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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Apr 27. 2018

인생선배는 필요 없다.

삶은 어쨌거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 아닌가.

‘안궁’, ‘안물’이라는 줄임말이 있다. 
궁금하다는데 자꾸 설명하는 사람들,
안 물어봤는데 자꾸 이야기하는 사람들. 나는 이게 흔히 말하는 ‘맨스 플레인(mansplain)’이거나,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 중 일부의 ‘꼰대질’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나이 든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똑같다. 조언이 필요하다거나 충고를 원한다고 한 적이 없는데, 혹은 상대의 경험이 궁금하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자신의 생각을 토대로 한 조언이 술술 나오는 인생 선배들이 이 세상엔 정말 많은 것이다.


인생선배가 많이 분포하는 곳을 추려봤는데 그중 첫 번째는 예상대로 회사다. 상하관계가 분명한 곳이다 보니 상사의 가르침, 업무의 설명 단계에서 본인도 헷갈리는 것이다. 업무 인계와 원활한 업무 패턴을 위해 필요한 말을 하다 보면 묘하게 조언과 가르침의 경계가 혼돈해지는 것.


이것과 관련해서는 얼마 전 친구와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2년 전까지 어느 회사의 상사였고, 지금도 내 친구는 회사의 상사다. 친구가 입이 삐죽 나와 툴툴거렸다. 친구가 주로 상대하는 후배 직원 A와 B의 이야기였다.


“대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어. A는 모르는 게 있으면 곧잘 물어본다고. 그래서 설명해주면 잘 알아듣고 처리하지. 그런데 문제는 B야. 내가 설명만 하면 얼굴이 우거지 죽상이라고.”

“네가 필요 없는 가르침까지 광대하게 전파한 것 아냐?”

“그러니까. 그게 애매하다는 거야. 내가 보기에 분명 필요한 정보니까 말하는 거야. 사실 B가 일을 잘 했다면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는데. 질문도 안 하고 일을 엉망으로 하고 나면 뒤처리는 내가 해야 하잖아. 그래서 설명하는 건데, 설명하다 쳐다보면 얼굴이 아주 썩어있다고.”

“내가 짤막한 경험으로 느낀 건데, 조언이나 가르침은 상대가 원할 때만 해주는 게 좋은 것 같아. 이렇게 하면 좀 더 좋을 것 같아서, 겪어보니 이런 점이 있어서 설명해주면 상대방 반응이 어마어마하지.”

“그런데 너 지금 그거 나한테 조언한 거냐?”

“아하, 그런가?”

“이래서 어렵다니까. 가르침과 조언의 경계를 내가 어떻게 알겠어? 꼰대의 기준이나 매뉴얼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어쨌든 방금 조언 비슷하게 한 것 미안. 나 꼰대 같았지?”

“나 꼰대라는 말 진짜 싫어!”

친구는 흑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아마 그 무렵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로 꼰대 공격을 무수히 받은 모양이었다.


회사 못지않게 인생선배가 밀집한 곳은 집안이다. 1세대의 가족, 다시 말해 부부나 동거인으로 구성된 가족까지는 그럭저럭 괜찮다. 문제는 2세대부터다. 여기에 명절에 모인 친척들이 합세하면 인생 선배들의 거대한 연회가 펼쳐진다.


내가 집안에서 자주 듣는 조언은 이런 것들이다.

“아이가 있어야 부부 금슬이 좋고 이혼도 안 하지.”

“나물이든 야채든 국산이 제일 좋은 거다. 비싸도 국산을 사야 해.”

“남편 아침밥은 절대 굶겨 보내면 안 된다. 남자는 아침밥을 먹어야 밖에서도 대접받는다.”

“김치는 사 먹는 것 아니다.”

물론 내가 대답을 제대로 안 하기 때문에 상대 인생 선배들은 기분이 별로일 것이다. 그럼에도 매번 반복하는 걸 보면 다들 심지가 굳은 분들이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조언도 있다.

“이사 가는 날 밥솥에 쌀을 넣어가야 해. 그래야 재물이 늘어나는 거야.”

“너희 집 근처에 있는 그 절이 기도발이 좋단다. 원하는 게 있으면 거기서 기도를 드리렴.”

미신을 근거로 한 재미있는 조언들이다. 그래도 이런 조언은 해주신 마음이 감사해 고개를 끄덕이며 듣곤 한다.


문제는 여기서 한 단계 뛰어넘어 불쾌한 조언이 나올 때다.

“집은 남자 이름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남자 기가 꺾지 않는다.”

“무조건 아이는 있어야 한다. 아이가 있어야만 가정이다.”

“어른에게 말대답하는 거 아니야! 어른이 말하면 네, 해야지!”

“부모 자식은 천륜이다. 아무리 부모가 잘못을 하고 야단을 쳐도 무조건 공경해야 된다.”

(싫은데요?ㅎㅎ)

이런 조언들이 귀로 들어오면 머리칼이 쭈뼛한다. 이것이야말로 조언과 강요, 덧붙여 폭력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조언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말 아니었던가. 이런 이야기를 “내가 인생선배로서 충고하는데~.”로 시작하는 어른들은 도무지 존경할 수가 없다. 폭력적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여기서 “궁금하지 않다.”거나 “제 생각은 다르다.”라고 말하면 불편한 싸움으로 이어진다. 싸움이 싫은 쪽은 그저 삭히거나 외면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심으로 말하건대, 궁금하지 않다. 상대의 생각, 사례, 경험 모두 궁금하지 않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젊은 사람들끼리도 듣기 싫은 조언이 난무한다고 한다. 특히 임신을 한 친구들은 주변의 출산 경험자들로부터 온갖 조언을 다 들었는데, 그 내용이 제각각이고 기준도 명확치 않은데도 자신의 경험이 제일이라며 조언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내 자식도 내 마음대로 못 낳는다.”며 웃어넘기는 친구들의 마음이 한결 넓어 보였다. 이쯤 되면 ‘경험담’이라는 것도 피하고 싶어 진다.


삶은 어쨌거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 아닌가.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살아온 과정이 다르고, 한 가정에서 태어난 형제자매들도 다른 생각과 꿈을 갖고 사는데. 어찌 자신의 삶의 방식을 타인에게 전해주고 싶어 그토록 안달들일까. 조금 딱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누군가를 위하는 그 선한 마음이 조언 때문에 오히려 상처로 돌아오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남편은 자기개발서가 난무하는 사회 탓이라고 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조언가들, 각양각색의 인생선배가 난무하는 이 ‘조언의 세계’에서 나는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조언하지 않는 쪽을 택하고자 한다. 누군가 질문하기 전엔 결코 나의 생각과 노하우를 말하고 싶지 않다. 질문에는 정확한 답만 하고 싶다.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을 고심한 내가 자칫 무뚝뚝해 보이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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