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을 이용하고 있어

결혼은 때때로 무기가 된다.

by 귀리밥

결혼은 때때로 무기가 된다. 여자에게는 특히 그렇다. 남자에게도 자신이 ‘결혼은 내게 무기’라고 인지하지 않을 뿐 마찬가지인 경우가 있다고 믿는다. 나는 실제로 그 무기를 잘 이용한다. 그래서 가끔 결혼을 이용한다고 표현한다. 오늘도 남편을 마중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털어놨다.

“나는 결혼을 이용하고 있어.”


못되고 세속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말이다. 결혼을 이용한다니, 목적을 갖고 결혼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나마 약삭빠르지 못한 허당의 나를 변장시킨다. 실제로도 결혼을 편리하게 이용하고 활용한다.


내가 말하는 결혼의 이용이란 무기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20대부터 사회생활을 하며 느낀 게 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비중이 거의 비슷한데, 나쁜 사람 중에는 성(性)의 약점을 곧잘 잡아내 모욕을 주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었다.


인터뷰에서 만난 취재원은 좋은 기사를 써주었다며 식사로 답례하기를 원했다. 나간 자리에서 그는 거나하게 술이 취해 내 앞에서 성희롱에 가까운 말실수를 했다. 그 자리에 여자는 나뿐이었다. 그래서 괜히 따졌다가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 참아야 했다.


화가 나서 다음 날 일하던 잡지사 대표님께 사실대로 말했다. 결국 사과를 받아냈지만 속이 개운치 않았다. 회사 안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남자 선배들은 걸핏하면 군대 다녀온 애들이랑 일해야 된다는 둥 빈정거림을 입에 담았다.

나이를 좀 더 먹어 서른 언저리가 되었을 때는 어딜 가나 미혼 남성과 엮어대는 사람 투성이었다. 미혼인 여성과 남성은 서로에게 맞든 안 맞든 일단 만나 서로를 탐색해야 할 듯 주변에서 마구 갖다 붙였다. 그럴 때 나는 접목에 필요한 접붙이기 가지이거나 양식장에서 알을 낳아야 할 운명의 물고기와 같았다. 결혼만 안 하면 일단 엮어버리려는 배려 없는 사람들 덕에 마음 시린 날이 많았다.


동호회 모임이나 몇몇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만 나가도 결혼 안 한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웠다. 일부 남자들은 번식기를 맞이한 수사자처럼 여자의 주변을 맴돌며 호감을 얻기 위해 애썼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들이 께름칙했다. 조급한 마음에 다가오는 이들은 언제나 자연스럽지 못해서일까.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 이성과는 항상 좋은 관계로 이어지지 않았다.


회식 자리도 다를 바 없었다. 결혼 안 한 여자는 길어지는 술자리에서 더 놀다 가라는 질긴 부추김을 받는다. 게다가 “집에 가 봤자 기다리는 사람도 없지 않냐.”는 말을 서슴지 않게 해댔다. 그럴 때마다 내가 결혼한 여자라면 어땠을까, 하고 속이 꼬였다. 결혼 전의 나는 좋은 놀림감이었으리라.


서른두 살의 겨울에 결혼이라는 의식을 통해 약자의 입장에서 조금씩 벗어남을 느꼈다. 일단 모임이나 어느 자리에서 어슬렁거리는 수사자들이 사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한 여자와는 미래도 없고, 괜히 다가갔다가 여러 문제들로 골치 아플 게 뻔하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나 나를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제법 산뜻했다.


법이라는 수단으로 한 남자에게 귀속된 나는 다른 남자들에게 더 이상 여자로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결혼과 동시에 비로소 여자가 아니라 오롯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 시선을 받아 본 지 참으로 오랜만이라는 걸 알았다. 매우 간편하고 홀가분한 일이었다. 간혹 한 남자에게 귀속된 것을 아쉬워하는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여자 사람’으로 인지되는 게 훨씬 편리했다. 그래서 결혼 후에는 사람을 만나는 데 경계심을 풀고 편안하게 대하기가 쉬웠다.


말도 안 되는 이성을 억지로 소개받는 것도 그 순간 딱 끊겼다. 결혼한 사람은 미팅에 나가거나 더 이상 ‘썸’을 타서는 안 되니까 말이다. 굳이 불륜관계를 맺지 않는 이상 (어쨌든 불륜은 나쁜 것!) 새로운 이성과의 관계를 만들 필요가 없으니 피로감이 확실히 줄었다. 미혼 시절 언젠가 함께 일하던 남자 동료가 나에게 소개팅을 주선한 적이 있었다.


“란이 씨랑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어요. 내 친군데 정말 둘이 잘 맞을 것 같아요.”

“아, 정말요?”

“란이 씨, 음악 좋아하죠? 내 친구도 음악 정말 좋아해요.”

“아, 그래요. 그런데 음악도 종류가 다양하고 그러니까 글쎄요. 하하.”

“내 친구 피부도 뽀얗고 귀티 나게 생겼어요. 둘이 정말 잘 어울리겠다. 꼭 만나 봐요. 내가 진짜 보장한다! 둘이 정말 잘 어울릴 거라니까요?”

“그럼 한 번 생각해 볼게요. 아니, 뭐 요즘 딱히 소개팅 생각이 없어서.”

“에이! 란이 씨 지금 남자 친구 없잖아! 그럼 무조건 나가야죠! 진짜 잘 어울릴 거야. 나 믿고 무조건 나가요. 이번 주말 어때요?”


함께 일하는 동료와 이성 관계나 주선 관계로 얽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까지 나서서 부추겼던 그 소개팅은 어느 여름의 푹푹 찌는 일요일에 이루어졌다. 떡이 진 머리에 담배냄새를 가득 풍기는 한 남성이 서류가방을 들고 다가왔다. 실적이 급해 주말에도 보험이나 카드 영업을 하는 외판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동료가 말한 ‘나와 진짜 잘 어울린다던’ 남자였다.


셀프서비스인 커피전문점에서 만난 그 남성은 연신 큰 소리로 ‘아가씨’를 불러댔다. 억지로 카운터에서 나온 직원에게 메뉴판은 보지도 않은 채 “여기 시원한 거 한 잔 갖고 와요!”라고 요구하던 갑갑한 상황을 여전히 잊을 수 없다. 그날 조급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마음이 불편하니 체기가 생겨 저녁도 굶었다.


억지로 나가던 소개팅 주선이 뚝 끊긴 것보다 더 좋았던 것은 재미없는 회식이나 식사 자리에서 빨리 도망치는 데 결혼이 유용하다는 점이다. 술을 마시거나 늦게 온다고 타박하는 남편은 아니었지만, 원치 않는 자리에서는 남편의 캐릭터를 조금 바꿔 말한다.

“늦게 오면 걱정도 많이 하고, 오늘 남편이 몸이 안 좋다고 해서 저는 먼저 일어날게요. 다음엔 우리 길게 놀아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남편은 전혀 아프지 않았고, 다음에 길게 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결혼한 여자의 이 정도 거짓말은 사람들에게 순순히 통한다. 결혼을 했다는 사실은 자유와 편리함이 생겼다는 사실과 동일했다. 어쩐지 결혼으로 인해 건강해진 기분이다. 이렇게 좋은 거였다면 좀 더 일찍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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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하며 남편도 결혼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결혼 전과 후에 주변으로부터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나는 결혼했다고 상대에게 신호를 주면 그제야 겨우 예의를 갖추는 것이야말로 무례한 문화라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남편도 회식에서 아내가 아프다는 핑계를 댈 수 있고,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는 싱글 여성으로부터 그저 ‘남자 사람’으로서 편리함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언젠가 결혼은 참 편리하다며 어깨를 으쓱하는 남편의 모습을 상상한다.


이렇게 결혼을 잘 이용하고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결혼은 속박’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아마 주위로부터 속박을 당하는 것일 테다. 배우자의 부모님과 가족의 요구사항, 자신의 부모님이 바라는 것들에 대한 부담과 비합리에 숨이 막히면 배우자와 속박을 동일시하기 쉽다. 아직 나쁜 관습들이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결혼문화는 결혼을 ‘편리’가 아닌 ‘속박’으로 만드는 환경에 더 가깝지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나에게 있어 결혼은 ‘무기’이자 ‘편리함’이다. 자신을 보호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으며, 안전하게 숨겨 둘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결혼하기를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