 이 기분을 중학교 그 시절 친구들에게 털어놓으면 그 못된 계집애를 왜 궁금해하냐고 나를 답답해하겠지만,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든다. 나쁜 마음으로 그리 웃진 않았을 거라고.


그리고 이왕이면 계속 예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해봤다. 그저 잘 웃고 예뻤던 아이, 내게 웃으며 상처를 준 아이. 세월과 함께 미움이 걷히고 나니, 나는 새삼 그 은주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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