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는 모두와 함께 즐겁게 살고 싶다.
“이번 토요일에 시간 되니? 아버지랑 한번 갈 테니 같이 점심 먹고, 너희 집에서 차 한 잔 하자. 식당 예약해 놔.”
연말에 시어머니로부터 온 메시지다. 여기서 아버지는 나의 시아버지다. 가끔 시부모님으로부터 식사 제안이 온다. 이런 식사시간이 싫지는 않다. 하루 종일 만나는 사이도 아니니 가끔 식사와 차 한 잔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억양이 들리지 않는 메시지를 받다 보면 종종 직장에서 업무 지시를 받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남편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대번에 반대다.
“3주 전에 만났는데 뭘 또 만나. 싫어. 내가 싫다고 연락할게.”
남편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각자의 가정에 집중하고, 주말이면 친구도 만나고 나와 데이트도 하고 싶으니 주말까지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건 후순위로 밀리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간간이 훈계로 채워지는 부모님과의 시간이 남편에게 달가울 리 없다. 이런 책은 보지 말거라, 회사 생활은 이렇게 해라, 치과는 어디로 다녀라, 부모에게 말투는 이렇게 써라, 사람을 대할 때 이렇게 해라, 앉을 때 자세는 이렇게 해야 한다, SNS 하지 마라, 등등 내가 듣기에도 버거운 훈계인데 남편에게는 오죽할까.
하지만 시어머니께 연락이 온 당시에 시아버지께서는 먼 지방에 장기 출장 중이셨다. 서울에 오셨을 때 큰아들 집에 들러 사는 모습도 보고, 며느리랑 식사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충분히 이해 간다.
“3주 전엔 시어머니만 오셨으니까 거절하지 말고 뵙자. 무리한 요구도 아니잖아.”
나의 설득에 남편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착한 며느리’가 될 주제가 안 되지만, 무턱대고 어른과 벽을 치는 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게 편할 것 같아 ‘중도’에 머무를 뿐이다. 그렇더라도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기 싫은 남편과 조금 다른 느낌으로 이 상황이 불편하기는 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자꾸 직장생활 같아서다. 빗대어 표현하자면 큰 결정을 내리는 데 영향력이 있는 시아버지는 부장급 팀장 같다. 가족이라는 팀을 맡고 있어 권위적인 면모가 언뜻 보이지만, 막상 이야기해 보면 마음이 따뜻한 부장이다. 그러면서도 팀원들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속상한 부장이다.
부장이 속 끓는 이유는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원(남편)과 대리(나) 때문이다. 사원과 대리 ‘나부랭이’들이 말을 안 듣고 자기주장이 분명하니 시원할 도리가 없다. 피가 섞인 사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리는 도무지 어렵다.
사원을 본 지도 오래되었지만, 몇 년 전 이직해 온 대리급의 며느리는 아직 익숙지 않아서인지 그 속을 알 수 없다. 말 한마디를 걸어도 조심스러워 늘 웃는 얼굴로 말을 건다. 이런 마음을 대리는 아는지 모르는지…….
시어머니는 차장 같다. 팀원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레이더를 세운 차장이다. 역시 사원과 대리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속상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직접 협상을 하는 입장이다. 차장은 협상 전문이라 그런지 대화를 유연하게 이끌어 내고, 현실적인 문제를 꼼꼼하게 처리한다.
실무진과 부장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이기 때문에 오히려 팀 안에서의 실세는 부장보다 차장이다. 그런데 상사로서 사원과 대리에게 지시를 내리기는 해도 흡족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속상하기는 부장과 매한가지다.
사실 시어머니의 ‘식사 제안’과 ‘식당 예약’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시어머니와 대화를 해보면 우리 세대와 안 맞는 성향이 있기는 하지만 의외로 재치 있고 자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 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모호한 지시의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나의 사적인 부분을 알고 있는 직장상사를 집 안에 모시고 있는 기분이다. 상하관계가 싫어서 회사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내가 결혼 생활 때문에 다시금 직장생활을 하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친정 쪽에도 상사가 한 분 계신다. 훈계의 마왕이라 불리는 나의 친정엄마다. 엄마는 차장이기는 한데 과장의 역할까지 맡아하는 실무형 관리자다. 실무자의 아주 세세한 면까지 관리하려 든다. 특히 막내딸이 결혼 이후 집안일이나 눈치 부분에서 조금 나아진 듯 보여 대리로 승진시켰는데, 하는 꼴을 보면 아주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그럴 땐 가차 없이 쪼아댄다.
“대체 김치는 왜 안 만드는 거야. 여자라면 당연히 집에서 김장을 해야지.”
“가오리찜이 뭐가 어렵다고 안 하는 거니? 엄마가 지난번에 하는 방법 가르쳐 줬잖아!”
“아침에 국을 끓여 밥을 먹어야지. 남편한테 빵 쪼가리 먹여 출근시키는 거니?”
“너는 또 무슨 다이어트를 한다고 난리야.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어야 그만 빼려나. 살 빼지 마!”
“피곤할 땐 홍삼을 먹으라고, 홍삼을!”
시댁의 차장이 협상가 타입이라면 친정의 차장은 부리로 쪼아대듯 훈계하는 타입이다. 아주 세세한 실무까지 지시하는 탓에 친정 쪽 차장 앞에만 가면 대리는 가시방석이다.
그렇다면 사원과 대리는 어떨까. 일단 사원은 확고한 ‘마이 웨이’ 스타일이면서 대리의 의견에 대체적으로 잘 따르는 편이다. 사원은 윗선의 지시가 마음에 안 들면 속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대리가 어려움에 처하면 용감하게 전면으로 나서기도 한다. 그로 인해 비난을 들을지언정 마음에 없는 말과 행동은 하지 않는다.
대리는 얼마 전까지 사원이었는데, 그나마 남편인 사원에 비해 집안일이 조금 능숙해지고 상사들과의 협상 테이블에 참석하면서 승진했다. 대리 입장에서는 사원과의 관계는 편한 반면, 차장급들의 지시와 의견은 아직 불안하고 정답을 잘 모른다.
솔직히 대리는 시부모님이라고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고, 친정 부모님이라고 덮어 놓고 선량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두 가족이고, 부모와 자식이고, 각자의 생이 소중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결혼 전부터 숱하게 들었던 말이 있다. “부모에게 잘해야 후회가 없다.” “결혼해서 시부모에게 잘해야 예쁨 받는다.” 등이었다.
그 ‘잘하라’는 말이 꽤나 추상적이고 짐스럽다. 그래서 차장들의 지시가 있거나 협상 시간이면 대리는 종종 헷갈린다. 다들 잘해야 한다고 말하니 무조건 지시를 수락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의견을 소신껏 말해도 되는 건지, 생각을 말했다가 집안에 갈등만 만드는 건 아닌지 늘 긴장한다.
세상이 달라졌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예의를 생각하는 시대라지만, 며느리 입장에서는 분명 ‘모셔야 하는’ ‘잘 해 드려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다. 대리는 모두 함께 즐겁게 살고 싶다. 하지만 잘 모시고 잘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즐거운 것과 잘 모시는 것의 차이는 분명하다. 요즘 평생직장은 옛말이라고 했다는데 누가 그랬나. 그거 다 거짓말이다. 이렇게 평생직장이 번연히 있는데 말이다.
이런 이유로 끝없는 직장생활 중이다. 회사는 마음에 안 들면 퇴사라도 하겠지만, 이 직장생활은 퇴사가 없다. 입구는 있지만 출구가 없는 며느리 생활이다. 그럼에도 윗선의 지시를 최대한 문제없이 처리하고, 상사와 분쟁 없이 해를 넘겨야 하는 숙제 속에서 살아야 하는 나는 만년 대리다.
안녕하세요.
<여자 친구가 아닌 아내로 산다는 것>의 저자 도란 작가입니다.
오늘로 위클리 매거진 연재의 마지막 글을 올립니다.
좋은 기회를 얻어 평소보다 많은 독자분들을 만날 수 있어 기뻤습니다. 공감해주신 댓글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던 소중한 글자들, 몰랐던 것을 깨달으며 파생하는 생각들 모두 감사히 읽었습니다. 또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느꼈던 세대와 성별의 갈등을 크게 실감한 것도 연재를 통해 얻은 거라 할 수 있겠네요.
저는 쉬지 않고 쓰고 있습니다. 지금은 결혼생활 이야기만이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에세이를 조금씩 쓰고 있어요. 그래서 언젠가 차기작을 내게 된다면 "그때 그 작가가 이렇게 성장했구나!"하고 감탄할 수 있을 책을 내고 싶어요.
연재는 오늘로 마치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써 나갈 제 브런치의 독자로 남아주시길 바라며.
서점에 꽂혀 있는 저의 책 <여자 친구가 아닌 아내로 산다는 것>에도 관심 가져 주시길 기다려 봅니다.
가을이 짙어졌습니다.
옷깃 잘 여미시고요.
우리 또 만나요!