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귀리밥 Apr 04. 2018

퇴사, 그만 외치면 안 될까?

회사가 프리패스가 아니었듯, 퇴사도 마냥 자유는 아니야.

마치 퇴사가 유행이라고 느낀다. 용감하게 퇴사를 하고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앙갚음하며 자유롭게 세상으로 나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 퇴사라는 투박한 단어에 담긴 로망이다. 퇴사를 부추기는 책과 콘텐츠가 즐비하고, 퇴사 후 성공담까지 적지 않게 나오고 있으니 퇴사, 그까짓것이다.

구글에 퇴사를 검색하면 개비스콘이 나와요ㅎㅎ<사진 출처 https://namu.wiki/w/개비스콘>


그런데 좀 답답하다. 정말 퇴사만 하면 행복할 것 같은데, 왜 내 눈에는 퇴사를 향한 갈망이 오히려 더 답답해 보이는 걸까? 나의 경험과 주변의 넉넉한 실패담을 들어서일까? 하여튼 나는 이렇게 퇴사를 권하는 분위기가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다. 


스물여섯 살이었다. 내가 퇴사를 한 나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공 들여 입사한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부모님들의 반응은 볼만할 것이다. 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좀 다녀. 남들은 참고 잘만 다니는 회사를 왜 너만 못 버티고 나온다는 거야? 그냥 조신하게 회사 다니다가 돈 모아서 시집가!”


퇴사를 선언한 무렵 엄마가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찌푸린 채 내게 못 박던 말들이다. 물론 반대편 귀로 다 흘러나갔기 때문에 나의 결정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 말들이다. 


당시 내가 퇴사를 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대학 졸업 후 회사를 일 년 반쯤 다니고 나니 슬슬 매너리즘이 왔고, 내게는 손길이 크게 뻗치지 못했지만 윗사람들의 엄한 정치 때문에 사원들만 골병 나도록 일 하는 게 싫었다. 잦은 부서이동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 새벽같이 일어나 회사에 가고, 퇴근해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면 씻고 자는 게 일상이었다. 퇴근 후나 주말에 글을 쓰고 싶었는데 체력이 받쳐주질 않았다. 생각할 겨를 없이 잠들고 일어나 일하고 다시 돌아와 잠드는 일상에서 벗어나면 자유롭게 내 글을 쓰고 등단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표를 내던 날의 그 두근거림이란. 회사의 양식에 맞춰 ‘개인 사정’이라는 모호한 단어를 넣어 작성한 사직서를 차분히 차장님께 제출했을 때, 차장님의 떡 벌어지던 입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마 차장님이나 윗선 입장에서는 일 년 넘게 잘 가르쳐 이제 부려먹기 딱 좋은 사원이 그만둔다고 하니 김 빠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회사를 그만둘 때는 미리 계산이 있었다. 일 년 반 동안 모은 적금으로 절약하며 살면 10개월쯤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동안 구상해오던 소설에 필요한 것을 취재하며 사는 것이었다. 늦잠도 푹 자고, 새벽에 라디오를 듣는 꿀 같은 시간을 계획했다. 그런데 시간이 언제나 생각대로 흐르는 게 아니듯, 상황이 계획대로 흐를 리 없었다. 그것을 퇴사 전에는 몰랐다. 


일단 내 계획에 없던 경조사가 곧잘 생긴다. 취재를 다니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회사 다닐 때보다 훨씬 늘어난다. 회사를 그만뒀다는 소식을 들으면 만나자는 사람도 꽤 많아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지출이 늘어난다. 


회사를 그만뒀기 때문에 모든 집안일은 당연히 내게 넘어온다. 퇴사 후 글 쓰는 임시 백수가 될 줄 알았는데, 글 쓸 준비만 하는 전업주부가 되고 말았다. 이런 이유로 글은 제대로 쓰지도 못했고, 예상했던 10개월이 아닌 5개월 만에 돈은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5개월 차에 들어서는 핸드폰 요금과 보험료가 빠져나가는 게 얼마나 긴장됐는지 모른다. 


게다가 아침마다 방문을 열고 외치는 엄마의 고함에 화병이 날 것 같았다. 

“그만 자고 당장 일어나!”


회사를 그만둔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허구한 날 새벽까지 글을 끼적이다가 낮까지 푹 자는 딸이 고울 리 없었다. 나는 바짝 다가온 생활고와 예정대로 쓰지 못한 장편소설의 절반에서 머뭇거리다 재취업을 하고 말았다. 나의 금쪽같은 백수생활은 6개월 만에 종료됐다. 


퇴사 후 생활이라는 게 그리 아름답게만 흐르지 않는 것인데, 예전에는 남의 떡이라 좋아 보였던 걸까. 재취업 후 나는 쉬지 않고 일했다. 지금처럼 프리랜서로 일하며 조금씩 내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이것 역시 일을 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가능하다. 혹독하게 겪어본 퇴사 후의 자유로운 집필 시간은 그리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퇴사를 부추기는 글들을 보면 왜 사람들에게 밝은 면만 보여주려는 걸까 의심스럽다. 해가 뜨니까 달도 뜨는 것처럼, 퇴사 후 자유로운 생활에는 반드시 뒤따르는 부담과 지출, 용기가 필요한데 자유롭다면서 자꾸 꼬드기는 것 같다. 


입사에 목을 매는 사회 분위기도 얄팍하게나마 문제가 있다. 사실 직업이라는 것, 취업이라는 것은 어떤 일을 하고 사는가가 가장 중요한데 요즘은 취업할 때 어디에 소속되는지가 급급한 것 같다. 어떤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보다 대기업에 입사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입사만 하면 행복으로 가는 프리패스인 것처럼 말이다. 


공무원 취직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얼마 전 친한 동생으로부터 갓 취업한 친구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게 있다. 

“제 친구가 열심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서 합격하고 얼마 전부터 배정받아 일을 하고 있어요. 친구는 고생해서 시험에 붙었으니까 이제 편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이 엄청 고되고 많은가 봐요. 그래서 노선을 고민하고 있다더라고요.”

“무슨 노선?”

“그냥 열심히 일 할지, 시킨 것만 대충 하면서 편히 지낼지.”

“그럴 거면 공무원 시험은 왜 본 거래?”

“공무원 되면 편하다는 생각으로 고생해서 봤으니, 자신의 고생만큼 보상을 받고 싶다는 거죠. 그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에요.”

공무원 시험은 공무원으로서 일하기 위해 치르는 관문인데, 이런 케이스야말로 취직을 행복의 프리패스로 착각한 사례 아닐까. 


일단 입사만 하면 행복해지고 편안해지는 직장은 이 세상에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입사에 목매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래서 퇴사가 절실해지는지도 모른다. 입사하면 모든 것이 안정될 줄 알았던 환상, 회사의 간판이 나의 입지를 올려줄 거란 허망한 기대, 이번에 들어가는 회사가 처음이자 끝인 것처럼 온 정성과 심혈을 기울이는 입사 준비. 막상 들어오고 나면 생각지 못한 일들이 매 순간 일어나는 직장은 기대만큼 우리에게 행복을 덥석 안겨주진 않는다. 


그래서 스치는 월급에 우울해지고, 억지 부리는 꼰대의 지시에 따라 ‘화려하면서 심플한, 다크 하면서 샤한’ 문서를 만드는 것이다. 열심히 준비해서 입사하면 돈 때문에 고생 안 하고 삶의 안정을 찾을 것 같지만, 평생직장이 이미 사라진 사회에 살면서 첫 회사에 목숨 걸 듯 입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무작정 하는 입사와 회사의 이름보다는 내가 무엇을 하며 살지, 취직을 한 뒤에는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아주 충분한 고민이 필요한데 말이다. 


나 역시 대학 졸업 후 충분한 고민 없이 입사한 덕에 퇴사를 하고 잠시나마 자유를 계획했지만 이내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지인들의 사례를 보자면 퇴사 후 여행을 다니며 책을 쓰고 강연을 다니거나, 돈을 모아 카페를 차리는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이번 달에 계좌에서 빠져나갈 요금을 걱정하고, 손님의 머릿수에 카페의 임대료를 계산하며, 설거지를 하느라 걸린 습진에 약을 바르는 이면도 있다. 


그러니 자꾸 퇴사를 외치라고, 시원하게 나오라고, 자유를 꿈꾸라고 부추기는 달콤한 말에 너무 마음을 뺏기지 않았으면 한다. 회사가 프리패스가 아니었듯, 퇴사도 자유를 보장해 주지 않으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드라마가 좋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