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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y 15. 2018

90%의 기분이란

별 일 없을 거라 믿었을 90%와 10%

“혹이 더 생겼는데, 모양이 이상하네요.”

의사의 말에 심장이 덜컥 소리를 냈다.

“지난번 검사 때 있던 혹이 아니라 추가로 더 생겼다는 거죠?”

“네, 두 개가 더 생겼는데 그중 하나가 크기가 크고 모양도 이상해서 조직검사를 받아야겠네요.”

조직검사라는 말에 다시 한번 심장이 달그락거렸다.


내가 했던 검사는 너무나 당연한 내 몸의 일부지만 어쩐지 숨기고, 감추고 싶은 부분에 대한 검사였다. 성별에 따라 기피하는 영역이기도 한 바로 유방검사였다.


우리가 위가 안 좋으면 위 내시경 검사를 하고, 허리가 아프면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치아에 문제가 생기면 입을 크게 벌리고 입 안 구석구석을 의사가 살펴보는 게 당연한 것처럼 유방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유방검사는 이상하게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럽다. 가까운 동성 친구들끼리야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외에는 언급이 불편하다.(다시 말해 나는 지금 엄청난 용기를 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유방센터를 처음 찾게 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통증이 몇 달간 있었는데, 무서워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삼십 대 중반이 넘어가니 ‘나도 한 번 그 검사를 받아야 하나’ 싶은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검사였다. 검사를 받아본 친구는 굉장히 굴욕적이고 고통스러운 검사라고 했다. 그런데 통증이 3개월 넘게 지속되니 나는 병원을 찾고 말았다.


병원을 찾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의료진이 모두 여성인지, 집에서 가까운지, 오진 확률이 낮은지 확인하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런 나의 선택사항에 맞는 병원을 하나 찾았는데 이 지역에서 인기폭발인지라 예약 후 한 달 후에야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남편은 그저 의사일 뿐인데 굳이 여성 의료진이어야 하느냐고 의아해했다. 물론 의료진의 성별이 검사 결과나 치료에 영향을 주진 않지만 오랜 세월 유방센터와 산부인과를 향한 시선과 생각을 감추며 살아온 문화권에서 그 문턱을 넘기는 어렵기만 했다.


한 달 후, 여름이지만 서늘한 바람이 불던 오후 시간에 병원을 찾았다. 내가 받을 검사는 유방 초음파와 유방 엑스레이였다. 다들 엑스레이를 불편하고 아프다며 기피한다고 하는데, 언젠가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 배우 조정석이 검사 과정을 리얼하게 보여준 적 있다.


(사진 출처 :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 공식 홈페이지)


드라마를 볼 때는 그 장면이 너무 웃겨서 다시 보기를 했는데, 내가 그 검사를 받게 되니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잔뜩 긴장하고 간 게 티가 났는지, 간호사들은 나를 안심시키느라 노력했고 친절히 검사과정을 안내해줬다. 옷을 갈아입고 엑스레이를 먼저 찍었다. 예상대로 아팠다. 하지만 그리 고통스럽지 않은 게 촬영 시간이 약 1분 정도면 끝난다. 각도를 바꿔가며 찍는데 오래 걸리지 않아서 아프다거나 고통스러움을 느끼기엔 굉장히 찰나다.


오히려 고통스러웠던 건 초음파 검사였다. 어두침침한 검사실 분위기에 이미 겁을 한 트럭 집어먹고 검사 침대에 누웠다. 하루에 백번도 넘게 똑같은 검사를 할 것으로 예상되는 의사가 내 옆에 서서 담담하게 초음파 검사를 시작했다. 유난히 한쪽 가슴에서 초음파 기기가 자주 멈춘다는 것을 느꼈다. 직감으로 알았다. 뭔가 있다는 것을.


검사를 마치고 의사 옆에 앉아 차근히 설명을 들었다.

“한쪽에 혹이 있어요. 하지만 이 정도 혹은 흔한 거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 6개월마다 추적 검사를 하시면 됩니다.”


뭔가 있다는 예감에 비해 괜찮은 진단이었다. 나는 웃는 얼굴로 병원을 나왔고, 다시는 유방센터의 굴욕 체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내시경 검사도 거뜬히 하고, 피부 조직검사도 해봤던 나지만 유난히 유방 검사는 굴욕적으로 다가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 것 같았다. ‘저 사람 방금 유방 검사하고 나왔나 봐.’라며. 물론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하지만 6개월 후의 추적검사 시기는 금방 다가오고 말았다. 나는 별 일 아닐 거라 생각했다. 남들도 이 정도 혹은 흔하다는데, 나라고 별 일이 있겠냐는 생각이었다. 남편이 함께 갈지 물어봤지만 괜찮다고 혼자 병원에 방문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문에서 6개월 사이에 내 가슴에 혹이 2개가 더 생겼고, 그중 하나가 크고 모양이 이상하며, 조직검사로 종양인지 알아봐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런 증상에서만큼은 ‘흔녀’이기를 바랐던 나지만, 의사의 진단으로 흔녀 중에서 조금의 소수로 내 위치가 옮겨갔다.

“조직검사를 한다는 것은 암일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요?”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90%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혹이에요. 혹시 위험한 혹일까 봐하는 검사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90%는 괜찮다는 예언을 듣고 나는 조직검사를 예약한 뒤 집에 돌아왔다. 그날부터 검사 날까지 나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지내려 굉장히 애썼다. 의사 말로는 조직검사를 해도 90%는 문제가 되지 않는 혹이라고 했다. 나처럼 흔하고 평범한 사람이, 딱히 소수에 껴본 적 없는 사람이 10%에 속할 리 없다고 계속 되뇌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남편은 자꾸 내 눈치를 봤다. 평소보다 잘해주려고 애쓰는 게 눈에 보이니 더 예민해졌다. 마감을 앞둔 원고와 읽으려고 빌려온 책들이 잔뜩 쌓여있는데 아무런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검사를 남겨둔 일주일은 정말 멍하게 지낸 것 같다.

이윽고 조직검사 날이 다가왔다. 단언컨대 지금껏 해온 초음파나 엑스레이 검사는 조직검사의 고통에 비하며 장난이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간단한 검사와 시술에 앵앵거리며 엄살을 부렸는지, 유방 조직검사로 모두 정리됐다.


피부에 부분마취를 하지만 피부 안쪽의 신체 조직에는 모든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굵은 주삿바늘처럼 생긴 기구가 가슴을 뚫고 들어와 조직을 떼어 내는 감각이 그대로 느껴졌다. 작은 구멍이라 해도 기구가 몸속으로 들어와 신체의 일부를 뜯는 검사였다. 너무 아파서 소리도 안 나온다. 숨이 콱 막힌 상태로 몸을 꼼짝도 할 수 없다. 한쪽 가슴에서 조직 4~6개를 떼는데, 나는 양쪽 다 검사했기 때문에 열 개 정도의 조직을 채취한 것이다. 그 작은 구멍에서 피도 많이 난다. 지혈이 다 됐는지 확인 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검사를 마친 후에도 몇 가지 불편이 이어진다. 피가 조금씩 나고 검사 부위가 아물기까지 이틀간 샤워를 못 한다. 팔을 높이 들면 안 되고, 팔을 많이 쓰거나 당연히 운동도 안 된다. 검사를 받고 온 날은 침대에 누워만 있다가 남편이 차려주는 밥을 먹고 다시 눕고 멍하게 조직검사의 충격과 공포를 삭혀야 했다.


그리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는 시간이 있었다. 설마 내가 10%겠어, 나처럼 흔하고 평범한 인간인데, 하며 생각했다. 그런데 10%의 사람들이라고 유별나고 비범한 삶을 살았겠는가. 그저 별 일 아닐 거라 생각하며 나처럼 고통스러운 검사를 받은 평범한 10% 들일뿐이다.


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왔다. 남편은 회사에 휴가를 내고 함께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나는 90%였다. 안도할 수 있는 90%에 속해있었다. 뜬금없이 남편은 의사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의사가 나를 90%로 만들어준 게 아닌데도 그랬다. 나는 의사로부터 검사 결과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아, 다행이에요.”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보름 가까이 나를 옭아맨 10%의 공포에서 벗어난 순간이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니 대기실에는 나처럼 검사를 앞둔 여성들과 의사와의 상담을 기다리는 여성들이 굉장히 많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 몸에 있는 신체 일부의 건강을 확인하러 온 것이다. 그리고 이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10% 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잠시 슬퍼졌다. 누군지 모르는 10%는 나와 마찬가지로 ‘별 일 없을 거라’ 생각하는 같은 지역의 여성일 뿐이라는 사실에 얇은 희비가 엇갈렸다.


다시는 이 끔찍한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평생 6개월 단위의 추적검사를 하게 될 것이다. 90%에 속한 대가로 달게 치러야 할 것이다. 90%에 소속된 기쁨과 10%를 향한 짠한 기분이 엄습한 가운데 나는 빠른 걸음으로 남편과 병원에서 나왔다.


끝으로 나의 바람은 90%에 10%를 더한 100%가 무사하기를, 미심쩍지만 무서워서 검사를 미루고 있는 분들이 하루빨리 병원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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